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개 번호가 다 있으면 1등이냐?"

칠순 어머님의 로또 1등 당첨소동

등록 2005.08.22 16:31수정 2005.08.23 13:4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니는 한 달 전 위암수술을 받으셨다. 집안의 4대 독자인 아버지와 결혼해 아들 넷을 낳는 만루 홈런(?)을 치시는 바람에 할아버지로부터 온갖 사랑을 받으셨다.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고 중풍으로 누우신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병수발을 하시며 아들 넷 뒤치다꺼리를 하시느라 온갖 고생을 다하셨다. 전쟁이후 먹을 것 입을 것이 변변치 않던 시절을 지나며 고생하신 분이 어찌 우리 어머니뿐이겠는가 마는.

아버지가 40대 중반에 갑자기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온갖 시련을 다 겪으셨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몇 달 전 칠순잔치를 하기 전까지도 병원에서 어려운 환자들을 보살피며 큰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해오셨는데 갑자기 암이라는 진단결과를 받고 무척이나 힘들어 하셨다.

몇 해 전 마련한 텃밭 달린 시골집에서 온갖 밭작물을 가꾸시며 "이제는 무공해채소나 손수 길러 손자손녀들 밥상에나 올려야겠다"고 나름대로 계획을 갖고 계셨는데 느닷없이 암수술을 받게 되신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앞마당에 옥수수와 나물 등을 정성껏 가꾸시며 이따금 들르는 손자손녀들 손에 하나라도 더 쥐어주시지 못해 안타까워 하신다.

어머니가 드디어 조상의 은덕을 입으시는가 보다

얼마 전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꿈자리가 하도 뒤숭숭한데 혹시 무슨 일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일 없어요. 괜한 꿈인 것 같네요. 나쁜 꿈을 꾸시면 복권이나 한 장 사보세요"하며 기분전환을 하시라는 뜻에서 말씀을 드렸다. 주말저녁에 다급한 목소리로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오셨다. "얘야 네 말 듣고 로또를 샀는데 아무래도 이상해"하시며 1등 당첨번호를 확인해보라고 하셨다. 딸아이에게 시켜 당첨번호를 검색한 후 알려드렸다.


6개의 번호를 말씀드리니 "얘, 이 여섯 개 번호가 다 있으면 1등이냐?"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네. 그런데요. 번호 여섯 개가 다 있으세요?"하고 물으니 모두 있다는 것이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다급하게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아내에게 갔다. "여보 어머니가 로또를 사셨는데 1등인가 봐"라고 했더니 아내는 "뭐라고요. 정말요?"라며 달려왔다. 당첨금은 10억 원이 넘었다.

나는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할 것 같아 다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는 "얘 10억 원이면 이를 어찌하면 좋으냐"하셨고 나는 "글쎄요 일단 내일 돈을 찾아야지요"하며 다시 번호를 확인하였다. 틀림없이 6자리 그것도 보너스 번호까지 다 맞는다고 하셨다. 나는 "조금 기다리세요. 제가 바로 갈께요"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막내는 "아빠 할머니가 로또 1등이면 우리 차 한대 사주실까"하며 물었다. 아내는 “그럼 당연하지”하며 찌개가 끊어 넘친다며 황급히 부엌으로 달려갔다.


로또 1등과 2등이 함께 당첨. 이를 어쩌나!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얘야, 2등도 같이 되었나보다. 6자리가 다 맞고 나머지도 다섯 자리가 맞아”하셨다. 나는 “그럼 번호를 불러보세요”하고 종이와 펜을 준비했다. 불러주신 다섯 개 수는 맞았다. 꿈과 같았다. 1등과 2등이 모두 다 되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토록 고생하시더니 조상님들이 복을 내려 주시는 게 틀림없었다.

어머니는 “얘. 그런데 1등과 2등이 모두 한 장에 있는데 그래도 돈은 다 받을 수 있냐”하시는 것이었다. “1등과 2등이 모두 한 장에 있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하니 어머니는 1등 여섯 자리를 제하고 다섯 개 번호가 또 맞는데 그래도 1등과 2등 당첨금을 받느냐는 것이다. 아니, 한 장에 그렇게 많은 수가 있을 수가 없는데….

다시 냉정해졌다. 어머니께 지금 가지고 계신 복권이 몇 장이냐고 물었고 어머니는 두 장이라고 하셨다. 나는 두 장안에 몇 줄이 적혀 있냐고 물었고 어머니는 열 줄이라고 대답하셨다. "아니, 그럼 10게임을 사셨네요. 그럼 다섯 줄에서 6자리가 맞으셨나요?"하니 어머니는 그렇다는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더 이상 묻고 답하기가 두려워졌다. 그러나 마지막 확인절차는 진행되었다.

나는 "가지고 계신 복권번호를 모두 말씀해 주세요"하였고 어머니는 그리하셨다. 맞다. 받아 적은 번호를 확인해보니 한줄(한 게임)에 1-2개씩의 숫자가 당첨번호와 같을 뿐 결과적으로 한 게임도 당첨된 것이 없었다. 어머니는 복권 한 장(5게임)에 6개 수가 있음을 1등으로 착각하셨다. 모든 상황은 끝났다.

집안에 헛돈 들어오면 골치 아플 수도

나는 이 사실을 어머니께 알려드리고 앞으로는 복권 사실 때 두 게임(이천 원어치)만 사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불과 20분간의 일확천금 해프닝은 통쾌하기만 했다. 저녁상에 둘러앉은 우리는 신나게 웃으며 식사를 하였다. 작은 딸이 "할머니가 복권이 되면 정말 좋겠다"라고 하자 막내는 "그래 그러면 꼴아빠진(?) 아빠 차 바꿀 수 있는데"라며 깔깔거렸다.

1등 당첨이 안 되어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 생각해보니 차라리 안되는 게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그 돈이 꼭 필요하신 것도 아니고 마땅히 쓰실 만한 데도 없으시다. 차라리 3등 정도가 되어 손자손녀들 용돈이나 선물을 마음껏 사주실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괜히 집안에 헛돈 들어오면 골치만 아플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암수술로 우울한 어머니께 로또 1등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비록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러나 즐거웠습니다. 열심히 사는 게 행복임을 느꼈습니다.

덧붙이는 글 암수술로 우울한 어머니께 로또 1등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비록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러나 즐거웠습니다. 열심히 사는 게 행복임을 느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3. 3 수렁에 빠진 삼성전자 구하기... 의외로 쉽고 간단한 방법 수렁에 빠진 삼성전자 구하기... 의외로 쉽고 간단한 방법
  4. 4 남자를 좋아해서, '아빠'는 한국을 떠났다 남자를 좋아해서, '아빠'는 한국을 떠났다
  5. 5 관광객 늘리기 위해 이렇게까지? 제주 사람들이 달라졌다 관광객 늘리기 위해 이렇게까지? 제주 사람들이 달라졌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