어느 해방둥이 배호 마니아의 넉넉한 마음 살림

평전에 못다 쓴 ‘배호’ 이야기 3

등록 2005.08.15 19:43수정 2005.08.1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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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오늘은 가수 배호와 아주 관련이 깊은 날이다. 그날이 없었으면 배호는 조국과 어떤 인연을 맺게 되었을지 아무도 모른다. 광복의 그날이 있었기에 이듬해인 1946년, 만 4세의 4대독자인 배호는 부모의 손을 잡고 미 해군 상륙정에 승선하여 먼 항해를 거쳐 인천에 상륙, 조국과 만날 수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우렁찬 목청으로 울어댔던 배호는 중학생 때 부친을 여의고 소년 가장이 되며, 음악가가 많은 외가의 영향을 받아 일반 학업을 그만두고 가수의 길로 걸어들어갔다. 외숙부 김광빈의 음악 지도를 받고 신인 시절 드러머로서 특유의 창법으로 노래를 불렀던 배호는 <돌아가는 삼각지>(배상태 작곡, 이인선 작사)로 마침내 한국 최고의 가수로 떠오른다.

그러나 그때 이미 배호는 제몸이 아니었다. 무명 시절에 돼지고기를 잘못 먹어 신장염을 앓게 된 배호는 장충동 녹음실에서 <돌아가는 삼각지>도 호흡의 곤란을 겪어가며 간신히 불러 녹음했고, 전신이 부어오르는 그 병은 휴화(休火)할 만하면 미친 듯이 도졌다.

배호는 결국 만 29세인 197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자기 노래를 포함하여 남겨놓은 노래 300여 곡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호소력과 가창력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뛰어난 가수 중에서도 배호는 특히 뛰어나다고들 말한다. '100년에 하나 나올까말까 한 가수'라는 말을 한 음악인이 너무 많아 일일이 이름을 적기가 간단치 않을 정도다.

배호의 유족과 함께 하는 배호 팬클럽 '배기모(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 인천지부장 김종구씨가 '평전에 못다 쓴 배호 이야기'에 필요한 내용이 될지 모르겠다며 이런 제목의 글을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정용호 의제님 어머님 병문안을 다녀오며…'. '정용호 의제'란 극빈으로 사는 배호 모친과 배호 사후에 정신질환에 시달려 온 배호 누이동생을 보살펴 온 '배호 의제(義弟) 정용호씨'를 가리킨다.

독립운동 연구를 하던 정씨(현재 헐버트 박사 기념사업회 사무총장)가 배호의 부친에 관한 취재를 하려고 배호 모친을 만나러 갔다가 너무도 어렵게 살고 있는 두 모녀를 위하여 배호 모친을 어머니처럼 모시기로 한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자기 역시 어려운 살림인데도 친어머니와 양어머니, 이렇게 두 어머니를 모시며 살아간 셈이다.


이제는 배호 모친과 누이동생 모두 배호 무덤 곁에 함께 하였는데, 아마도 정씨가 없었으면 배호 모친과 누이동생의 장례도 치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배호 가족 무덤이 그만큼 가꾸어지지 못했을 것이며, 또한 내가 낸 <배호평전>도 집필이 순조롭지 못하여 세상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헤이그 밀사 파견의 일등공신인 헐버트 박사 추모식 때마다 추모객들에게 도시락 점심을 챙겨 주기 위하여 외국인묘지공원까지 자원봉사 나오곤 하시던 정씨의 친어머니마저 위독하시다는 것이다. 김씨의 글 내용은 이렇다.


"소식을 접한 지는 꽤 오래 되었죠. 적십자 병원에 계시는 동안에 한번 가보지 못해 안타까움 속에서 고민해 오던 인천지부 특히 부평지회 임원진들은, 13일 토요일 부평지회 8월 정기모임을 갖는 자리에서 공지 사항으로 회의 끝머리 회원들에게 공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회의 끝나고 필자는 이종철 화백님에게 하루속히 다녀올 것을 적극 제안했고 '일요일 당장 갔다옵시다'라는 답변에 신창화 작곡가님 역시 흔쾌히 동의, 배상열 지회장님은 임지에서 통화도 잘 안 되니 집행하고 추후 보고하기로 합의하고 나니 몇몇 분이 동조, 작은 정성이나마 봉투를 하나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일요일 오전 10시, 필자(인천지부장)네 임시사무실에서 만나 부평역에서 11시 출발하여 2호선으로 갈아타고 신도림역, 선릉역을 거쳐 분당선 야탑역에 하차하니 12시 40분, 두 시간여 걸려 차병원 11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바로 의제님이 대기하고 있더군요.

방문객은 너무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준비가 너무 작아서 마음 한구석에 미안한 마음으로 맞았는데, 의제님이 너무 반가워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셔서 더욱 송구스러웠습니다. 의제님의 안내로 어머님을 뵈니 너무 고우시고 평소 매우 건강하셨던 모습이었는데 암(림프종) 말기로서 이미 의료진의 사형선고를 받으셨다니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며칠 전부터 항암 치료가 시작되었다는데, 앞으론 심한 탈모현상과 사람에 따라선 음식물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할 것인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유일한 보호자 정용호 의제님의 처지… 혹시 처음이자 마지막 뵙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의례적인 인사만을 나눈 채 일행은 돌아서야 했었죠.

방문객에게 너무 고마워하는 의제는 집이 신촌 쪽이니 그 쪽에 가서 점심을 모시겠다고 차를 몰아 마포 어느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서로 주머니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일행은 간단하게 점심을 했으면 하는 마음인데 맛있는 아구탕집이 아닙니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마음은 편치를 못했습니다. 대충 암산을 해보니 5만원 가까운 것 같은데… 변변치 못한 봉투를 전한 일행으로선 병문안의 의미의 상실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식사가 끝날 무렵 필자는 평소 습관대로 이쑤시개를 찾으러 카운터 쪽으로 다가간 김에 얼마냐고 물어보니 4만2000원입니다. 이 때 정용호씨가 기절초풍 달려오면서 점심은 자기가 모셔야 한다고 막무가내… 그렇지만 이것은 아니었고, 필자 또한 이런 경우 기가 세기론 만만치 않은 실력이 있어 의제님을 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었습니다.

일행 셋이서 전철을 타고 부평을 향해 오면서 정용호씨의 이야기가 자꾸만 떠오르더군요.
“어머님의 병환은 다른 병과 달리 의료수가가 높다는군요. 게다가 보험 역시 제한적인 부분이 많아 사비로 충당해야 하는데, 그동안은 배기모 외에 옛날부터 봉사활동을 해왔던 단체에서 회장님이 딱한 처지를 아시고 거금을 우선 지원해 주셔서 충당을 해왔는데 앞으로가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단체는 광복 60돌을 맞이하여 큰 행사를 며칠 전에 치렀으며, 여기에서도 정용호씨가 중추적 역할을 해온 모양인지 14일 밤 KBS 1TV 9시 뉴스 시간에 짧은 인터뷰 내용이 방영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략)

같은 목적과 생각의 순수함엔 미주왈 고주왈 무슨 말이 꼭 필요하겠습니까. 앞서서 걸어오는 필자의 뒷주머니에 이화백과 신선생의 손들이 재빠르게 들어왔다 가질 않겠습니까. '무슨 짓들이냐'고 하며 장난들 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돈이 3만원이 들어 있지를 않습니까. 모두 지불한 것은 4만2000원이었는데 두 분이 3만원을 나에게 주셨으니 나는 1만2000원만 점심값을 지불한 것이 아닙니까.

부평으로 내려오는 전철 안에 있을 때 정용호씨로부터 메시지가 왔는데 '지부장님 너무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라는 것이 아닙니까. 결국 생색은 나 혼자 낸 결과가 되었답니다."


a '배호 매니아들의 작은공간' 실내에 걸려 있는 배호 LP 재킷과 김광빈옹(배호의 음악 스승이며 외숙부) 자택 방문 사진. 사진 왼쪽부터 정용호 배호의제, 신창화 작곡가, 김광빈옹, 안마미 여사(김광빈옹 부인, 배호 외숙모), 배호 홍보대사 가수 신이나씨, 김종구씨. 이종철 화백은 사진 촬영자.

'배호 매니아들의 작은공간' 실내에 걸려 있는 배호 LP 재킷과 김광빈옹(배호의 음악 스승이며 외숙부) 자택 방문 사진. 사진 왼쪽부터 정용호 배호의제, 신창화 작곡가, 김광빈옹, 안마미 여사(김광빈옹 부인, 배호 외숙모), 배호 홍보대사 가수 신이나씨, 김종구씨. 이종철 화백은 사진 촬영자. ⓒ 김선영

a 자신이 그린 배호 초상화 앞에서 <두메산골>(김광빈 작곡, 반야월 작사)을 열창하는 이종철 동양화가.

자신이 그린 배호 초상화 앞에서 <두메산골>(김광빈 작곡, 반야월 작사)을 열창하는 이종철 동양화가. ⓒ 김선영

공교롭게도 이 글을 보내준 김씨와 이종철 화백은 두 분 모두 해방둥이다. 배호보다 세 살 아래, 그러니까 배호가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에 배호 노래를 따라 부르며 청춘을 보낸 사람들이다.

광복절 앞날, 누구에게 지지 않게 배호와 배호 노래를 좋아하는 해방둥이 두 사람은 조국 광복과 인연이 깊은 배호를 생각하면서, 또한 배호 의제 정용호씨의 모친 건강을 걱정하여 푼돈 모아 병문안을 갔던 것이다. 올해 환갑 나이인데도 배호 이야기로 소주 한잔 나눌 때 보면 두 분 다 40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그들의 넉넉한 마음 살림 덕분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평전 <배호 평전>, 생명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6부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2005년 12월 출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평전 <배호 평전>, 생명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6부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2005년 12월 출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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