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이성’이 정치와 권력의 근본이 되어야

[서평]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미래의 도전들>

등록 2005.08.18 17:31수정 2005.08.1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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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영
책의 핵심은 인간이다. 다른 모든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받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인간성 상실이 우리 미래의 도전들 가운데 제일 중요한 문제이다. 이 책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진리와 가치 그리고 권력이라는 주제를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정신적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과 관련하여 '도덕과 정치'라는 주제에 대한 그의 사상과 정치적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와 권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도덕적 이성'이라는 말하고 있다. 도덕적 정당성과 이성적인 판단이 없는 정치나 권력은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종교의 수장으로서가 아니라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함은 곧 진리를 따라 인간의 존재의 근원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처럼 종교를 떠나 모든 인류가 서로 사랑하고 인간성을 믿을 때 세계평화는 이루어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신은 위협이 아닌 구원으로 존재하고 그것은 종교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사랑, 인류애만이 테러를 비롯한 모든 폭력과 분쟁들을 극복하고 인간이 인간 자체로서 존중받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와 도덕'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라는 장이 바로 이 책의 핵심부분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가톨릭계에서 보수적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 글을 읽어 보면, 세계질서를 부인하고 몰락을 통해 구원받기를 희망하는 묵시론적인 경향은 결코 단 한번도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18세부터는 종교와 별도로 혹은 종교에 반대하면서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마르크시즘을 보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마르크시즘은 지식인들에게 종교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지만 노동자 농민들은 개혁을 통해 더 많은 권리를 얻게 되고 마르크시즘처럼 현재의 역사 형식으로부터 전면적인 이탈을 의미하는 혁명은 불필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결국 혁명이 차지했던 자리에는 개혁이 들어서고 결국 '현실 사회주의'는 붕괴되고, 실증주의와 상대주의가 우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베네딕토 16세는 로마서 13장 1~6절과 베드로 전서 2장 13~17절에는 혁명가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하며 이는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권위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적고 있다고 말하면서, 권위를 거역하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원칙을 거스르는 자가 되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기 양심을 따르기 위해서도 원칙에 복종해야 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사도 바오로와 베드로 모두 무비판적으로 로마제국을 예찬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신성시하는 자들과는 달리 신이 아닐 뿐 아니라 신인 것처럼 행동해서도 안 되는 존재로서 국가가 지니고 있는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가 지닌 법질서 유지 기능과 도덕적 특성을 인정할 수 있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즉, 국가는 현세적 성격을 갖고 있고 인간이 지켜야할 기본적인 도덕적 원칙들을 인식시키고 정치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도록 만드는 것은 이성이라고 보는 것이다. 기독교는 이러한 현세적 성격과 이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 안에서 기독교인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렇게 말한다.


"정치는 이성의 왕국이다. 그것도 단순히 기술적·산술적인 이성의 왕국이 아니라 평화와 정의라고 하는 도덕적 천성을 기반으로 정치의 최종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국가적 목표를 지닌 도덕적 이성의 왕국이다. 다시 말해서 이성이 지신 도덕적 통찰력이 마비되어 암울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방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가치들 가운데 오늘날 편파적인 신화화과정을 거쳐서 도덕적 이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가치들로는 진보와 과학 그리고 자유를 들고 있다.

" '진보'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신화적인 단어이다. 진보는 정치적·보편적인 인간 행동의 규범으로 강요되어 왔고, 도덕적 성격을 가장 많이 지닌 것처럼 여겨져 왔다. 지난 한 세기만 되돌아보아도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의학과 기술발전이 자연의 힘을 이해하고 이용하는 가운데 이루어졌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해도 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진보는 인간의 존재 근거가 되는 창조정신을 훼손시킨다. 진보는 인간들 사이에 불균형을 야기하고 이 세계와 인간들에게 점점 더 새로운 위협을 가해 온다. 따라서 이런 진보에 대해 도덕적 통제의 필요성이 불가피하게 대두된다."


이와 같은 기술을 통해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진보의 약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진보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해될 수 있는 폭이 좁겠지만 말이다. 결국 진보는 잘못된 도피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과학'이라는 개념이다. 과학은 합리성이 통제와 조정을 거치고 경험을 통해 입증되어 온 형식이라는 점 때문에 대단히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과학 안에도 인간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병폐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과학적 능력이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는 현상이 역시 존재한다. 대량인명살상무기와 생체실험, 인간의 몸을 장기 저장소로 취급하는 현상 등을 생각해보면 과학이 비인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과학이 인간성을 상실하였을 때 과학의 진정한 본질은 사라지고 상업화될 수 있다고 염려하고 있다. 물론 과학이 가져준 삶의 편리함과 자원의 효율성 활용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고도로 과학화된 사회는 인간성의 상실도 역시 명백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 하나의 개념은 바로 '자유'이다. 자유라는 개념 역시 근대에 들어서면서 수차례에 걸쳐 신화적인 모습을 받아들이게 된다. 자유가 무정부 상태를 의미하고 단순히 제도에 반대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가짜 신의 역할을 맡았던 경우는 종종 있어 왔다. 인간의 자유는 오직 상호간에 정당한 자유, 정의 안에서의 자유를 의미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거짓과 노예화로 귀결된다."

자유가 신화화되어 인간의 자유는 거짓과 노예화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자유에서 벗어나는 길은 상호간의 정당한 자유와 정의 안에서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국가에 대한 다음 일곱 가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베네딕토 16세의 국가에 대한 생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첫째, 국가 자체는 진리와 도덕의 원천이 아니다. 진리와 도덕은 어느 권력이나 이념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국가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둘째, 국가의 목표는 단순히 아무 내용도 담지하고 있지 않은 자유 속에 담겨 있을 수 없다. 상호간의 질서를 위해 진리와 선을 인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척도가 필요하다.

셋째, 따라서 국가는 국가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척도, 선에 관한 인식과 진리에 관한 척도를 국가 자신의 외부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넷째, 여기서 말하는 국가의 '외부'란 가장 이상적인 경우 이성의 순수한 분별력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분별력은 독립된 철학이 관장하고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섯째, 기독교 신앙은 가장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종교적 문화로 증명되었다. 올바른 기독교 신앙은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신앙을 근거 지을 수 있도록 이성에 대해 도덕적 통찰력에 관한 기본구조를 제시해준다.

여섯째, 교회는 스스로 국가의 위치로 격상되거나 권력기관이 되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국가와 하나로 융합되면 국가의 본질은 물론 교회의 본질 역시 파괴될 것이다.

일곱째, 교회는 국가를 위한 일종의 '외부적인 존재'로 머문다. 그럴 경우에 비로소 국가와 교회는 자신의 본분을 다하게 된다.

요약해 보면 도덕적 이성을 토대로 국가는 운영되어야 하고 국가와 교회는 제자리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신권정치와 신권국가를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의 정체성이라는 부분에서 '유럽'이라는 용어는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개념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리고 유럽의 문화는 기독교적이고 그리스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결국 유럽과 다른 문화의 경계선은 문화적 경계선이고 상이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구별짓는 선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토인비가 1960년대까지 주장했던 유럽의 승리에 대한 낙관주의는 오늘날 이미 쇠퇴하고 있으며, 토인비는 그 원인을 서구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이 기술과 국가 군국주의를 우상화하는 것으로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러한 위기의 해결책으로 인간의 품위와 인권이 모든 국법에 선행하는 가치로 드러나야 하고, 유럽의 정체성과 관련된 본질적인 문제인 결혼과 가족문제에 대한 이완된 시각에 대한 종교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의 국제적인 갈등과 전쟁의 원인은 병든 이성과 악용된 종교라고 지적하면서 '자기 자신만을 인정하고 경험적으로 확실한 것만을 인정하는 이성은 마비되어 스스로 파멸되어 버렸고, 신에 대한 믿음, 신이란 개념은 악용될 수 있고, 그러고 나면 파괴적인 성질을 갖게 되는 법이며, 종교가 지니고 있는 위험성은 바로 이부분에 있다'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분명하게 진단하고 있다.

도덕적 책임과 올바른 신념을 강조하면서 '정의는 사랑으로 상쇄시킬 수 없는 것이다'이기 때문에 우리의 죄와 잘못에 대한 반성과 도덕적 참회가 선행되어야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고 사랑이 더 큰 빛을 발할 수 있다고 하면서, 신념이 강하면 법과 정의 역시 힘을 발휘하게 되는 법이라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통해 평화를 위한 기독교인들의 사명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신이 만드신 형상이고 미래의 삶을 위한 동반자이므로 인간성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가치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해는 평화를 불러온다면서 죽음으로 사랑을 지켰던 그리스도처럼 평화를 위해 화해를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선이 지닌 힘을 강화하여 선한 자유로 악한 자유에 대항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도덕성 상실과 이성의 무분별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도덕적 이성'을 가지고 정치문제나 경제문제, 민족문제를 바라보면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인간성이 존중되는 인간중심주의에 따라 우리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일치시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익산 남성고 교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노태영 기자는 익산 남성고 교사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미래의 도전들

교황베네딕토16세 지음, 이동준 옮김,
물푸레,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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