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신랑이 아니네!'

결혼기념일 아침, 축하 메시지를 보낸 건 남편이 아니었다

등록 2005.08.19 11:55수정 2005.08.1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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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문자 메시지의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경쾌하다. 누구일지, 무슨 내용일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바로 확인하지 않고 괜히 뜸을 들여 본다. 너무 큰 기대감에 보물 상자의 뚜껑을 선뜻 열지 못하고 그저 들여다만 보는 그런 심정이랄까. 아니면 어릴 적 눈깔사탕을 단번에 깨물지 못하고 혀끝으로 살살 녹여먹던 그런 심정이랄까. 하여간 단번에 눈으로 확인하기 보다는 머리로 상상해보는 짜릿함을 즐기고자 했다.

비 그친 시골 아침의 싱그러움이 진한 커피향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는지 오늘따라 유난히 커피 맛도 좋다. 셀 수 조차 없이 빼곡하게 박혀있는 해바라기씨들이 아웅다웅 앞다투어 야물게 익어가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것 같다. 있는 대로 여유를 부려 보았지만 겨우 10분이 흘렀다.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문자메시지 확인 버튼을 눌렀다. 순간.

언니가 보내 준 축하메시지
언니가 보내 준 축하메시지김정혜
…두 몸이 하나가 된 날. 멀리서 마음으로나마 축하한다는 말 전하고 싶네요.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그래. 잊고 있었던 건 아니었구나. 일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이렇게 축하메시지까지 보내주고. 정말 훌륭한 남편임에 틀림이 없군.’


행복에 겨워 메시지를 보고 또 보고. 그런데 마지막 문장이 좀 이상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라니. 결혼기념일이란 게 나 혼자만의 기념일이 아니라 남편과 내가 함께 하는 기념일인데 어째서 나더러 행복한 시간을 보내라고 한 것일까.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급하게 발신자 번호를 눌렀다. 순간 튀어 나오는 한 마디.


‘어? 신랑이 아니었네.’

문자메시지는 대구에 사는 언니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 언니와는 방송에 사연이 소개가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서로 언니, 동생이라는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었고 1년이라는 세월 동안 가끔 안부를 주고받으며 정답게 지내오고 있는 터였다.


언니나 나나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어도 피를 나눈 자매 못지 않게 지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성치 않은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것에 대한 동병상련의 정이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언니는 겪으면 겪을수록 참 배려가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가끔 속상한 일이 있어 하소연이라도 할 요량으로 내가 먼저 전화라도 할라치면 전화세 많이 나온다고 끊으라며 언니가 다시 내게 전화를 한다. 그리곤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어떨 땐 구구절절한 하소연이 지겹기도 할 텐데, 단 한 번의 귀찮은 내색도 없이 그저 ‘그래, 그래’ 하면서 끝까지 들어만 준다.

비가 오면 비 오는데 어떻게 지내냐고, 더우면 더운데 어떻게 지내냐고 언니는 늘 메시지를 보낸다. 그러고 보면 배려도 깊은 사람이지만 참 살뜰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도 같다. 몇 줄의 문자메시지에도 안부와 사랑을 가득 실어 보낼 줄 아는 살뜰한 성격을 가진 참 따뜻한 사람이다.

언젠가 한 번쯤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했을 내 결혼기념일. 바로 오늘이 그 결혼기념일인 것이다. 그런데 언니는 그것을 흘려듣지 않고 꼼꼼하게 기억해 두었다가 이른 아침에 축하메시지를 보내주었던 것이다. 참 세심하고 사려 깊은 너그러움이 아닐 수 없다.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눈물이 났다. 신랑이 아니었다는 것에 대한 실망의 눈물이 아니라 고마움에 북받치는 감동의 눈물이었다. 스치는 인연으로 만나 짧은 시간 정을 나누었을 뿐인데 내 기념일을 기억해두었다는 것, 더불어 잊지 않고 축하를 해주었다는 것. 눈물 날 만큼 고마운 게 사실이었다.

결혼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지방으로 일을 간 남편. 남편은 아마 결혼기념일을 잊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전화 한 통 없는 걸 보니. 내심 서운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남편을 향한 내 서운한 마음이 왠지 부끄러운 건, 이른 아침에 도착한 언니의 축하메시지가 너그러움과 배려에 인색한 나를 충분히 부끄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혼기념일! 언니 말처럼 둘이 하나 된 아주 특별하고도 의미 있는 오늘 아침. 난 너그러움과 배려를 배웠다. 서둘러 남편에게 내가 먼저 축하메시지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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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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