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될 것 각오하고 5공참회록 썼다"

[인터뷰] 회고록 낸 박철언 전 의원... "YS에 대한 복수라고 하면 섭섭"

등록 2005.08.17 18:04수정 2005.08.1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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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정리 : 김병기 김영균 기자
사진 : 이종호 기자
동영상 : 김윤상 기자


a 박철언 전 의원.

박철언 전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5공 세력으로부터 왕따가 되는 것을 각오하고 속죄하는 심정으로 썼다.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 나중에나마 살아있는 생생한 기록을 남길 때 국회의원들이나 앞으로 정치를 할 사람들도 두려운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고 갈 것 아닌가."

최근 정치권에서 파문을 불러일으키면서 서점가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랜덤하우스중앙)의 저자 박철언 전 의원의 말이다.

그는 1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회고록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점에 대해 "굉장히 마음이 무겁다"는 심경을 밝혔다. 아울러 회고록 내용에 반발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회고록 내용이 YS 흠집내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에 대해 박 전 의원은 "회고록으로 과거에 깊은 인연을 맺었던 YS와 많은 분들 마음을 어둡게 한 데 대해서는 미안하고 송구스럽다"면서도 "회고록을 두고 YS에 대한 앙갚음, 공격이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섭섭하다"고 말했다.

박 전 의원은 "억울하게 투옥되던 93년 봄에도 (회고록을 쓰지 않고) 참았고, 감옥에 있을 때도 참았다"며 "내가 YS에 대해 앙갚음할 생각이 있으면 그 때 터뜨리지 무엇 때문에 참았겠느냐"고 반박했다.

"회고록, YS에 대한 앙갚음 아니다"


회고록에서 DJ와 관련된 정치 자금 문제가 빠져 있는 점에 대해서도 박 전 의원은 "DJ는 나하고는 (돈 거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전 의원은 또 "YS와는 여러 차례 만났지만 DJ를 만난 회수는 굉장히 적다"며 "DJ와는 주로 남북문제, 민족문제, 북방문제를 나눴다"고 전했다.

박 전 의원은 또 "검사 출신 청와대 수석이 대법원장 후보를 면접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며 "면접이 아니라 일종의 면담"이었다고 밝혔다. 박 전 의원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 본인이 대법원장 후보들을 직접 만날 수 없으니까 나를 시켜서 만나보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6공의 황태자' 등으로 불리우며 권력 실세로 활약한 박 전 의원은 1980년부터 5년간 대통령 정무비서관과 법률비서관을 지냈으며 자유민주연합 부총재와 13~15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그는 또 1985년부터 1991년까지 대북 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이후 1993년 5월부터 1년 4개월동안 투옥 생활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약이다.

"YS는 감성적, DJ는 이성적"
박철언 전 의원이 본 전직 대통령들

"YS는 감성적이고 DJ는 이성적이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호방한 형이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조용한 편이다."

1980년 5공화국 초기부터 4명의 전직 대통령을 가까이 지켜본 박철언 전 의원은 YS에 대해 "감성적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DJ에 대해서는 깨알같은 글씨로 노트를 정리하는 등 꼼꼼하고 이성적인 면이 있다고 전했다.

박 전 의원은 "3당 통합 과정에서 YS와는 여러 차례 만났지만, DJ는 만남의 회수가 굉장히 적었다"면서 "YS가 탁 털어놓고 애로사항도 내비치고 자기 얘기도 하는 스타일이라면, DJ는 남북문제 등에 대해 노트에 깨알같이 정리하고 이해가 깊어 이성적으로 대화하는 측면이 많았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박 전 의원은 "굉장히 개방적이고 호방한 형"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조용하고 속이 깊은, 참을성 있는 사람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 회고록이 발간된 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4쇄를 찍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정치인이 펴낸 책으로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데.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주니까 좋은데 독자들에게 미안하다. 이 무더위에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인데…."

- 책이 잘 팔리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사실 굉장히 마음이 무겁다. 특히 네 분의 전직 대통령과 함께 일한 많은 분들에게 참으로 송구스럽고 미안하게 생각한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내가 그분들을 모시고 중요 정책을 수행했는데 회고록 일부는 개인의 명예와 체면에 관련된 문제도 있다. 회고록에 나오는 사람들이 현존하고 있고 상당수는 다 정치에 있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 회고록을 펴내게 된 동기는 뭔가.
"회고록을 내는 것 자체가 내게 마이너스다. 5공 세력으로부터 왕따가 되는 것을 각오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썼다. 이제 진보와 보수가 서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책 경쟁을 통해 미래를 열어야 하지 않겠나.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 나중에나마 살아있는 생생한 기록을 남길 때 국회의원들이나 앞으로 정치를 할 사람들도 두려운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고 갈 것 아닌가. 내가 공직에서 중요한 국가운영에 관여한 게 80년부터 2000년까지 20년이다. 때로는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했지만…. 공무 수행 중에 일지를 써서 기록으로 갖고 있었다."

- X파일 정국에 책이 나온 것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또 공소시효가 지난 지금에서야 펴낸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지난 2000년 6월 정치를 그만두고 미국 보스턴대학 객원교수로 재직하다가 돌아왔다. 지난 2004년 총선 때 마지막으로 무소속 출마를 생각하다가 접었다. 그 뒤 방대한 업무일지를 정리해 1년 3개월만에 탈고하고 출판사(랜덤하우스)와 협의했다. 지난 6월에 계약서를 쓰면서 출판사에서는 8주 이내에 출간한다고 명시해서 이번에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X파일이 터져 나오면서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다."

"X파일은 불법 정보 수집, 회고록은 정당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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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 X파일 때문에 오히려 더 상승효과를 얻은 것 아닌가.
"업무수행 일지를 공개하는 것은 역사성이 있다. 이를 무슨 X파일, 거기에 빗대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X파일은 불법적으로 정보를 수집한 거다. 야당 정치인에 대한 협박이나 회유, 공갈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범죄적 파일이다. 내가 쓴 것은 정당한 공무수행 과정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 일부에서는 '고해성사인지, YS 죽이기인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있다. DJ 등 다른 정치인들과 연관된 것을 배제하고 YS만 부각했다는 것이다.
"그 점도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저는 진실을 그대로 증언했는데, DJ 쪽은 왜 안 터느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다른 분들을 통해 DJ 쪽에 정치자금이 갔는지 확인할 수 없다. 당시 YS와 DJ에게 모두 3당통합을 제안했는데 DJ가 자신은 그런 통합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자신은 야당 총재로 출마해 경륜을 펴고 싶지 통합은 아니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내가 무슨 금품을 지원한다든지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YS와는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DJ와는 만난 회수가 굉장히 적다. DJ와는 주로 남북문제, 민족문제, 북방정책 등 이야기를 나눴다."

- 이런 이유 때문에 YS 쪽에서는 '박철언은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이라고 혹평하면서 불쾌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는데.
"회고록으로 과거에 깊은 인연을 맺었던 YS와 많은 분들 마음을 어둡게 한데 대해서는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하지만 회고록을 두고 YS에 대한 앙갚음, 공격이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섭섭하다. 나는 생생한 자료와 기록을 갖고 있었지만, 억울하게 투옥되던 93년 봄에도 (회고록을 쓰지 않고) 참았다. 1년 4개월간 감옥에 있으면서 많은 통한도 있었지만 참았다. 지금 YS가 대통령을 그만둔 지도 7년여가 지났다. 정치 자금 주고받은 것도 공소시효가 다 지났다. 내가 YS에 대해 앙갚음할 생각이 있으면 그 때 터뜨리지, 무엇 때문에 참았겠나."

- 회고록을 쓰면서 YS나 한나라당이 타격을 입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은 안 했나.
"현재의 한나라당과 연관지어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과거의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이나 그 때의 대통령들을 (한나라당) 본인들이 자꾸 연관지어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 회고록에 보면 노태우 대통령이 YS를 차기 대통령으로 낙점하자 YS가 큰절을 했다는 김복동 전 의원의 전언이 나온다. 이 대목은 노 전 대통령에게도 확인했나.
"노태우 대통령이 (대통령 자리를) YS에게 넘긴다는 얘기를 나한테는 91년 4월부터 했다. 나는 당시 민정당 후보 단일화운동을 하고 있어 노 대통령이 심지어는 한국을 떠나라는 말까지 했다. 그런 상황이라 YS한테 확인할 생각하지 않았다. 김복동 전 의원이 거짓말할 상황도 아니고…."

- YS에게 40억 준 것 외에도 추가로 건넨 돈이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당시 야당 총재는 자금이 필요했고, 여당 총재인 대통령도 야당 협조가 필요했다. 요즘 잣대로는 역사와 국민 앞에 있어서는 안될 부끄러운 일이지만, 제가 속죄해 놓은 것으로 가름하고 넘어가자."

한-소 수교협정 당시 YS가 고르바초프를 만나서 인사 나눈 것을 가지고 '수교 협의가 다 끝났다'고 말해 애를 먹었다는데.
"김영삼 당시 최고위원은 집권당으로 와서 굉장히 정치적 홍보에 치중했다. 한-소 수교 문제도 (실제 아무런 합의도 없었고) 인사만 나눴는데 다 끝났다고 해서 소련 측에서도 항의하고…. 굉장히 당혹해서 수습하느라고 애를 먹었다."

"DJ, 나하고는 정치 자금 거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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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 회고록에는 '1995년에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황창평 1차장이 도청을 강화하고 정보정치를 강화했으니 조심하시오'라는 제보를 받았다는 대목도 나온다. 시기적으로 볼 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미림팀'이 활동했던 때인데, 당시 구체적인 도청 움직임을 인지하고 있지는 않았나.
"나는 도청 관련해서 직접 관계도 안 했고, 구체적 선상에도 없었기 때문에 책임 있는 얘기를 못한다. 다만 당시 여러 가지 상황으로 봐서 도청 감청이 있구나 하는 것은 감지했다."

- 85년 안기부장 특보로 일했는데 도청에 관해 모른다는 말인가. 5·6공 당시 도청은 더 많았던 것 아닌가. 회고록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나마저도 도청당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는 대목도 나온다.
"안기부는 소관 업무와 차단 원칙이 분명하다. 나는 안기부장 제2특보로 남북 문제, 공산권과의 수교 준비와 접촉, 국가 비상시기에 있어서의 법과 제도 준비 등을 담당했다. 일선 공작을 하거나 공작정치와는 상관없다."

- 회고록에 보면 전두환 대통령이 DJ가 미국으로 갈 때 7∼8만 달러를 환전시켜줘서 내보냈다는 얘기가 나온다. 누구 돈을 환전한 것인가. DJ 측에서는 환전 편의만 제공받았다는데.
"전두환 대통령이 그 말을 할 때 구체적으로 물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당시 외화 7∼8만불 환전이 굉장히 어려웠다. 그러니까 지금 DJ가 설명하는 것처럼 환전의 편의를 봤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 내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전 대통령과 DJ, 이희호 여사 뿐이다. 꼭 전두환 대통령이 7∼8만불을 줬다는 것이 아니니까 DJ 얘기가 사실일 수 있다."

- DJ가 각서까지 쓰고 미국으로 출국했다는데 각서 내용은 뭔가.
"박정희 대통령부터 노태우 대통령까지는 나라를 안정되게 하려고 속도를 내다보니 민주 헌정사에 많은 어둠과 아픔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 투쟁세력이 우리나라 인권에 많은 공을 세운 것도 사실이다. 그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DJ도 각서를 썼을 것이고 각서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각서 내용은 아는 바가 없다."

- 정형근 의원이 임춘원 의원의 말을 인용해 '박 전 의원이 DJ에게 100만원짜리 수표로 200억원을 줬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사실인가.
"말이 안 된다. 100만원짜리 수표로 200억원이면 분량이 얼만데…."

"꼿꼿하고 의연하다는 인상에 이회창 판사 추천"

- 회고록에는 박 전 의원이 대법관 후보들을 면접봤다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그 문제도 당사자들에게 굉장히 송구스럽다. 사실 언론이 전체를 안 보고 단정적으로 쓴 부분이 많다. 대법원장 후보들 면접이라는데 사실은 일종의 면담이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유태흥 판사, 김영준 감사위원 등 중에서 한 사람을 대법원장 후보로 뽑아야 하는데 본인이 직접 만날 수 없으니까 나와 손진곤 판사, 우병규 정무수석을 시켜서 만나보라고 한 것이다."

-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대법원 판사에 임명된 것도 면담 후인가.
"대법원 판사는 고심 끝에 검찰, 법조, 재야 여론을 종합해서 개혁적 인사안을 만들어 대통령에 보고했다. 당시 노 대통령이 이회창 판사에 대해서만 묻더라. 무죄 판결도 많이 내고 인기에 영합한다는데 만나봤느냐고. 그래서 만나 보지 못했다니까 역시 우병규 수석과 같이 만나보고 최종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여러 대법원 판사 후보 중에서 이회창 판사가 꼿꼿하고 의연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회창 판사는 일선 법원장도 안 해봤고, 나하고는 일면식도 없지만 자신 있게 추천했다."

- 노무현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국가공권력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배제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보나. 이번 회고록에서 밝힌 불법 관련한 내용도 연관이 있을 수도 있는데.
"새로운 출발 위해서 과거사를 깨끗이 점검 필요가 있다는 노 대통령의 충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문제와 관련해서는 참모들이 법적으로 좀 잘 보좌해주면 좋겠다. 대통령이 국민들과 언론, 지식인들로부터 흠 잡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지 않나."

- 5·6공 군사정권에서 권력 핵심으로 한 세대를 풍미했던 박 전 의원은 회고록이 아니라 '참회록'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개인적으로 성찰하고 속죄하고 하는 심정이다. 그러나 주어진 여건 상황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다는 점을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 하지만 법무관 훈련 마치고 임관시 육본에 있는 배모 중령 찾아가서 인사청탁했던 일, 정치인들에게 돈을 전달한 부분 등에 대해 다 잘못된 일이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월계수회를 방대하게 조직해 국법에 위반되는 선거운동을 해서 노태우 대통령을 당선시킨 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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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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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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