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은 말년을 더럽게 살았다”

2005 민족문학작가대회 참가기(9)

등록 2005.08.18 18:55수정 2005.08.1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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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학생소년궁전의 공연 장면

학생소년궁전의 공연 장면 ⓒ 박도

상대의 좋은 점은 과감히 받아들여야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사회나 제도, 이념, 사상에는 100퍼센트 진선진미한 것은 없다고 본다. 어느 사회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고, 제도 이념 사상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발전하는 것은 그 사회의 단점을 극복하고, 더 나은 제도나 사상으로 진보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분단된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분단 때문에 이미 엄청난 비극과 참상을 치렀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비극과 참상에 원망과 한탄만 한다면 역사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이 비극과 참상의 원인 규명을 밝히는 일 못지않게, 이 굴레를 벗어나는 방안을 찾아내고, 이 비극과 참상의 아픔을 전화위복으로 삼는 일이 더 미래지향적인 과업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분단국이다. 이 때문에 나라 발전에 엄청난 피해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두 체제를 함께 체험한 이점도 있다. 또 어떤 이는 분단과 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났 수 있었다고도 말하기도 한다.

이제는 남북 서로 자기 체제가 더 옳다는 식의 체제 경쟁을 하면서 상대를 깎아내리는 못난이들의 다툼에서 과감히 벗어나 상대 체제의 장점은 인정하면서 자기 체제의 단점을 보완하고 상대의 좋은 점은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민족 전체가 발전할 거라 믿는다.

나는 장차 통일된 우리나라는 그동안 체득한 두 체제의 장점(웃점)이 결합된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남과 북이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그동안 우리가 겪었던 비극과 참상에 대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또 이것이 우리를 갈라서게 한 강대국에 선의의 복수를 하는 길이다.

a 가야금 공부방

가야금 공부방 ⓒ 박도


a 무용 연습 장면

무용 연습 장면 ⓒ 박도

기립 박수로 화답


"어린들은 우리나라의 보배들입니다. 앞날의 조선은 우리 어린이들의 것입니다. 김일성 1989. 4. 15"

평양 학생소년궁전 현관 벽에 새겨진 글이다. 이곳 학생소년궁전을 둘러보는 내내 나는 감동과 환희에 빠졌다. 만경대 학생 소년궁전은 소년소녀들을 지·덕·체를 갖춘 인격체로 키우기 위해 마련한 교육기관이었다. 학교에서 정규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저마다 소질에 따라 자기 재능을 닦는 곳으로, 일만여 명의 학생들이 60여 개의 소조실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a 소녀들이 자수를 익히고 있다.

소녀들이 자수를 익히고 있다. ⓒ 박도

국악, 가야금, 무용, 아코디언, 서예, 수예, 성악, 컴퓨터를 배우는 티 없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앙증스럽고 귀여웠다. 무용실에서 소녀들이 춤을 배우는 장면은 마치 나비가 나풀거리는 착각에 빠지게 하였다. 이들의 종합공연은 서울에서도 보여준 바 있었는데 그 빼어난 수준에 공연 동안 내내 감탄의 박수가 그치지 않았다.

오늘의 우리 교육(남한)은 자본에 너무 찌들었다. 그리고 대부분 학부모들이 사교육비에 힘들어하고, 아이들 교육 때문에 '기러기 아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족까지 생이별하고 있다.

내가 오래도록 학교에 있은 탓인지, 우리가 북에서 배워야할 점 가운데 우선 눈에 띄는 그 첫 번째가 언어 및 역사 교육이요, 특기적성 교육이었다. 방과 후 일률적으로 실시하는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 그리고 도시건 시골이건 온 나라에 널브러져 있는 학원들을 잘 통폐합하여 학부모들이 부담이 덜 가게 하면서도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하면서 제 재능을 키울 수 있는 학습 풍토를 마련해 줘야할 것 같다.

a 인민학교(초등학교) 2년생이 동양화를 익히고 있다.

인민학교(초등학교) 2년생이 동양화를 익히고 있다. ⓒ 박도

공연 마지막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를 무대에 가득 찬 소년소녀들이 합창할 때는 가슴 뭉클함에 기립 박수로 화답하고는 소년궁전을 벗어났다.

고려호텔 객실로 돌아오자 아침에 내놓은 세탁물이 그새 도착해 있었다. 그동안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한 푼이라도 외화를 아낀다고 가능한 내 손으로 세탁하거나 아니면 비닐주머니에 넣어서 집에 가져왔는데 이번 북한 방문에는 복무원(종업원)들에게 맡기고 싶었다.

자존심이 강한 이들에게 몇 푼 주는 것보다 일감을 주는 게 체면을 살리면서 도와주는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길융 선생도 같은 생각이라면서 복무원을 불렀더니 속옷 양말까지 내놓으라 해서 모두 맡겼다.

참가단원들은 삼삼오오 술자리를 벌인 모양이었지만 온종일 강행군으로 피로한 나는 다음날을 위해 몸을 닦은 뒤 잠을 청했다. 여행은 잘 먹고 잘 자는 게 가장 중요하다.

a 막이 내리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를 노래하는 학생들

막이 내리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를 노래하는 학생들 ⓒ 박도

'봄남새말이 지짐'

2005년 7월 22일

옆 침대 이 선생님은 나보다 더 부지런하셨다. 먼저 일어나신 뒤 닦으시고는 나를 깨웠다.

7:00, 아침밥을 먹고자 2층 구내식당으로 갔다. 이미 밥상에는 임헌영, 윤형두, 김영현, 남정현 선생이 먼저 오셔서 자리 잡고 계셨다. 그날 먹을거리도 죽이 나왔다. 나는 전날 녹두죽과는 달리 팥죽을 공기에 담은 뒤 반찬을 접시에 담았다.

'봄남새말이 지짐, 낙지튀기, 닭고기 장과, 닭고기 토막조림' 등 이름도 재미있어서 조금씩 접시에 담았다. '봄남새말이 지짐'이 얼마나 정겨운 우리말이요, 우리 음식인가. 곧 봄나물 전을 말함이었다.

자리로 돌아왔더니 임 선생이 흰 우유 같은 것이 별미라고 맛보라고 하여 먹어보았다. '산유'라는 데 꼭 요구르트 맛으로 입안이 산뜻하였다. 아침밥상 화제는 어젯밤 학생궁전의 공연과 재북 인사 묘지였다.

임, 윤 두 선생이 경영 솜씨가 비상한 실천문학 김영현 대표에게 당신들이 보기에는 빈소년합창단보다 더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북측과 교섭하여 세계 순회공연을 기획해 보라고 말하자, 김 선생은 초판이나 나가면 다행으로 생각했던 <체 게바라 평전>이 뜻밖에 나간 탓이라고 겸손해 하면서 학생궁전 학생들의 수준 높은 공연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임 윤 남 선생 세 분은 재북인사 묘소를 다녀오신 바, 춘원 이광수 묘소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날 안내하러 오신 분의 말씀에 따르면, 다른 인사의 묘비에는 공적이 기록되었으나 춘원의 묘비에는 출생과 사망 연월일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a 재북 인사 묘소의 춘원 이광수 묘비. 묘비 옆에 앉은 분은 김지연(소설) 님이다

재북 인사 묘소의 춘원 이광수 묘비. 묘비 옆에 앉은 분은 김지연(소설) 님이다 ⓒ 이길융

그 까닭은, 1950년 10월 25일 한창 전쟁 중 황해도 시골에서 병으로 요양 중이던 춘원이 돌아가셔서 관리인이 김일성 주석에게 알리자 "춘원은 말년을 더럽게 살았다. 하지만 초기 우리문학에 끼친 공적을 생각해서 정성껏 묻어주라"는 지시에 따라, 공적기록은 생략한 채 묘지만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평생을 일관되게 살기가 쉽지 않나 보다. 그래서 매천 황현 선생은 "글 아는 선비 사람구실 어렵군 그래(難作人間識字人)"라는 절명시를 남기고 말년을 더럽게 살까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나 보다.

사람은 초년보다 말년이 더 살기가 어려운 것 같다. 늘그막의 처신 잘못으로 지난 삶의 공적을 하루아침에 더럽히는 이가 많다. 언저리 사람들이 아쉬워할 때 죽는 것이 큰 복이 아닌가 생각된다.

죽음의 복, 그래서 오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이라고 말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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