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주' 엄마와 '십좋소' 딸

꿈을 담은 나만의 단어 하나를 만들다

등록 2005.08.19 15:27수정 2005.08.1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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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한 인터넷 사이트 동호회 비공개 카페 이름이다. 운영자를 포함하여 회원은 모두 다섯 명. 아빠를 제외하고 엄마와 우리 네 자매가 가입한 카페로 2003년 2월 27일에 만들었다.


각자 한 개의 게시판을 만들어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가장 활발히 하고 있는 사람은 ‘바람꼭지’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는 우리 엄마다. 엄마가 만든 게시판의 이름은 ‘§돈이 쌓이네§-오서주-’이다. 원래는 ‘그리움만 쌓이네’였는데 엄마가 그리움보다는 돈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얼마 전에 바꾸었다.

그렇다면 ‘오서주’는 무슨 뜻일까? 이것은 엄마가 우리에게 낸 문제 중의 하나였다. 때는 2003년 3월 25일 낮 12시 20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의 게시판에 ‘엄마의 중대한 비밀 발표…’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단어, 오서주. 오서주의 뜻을 알면 답글로 올려라. 컴퓨러(엄마는 일부러 발음을 굴려 컴퓨러라고 쓴다. 그렇게 쓰면 신세대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클릭 한 번으로 만원을 벌었다. 구미시청 퀴즈 응모에서 만원짜리 문화상품권이 된 것이다. ‘오서주’의 뜻을 맞추는 사람에게는 이 문화상품권을 주겠다.

‘오늘부터 서서히 주인공에게 관(觀)해라’의 줄임말이라는 그럴 듯한 답을 내놓은 게 나였다. 엄마는 평소 자신의 마음속에 든 자신의 주인공을 보라고, 그것이 관하는 것이라고 누누이 말했던 터였다. 나의 이러한 답에 엄마의 답변은 이랬다.

“화영이말 정말 그럴 듯한데 정답은 아님. 근데 넘 정답 같아서 엄마 원래 뜻을 바꾸고 싶네여….”

그러나 정답은 아니었고, 만 원짜리 문화상품권은 내 손에 들어오지 못한 상태.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나는 정답을 알아내고 말았다. 미래를 그리는 대화를 하던 중 ‘엄마는 서점을 하면 아빠는 뭐하는 게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나는 정답을 말했던 것이다.


오년 후 서점 주인, 오서주.

시 낭송하는 엄마의 모습. "엄마가 미워질땐…"은 엄마가 남긴 글의 제목이다.
시 낭송하는 엄마의 모습. "엄마가 미워질땐…"은 엄마가 남긴 글의 제목이다.김화영

그랬다. 그것은 정답이었다. 엄마는 오년 후 서점 주인을 꿈꾸는 자신을 다독이며 오서주, 라고 스스로를 불렀던 것이다.


그때가 2003년 3월이었으니 벌써 2년이 훨씬 지났다. 3년쯤 지나면 엄마는 서점 주인이 되어 있을까? 그러길 바란다. 서점 주인이 되어서 책을 읽고 시를 쓰는 엄마의 모습을 그려보면 마음 한구석에 따뜻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주말이면 식당에 주방 보조를 나가면서도 그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시를 끄적이는 우리 엄마. 나는 오서주, 오서주 하는 것이 엄마 스스로를 힘내게 하는 주문과도 같음을 안다.

그래서 나 역시 그런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십좋소. 아무에게나 쉽게 말하지 못하는 나의 꿈을 혼자 중얼거리며 잊지 않는 것이다. 십좋소, 십년 후 좋은 소설가. 나의 꿈을, 미래를 담은 나만의 단어 하나를 만들어 내 마음 속 국어사전에 새기는 것이다. 그 단어 하나에는 현재를 이길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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