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과 오욕의 상징물, 부산 미문화원

70년만에 반환되어 부산근대역사관으로 거듭나

등록 2005.08.17 15:44수정 2005.08.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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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바야흐로 녹색의 물결로 넘어가고 있었다. 진달래와 철쭉은 여린 꽃잎을 조금씩 디밀고 있었고, 겨우내 길거리를 채웠던 낙엽들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봄이라지만 아직은 쌀쌀한 3월 초의 날씨였다. 두터운 겨울외투는 여전히 사람들의 피부를 감싸고 있었다. 그러나 태양이 가끔씩 따뜻한 빛깔을 아래로 뿌려주어 사람들의 얼굴을 하얗게 만들어 주었다. 평화로웠다.

때는 1982년 3월 18일이었으며, 중구 대청동에 있는 미문화원 옥상에는 50개의 별이 선명하게 그려진 성조기가 평화롭게 날리고 있었다.

이날 오후 앳된 얼굴의 20대 여성 두 명이 휘발유가 가득 든 노란 플라스틱 통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문화원 정문으로 접근하였다. 그들 곁에는 건장한 청년 한 명이 동행하였는데, 청년은 문화원 주변에서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척했다.


통을 든 여성들이 두꺼운 유리문 앞에서 서성거리자 미리 안에 들어가 있던 또 다른 두 명의 여성이 출입문을 열어주었다. 곧 이어 플라스틱 통에 있던 휘발유가 문화원 복도에 뿌려지고, 알코올에 젖은 솜방망이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미문화원 방화 관련 사진
미문화원 방화 관련 사진김대갑
여성들은 솜방망이를 복도에 집어 던지고 황급히 돌아서서 밖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돌아서는 그녀들의 등 뒤로 엄청난 열기가 몰려왔다. 마침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으며, 휘발유에 붙은 불은 바람의 도움을 받아 미문화원을 삽시간에 불태우고 말았다. 그때, 조금 떨어진 유나백화점 옥상에서는 수 십, 수 백 장의 유인물이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날리고 있었으며, 다음과 같은 문구가 선명히 박혀 있었다.

'미국과 일본은 더 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

충격이었다. 너무나 엄청난 충격이었다. 40년 맹방의 땅 한국에서 감히 엉클 톰 아저씨의 집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발생하다니. 전 국민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으며, 정권과 언론은 간첩의 소행이라고 연일 호들갑을 떨었다. 특히 지역 당사자인 부산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왜, 하필, 부산에서,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 다들 의아해하며 무서워했다.

건물 입구의 현판이 새롭다
건물 입구의 현판이 새롭다김대갑
사건은 발생 14일만에 주범인 문부식이 검거됨으로써 일단락되었으며, 국민과 부산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사건의 추이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정확한 사건의 발생 배경을 알지 못했으며,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언론이 시나리오를 쓰고 정권이 연출하는 한 편의 잘 된 연극을 볼 뿐이었다. 미국제 최신 조명기구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다.

전시실 내부
전시실 내부김대갑
부산 미문화원은 한마디로 침략과 오욕의 역사가 켜켜이 묻어 있는 역사적인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929년 일제가 건립한 이 건물은, 조선 백성을 철저하게 수탈하기 위해 일제가 세운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해방 후인 1949년 7월부터는 미국해외공보처 미문화원과 부산 영사관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부산 미문화원 방화(부미방)' 사건 이후 발생한 일련의 사건-85년도 부산대생 투석사건, 86년도 서울지역 대학생들 점거사건, 86년도 부산대생 점거기도사건-등에 골머리를 앓아오다 마침내 폐쇄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미국은 영사관과 문화원을 폐쇄한 후 이 건물을 비워둔 채 오래도록 방치하였으며, 부산시와 시민단체들의 거듭된 반환요청에도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1999년 4월 30일 드디어 대한민국 정부에 완전히 반환하였다. 우리 땅에서 우리 손에 건립된 이 건물이 우리 민족에게 넘어오기까지 무려 70년의 세월이 걸렸으니 그 얼마나 통탄할 노릇이란 말인가?

부산시 모형
부산시 모형김대갑
이렇게 치욕의 역사를 지닌 이 건물은 현재 격동의 근현대사를 알리고 교육하는 공간으로 탈바꿈되어 있다. 부산시는 반환받은 직후부터 각계 요로의 의견을 거쳐서 역사 교육의 장으로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약 3년간의 내부 공사를 진행하였으며, 마침내 지난 2003년 7월 3일 총 200여점의 유물과 2개의 전시실을 갖춘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정식 개관하게 된 것이다.

제1전시실은 2층에 마련되어 있는데, '부산의 근대개항 주제관'과 '일제의 부산 수탈 주제관', 그리고 '근대도시 부산 주제관' 등으로 꾸며져 부산항의 개항부터 일제의 수탈에 시달렸던 부산의 근대사를 볼 수 있도록 하였다.

3층에 있는 제2전시실은 '동양척식주식회사'로 대표되는 일제의 수탈과정과 한국과 미국의 역사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근현대 한미관계 주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패배의 현대사를 딛고 미래를 향해 뻗어 나가는 '부산의 미래 주제관'으로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특히 제2전시실에 가면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을 당시 사진과 함께 전시한 코너가 있는데, 예전 그 시절을 회상하는 이들에게 씁쓸하면서도 의아스러웠던 기억을 되살리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부산 미문화원, 아니 이제는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지난날 자신을 그리도 괴롭혔던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따지고 보면 이 건물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시멘트와 철근 덩어리로 이루어진 회색빛 도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겠는가. 이 건물을 무단으로 점령하여 우리 민족을 치욕에 빠트리게 했던 외세가 잘못이었지.

말없이 거리를 지키고 있는 회색빛 건물
말없이 거리를 지키고 있는 회색빛 건물김대갑
사람들은 오늘도 평화로운 표정으로 부산근대역사관 앞을 지나간다.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부산타워는 그날처럼 용두산의 정상에 서서 뭇 사람들을 무연히 쳐다보고 있다. 남포동에서 들려오는 낭만과 환호의 음성은 푸른 색깔을 띠며 허공을 날고 있다. 어디선가 비둘기가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긴 궤적을 남기고 있다. 회색빛 건물의 염원을 담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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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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