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호랭이가 담배 피던 한 옛날에...

창작동화 <붕어 빵 한개>를 읽고

등록 2005.08.20 15:25수정 2005.08.2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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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한 옛날. 호랭이 담배 피던 한 옛날에…."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늘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늘은 또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실까 싶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였고 한손은 어느새 축 처진 할머니의 젖가슴을 조몰락조몰락 거리고 있었다. 내 등 구석구석 가려운 곳을 족집게처럼 잘도 찾아내시는 할머니의 꺼칠꺼칠한 손바닥은 시원함에 진저리를 치게 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흥!"

어느새 할머니는 호랑이로 변해 있었고 그때쯤이면 방문에 어른거리는 호롱불의 너울거림이 꼭 호랑이를 닮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호랑이가 방안으로 뛰어 들어와 내게도 떡을 달라고 할 것 같았다.

앙상한 할머니의 품이 깊다면 얼마나 깊다고 자꾸만 파고들었다. 어느새 할머니의 목소리가 가물가물 해졌다. 익숙한 할머니 냄새에 코를 박으며 잠이 드느라 나는 날마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못했다.

30년도 훨씬 전이었던 그 밤이 불현듯 나를 찾아왔다. 축 처진 할머니의 젖가슴을 조몰락거리며 할머니의 가슴에 깊게 얼굴을 파묻은 채 할머니의 익숙한 냄새에 취해 어제 밤 난 잠이 들었다. 다르다면 어젯밤엔 옛날 그때와 달리 할머니의 그 이야기들을 끝까지 또렷또렷하게 다 듣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창작동화 '붕어빵 한 개'
창작동화 '붕어빵 한 개'김정혜
동화작가 김향이의 창작 동화집 <붕어빵 한개>가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바로 그 이야기들이었다. 이 동화는 내가 눈으로 읽어 내려가면서도 그 옛날처럼 내 등을 긁으며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였다. 왜였을까.


또 나이 마흔 둘에 이렇듯 동화를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에 혹시 내 정신연령이 아직도 유아기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어리석은 의문도 들게 하였다. 그것은 또 왜였을까.

1991년. 서른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에 등단한 작가의 이야기 속에는 바로 우리 어렸을 때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또 작가의 작품 속 주인공들에겐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영원한 내편인 할머니가 있다. 해체된 가족이나 결손가정에서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따뜻한 울타리인 셈이다.


어떤 아픔도 치유해주는 할머니의 사랑을 직접 느끼고 받으면서 주인공들은 사랑이라는 것을 배우고 터득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의도가 작가의 작품 속에는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워즈워드의 '우리들은 감탄과 희망과 사랑으로 산다'는 말을 동화창작의 지표로 삼고 있는 작가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아주 작은 일들,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이 쓸모를 찾는 모습, 작은 생물에게도 소중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글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전하고자 노력한다.

작가는 동화를 쓰는 것이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며 책에서 못 다한 이야기들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마당의 감나무가 비바람에 시달리고 있다. 나무는 메추리알만한 풋감을 주렁주렁 달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바람에 찢긴 감나무 잎과 풋감들이 패잔병처럼 땅바닥에 즐비하다. 연일 흐렸다 개었다 심술궂더니 어제는 천둥 번개를 앞세우고 종일 장대비가 쏟아졌다. 오늘은 바람이 휘몰아치고 반짝 그쳤다가 또 다시 소나기가 쏟아지더니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이렇게 여름은 요사스럽다.

하지만 나무는 묵묵히 그 여름을 견뎌내고 있다. 한번 정한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세월을 견디는 나무. 나무를 바라보는 내 눈길 또한 예사롭지 않다. 나무가 봄이면 꽃을 피우고 여름내 열매를 키우고 가을볕에 열매를 익히는 것처럼 나도 동화를 쓰는 일로 세월을 견뎌 내고 싶다.

갈수록 동화쓰기가 어렵다. 쟁깃날은 쓰면 쓸수록 날이 서고 날렵해지는데 내 작업은 왜 이리 굼뜨고 부실한지 모르겠다. 내게 동화를 쓰는 일은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

들꽃이 어우러진 숲길을 콧노래를 부르며 올라가다 험한 비탈을 만나고 그 비탈을 기어오르면 또 다시 벼랑을 만나 가슴 철렁 내려앉고 험한 산세에 눌려 그만 산을 내려가자고 자신과 타협하려 하고… 오늘도 나는 숨 가쁘게 산에 오른다.'


<붕어빵 한개>, 이 책에도 우리 주위의 아주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사랑이가 떨어뜨린 붕어빵 한개, 다락방을 정리하다 나온 못난이 삼형제, 사랑이가 잃어 버렸던 분홍 구두 한 짝, 희망의 집에서 만난 축복이 오빠, 친구인 힘찬이가 주고 간 선인장과 나팔꽃.

언뜻 보면 사랑이가 주인공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사랑이 주변에서 항상 함께 살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이 동화책의 주인공들인 것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저녁. 사랑이는 눈길에 미끄러지며 손에 들고 있던 봉지 속에서 붕어빵 한 개를 떨어뜨린다.

"에이, 흙이 묻었잖아."

사랑이는 흙 묻은 붕어빵을 꽁꽁 언 길바닥에 내던져 버린다. 버려진 붕어빵이 고양이에게서 늙은 쥐로 또 참새들에게서 개미들에게로 마지막엔 봄에 필 예쁜 풀꽃들에게까지 전해지는 과정을 그린 <붕어빵 한개>.

청소를 하기 위해 올라가본 다락방. 그곳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손때 묻은 공책, 성적표, 쥐를 잡자는 패찰, 일기장, 반성문, 그리고 꽃술이 달린 작은 버선, 탯줄, 또 못난이 삼형제 인형. 그것들은 할머니께서 소중히 모아두셨던 아빠의 보물들이었다.

울보 찡보 웃보라고 이름 지어진 못난이 삼형제 인형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아빠는 할머니를 추억하고 못난이 삼형제 인형은 그 옛날 동하(사랑이 아빠)를 추억하는 이야기인 '다락에서 나온 보물'.

분홍 리본이 달린 예쁜 새 신발을 신고 외갓집에 가는 사랑이. 할머니와 달강에 다슬기를 잡으러 간 사랑이가 벗어 놓은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다. 그 신발 한 짝이 들 고양이, 호랑나비, 일개미 형제, 들쥐, 참새를 거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결국 그 신발 한 짝이 참새의 침대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랑이는

"내 신발 내놔!"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사랑이는 참새에게 분홍침대를 선물 하는 대신 할머니껜 신발을 찾지 못했다는 거짓말을 한다는 내용의 '선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희망의집 축복이 오빠. 축복이 오빠에게 비밀이 생겼다. 사랑이는 친구들과 축복이 오빠의 비밀을 알고 싶어 축복이 오빠의 외출 길에 함께 따라 나서게 된다.

축복이 오빠의 비밀은 입으로 종이접기를 하여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는 것임을 알게 된지만 마술의 진짜 비밀은 끈질긴 인내와 노력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인 '마술의 비밀'.

힘찬이가 주고 간 사랑이네 선인장. 그 옆에 나팔꽃이 선인장 꽃보다 먼저 피어 사랑을 독차지한다. 그 나팔꽃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선인장이지만 하루도 못가 시들고 만 나팔꽃에게 아쉬움을 느끼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눈 내리는 어느 겨울. 선인장도 마침내 예쁜 꽃을 피우고 사랑을 받지만 선인장은 나팔꽃을 그리워한다. 그 선인장을 보며 사랑이는 힘찬이를, 엄마는 외할머니를, 선인장은 나팔꽃을 그리워 한다는 내용의 '나팔꽃과 선인장'.

작가는 이 다섯 편의 동화들을 통해 우리에게 잊혀진 것, 감춰진 것, 작은 것, 못난 것, 지난 것의 존재에 대해 그것들의 의미와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감칠맛 나는 입말체와 리듬감 있는 문장으로 재미나게 들려준다.

아마도 그것이 이유인 듯싶다. 눈으로 읽으면서도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는 듯한 착각과 마흔 둘의 나이임에도 이 동화가 그렇듯 흥미로웠던 이유가.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는 만큼 우리는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 더불어 우리들의 마음도 그만큼 메말라 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찌든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이 동화책 한권으로 깨끗이 정화시켜 보면 어떨까 싶다.

붕어빵 한 개

김향이 글, 남은미 그림,
푸른숲주니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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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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