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달픈 사연을 간직한 며느리밥풀꽃노태영
며느리밥풀꽃은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착한 아들과 어머니가 살았답니다. 단 둘이서 살고 있으니 아들과 엄마는 서로 얼마나 사랑했겠습니까? 아들이 장가를 들게 되어 며느리를 맞이하여 식구가 하나 늘게 되었습니다. 산골에서는 먹을 것이 항상 부족한 생활이 눈에 선합니다. 결국 새색시와 어머니를 집에 남겨 놓고 새신랑은 머슴살이를 떠납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머슴살이를 하면 거의 일년 동안은 떨어져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간혹 집에 오는 경우는 농한기나 할 일이 없는 때를 골라 잠시 집에 오게 됩니다.
당연히 집에는 며느리와 시어머니만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들 생각에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잘 해주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며느리를 학대하고 힘들게 했나봅니다. 그러나 보니 며느리의 모든 행동과 행실이 시어머니에게는 좋지 않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일로 트집을 잡고 꼬투리를 잡아 며느리의 몸과 마음을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깊게 생각해 보면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미워서 그랬겠습니까? 남편도 없는 새색시가 혹시 딴 생각을 하거나 생활이 해이해지는 것을 미리 막으려고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자주 트집을 잡다보니 이젠 모든 것이 좋지 않게 보였겠지요.
그래도 며느리는 착해서 시어머니의 구박을 다 견디어내고 이해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며느리가 밥을 짓고 있었습니다. 가마솥에 밥을 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전기밥통이나 압력밥솥에 밥을 하기 때문에 쉽게 밥을 하지만 말입니다. 불을 때서 밥을 하려면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불을 지피는 것도 힘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가마솥에 밥을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쌀과 보리나 감자를 넣고 물의 양을 적절하게 하고, 불의 세기와 시간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지금이야 건강식으로 잡곡밥도 먹고 보리밥, 감자밥, 무밥도 먹지만 저희가 어렸을 때는 쌀이 부족하기 때문에 쌀을 아끼기 위해 감자나 무나 보리를 섞어서 밥을 지었습니다. 보리쌀이나 감자는 가마솥 바로 위에 놓고 그 위에 쌀을 한 줌이나 두 줌 정도를 놓고 밥을 하게 됩니다.
그래야 쌀이 덜 타게 되고 나중에 쌀밥을 퍼서 어른에게 올리기에 편합니다. 신기하게도 쌀밥과 보리밥이 서로 섞이지 않습니다. 아버지 밥을 쌀밥 위주로 푸고 나머지는 사정없이 섞어버립니다. 결국 쌀밥은 아버지 몫이고 우리는 보리밥으로 배를 채우게 됩니다. 물론 아버지는 항상 몇 숟가락 정도 남겨놓으시곤 했습니다. 바로 막둥이 차지가 되는 것입니다.
밥을 할 때도 정성을 많이 들여야 합니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새까맣게 타거나 삼층밥이 되곤 합니다. 그래서 가마솥에서 허연 김이 요란하게 새어나올 때 솥뚜껑을 열고 밥알 서너 개를 입에 넣고 깨물어 봅니다. 어느 정도 뜸을 더 들여야 적당한지 맛을 보는 것입니다.
며느리는 이날도 평소처럼 밥알 서너 개를 꺼내어 맛을 보고 있었는데 이 광경을 본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혼자서 밥을 다 먹어버린다고 생각하여 며느리에게 호되게 매질을 했나 봅니다. 결국 며느리는 밥알을 입에 물고 쓰러져 시름시름 앓다 이 세상을 등지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들은 달려와 통곡하다 아내를 불쌍히 여겨 양지바른 언덕에 이쁘게 무덤을 만들어 묻어주었습니다.
이듬해 여름이 되자 풀들 속에서 마치 며느리 붉은 입술에 밥알 두 개가 묻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꽃이 피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착한 며느리가 밥알을 먹다 죽었기 때문에 그 넋이 한이 되어 무덤가에 꽃으로 피어난 것이라 여기고 '며느리밥풀꽃'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김태정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백가지>(현암사)에 나와 있는 이야기입니다.
슬프고 애달픈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서양의 그리스로마신화나 전설에서 유래한 꽃 이야기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실감이 나게 되는 겁니다. 물론 이 꽃을 알려면 환경과 배경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솔직히 며느리밥풀꽃을 어렸을 때는 자주 보았고, 쌀밥의 슬픈 사연과 가난의 아픔을 경험했기 때문에 쉽게 이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이해가 쉬웠을 것입니다.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직접 자주 보다보면 스스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