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리우니 나도 사람이다

나이 사십에 도전했던 백두대간 연속 종주이야기

등록 2005.08.23 13:45수정 2005.08.2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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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표언복교수의 백두대간 이정표

표언복교수의 백두대간 이정표 ⓒ 정성필


a 궤방령 목장지대

궤방령 목장지대 ⓒ 정성필

삼성암 앞 공터에 텐트를 쳤다. 아침에 해 뜨는 풍경이 아름답다. 오늘은 맑을 듯하다. 황악산을 향해 간다. 물은 충분하다. 폐초소를 지나 전망대까지 올라가니 시간이 여유가 있다. 점심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았다. 궤방령 가서 식사를 해야할 듯하다. 백운봉을 지나 운수봉 향해가는 길에 표언복님의 이정표가 붙어있다. 새맥이재부터 샘터라든지 길 안내 도움을 받고 있는 표언복님의 이정표는 큰 도움이 된다.

궤방령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다. 나는 목장길로 내려섰다. 내려가는 길에 몇 번 넘어진다. 엉덩이는 흙투성이다. 폐농장인데 전망이 좋다. 길은 대간에서 내려서서 마을을 통과해서 다시 마루금을 밟아 추풍령 가는 길로 코스를 잡았다. 추풍령까지는 서둘러야 한다. 점심은 오리골에 들어가서 먹기로 한다.


a 장미꽃이 있는 집 담장에서

장미꽃이 있는 집 담장에서 ⓒ 정성필

오리골 들어가기 전 포장도로 옆 장미가 아름다운 집으로 들어간다.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신다. 물 좀 얻을 수 있냐 했더니, 백두대간 중이냐 묻는다. 여기서 밥도 먹고 쉬다 가란다. 사십이 조금 넘은 분인 듯한데 서울서 살다 정착한 지 몇 년 안됐단다. 사람이 반가워 그러니 부담갖지 말라 하신다. 작은 키에 곱상한 얼굴이다. 햇볕에 그을린 곳은 없다. 장미가 많은 집 마당에서 코펠과 버너를 꺼내 밥을 한다. 아주머니가 반찬을 내오신다.

나에겐 이미 해인리에서 얻어온 김치가 충분한 데도 신세를 지기로 한다.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니 미리미리 챙겨두자는 계산도 있다. 밥을 먹고 그 집 마당을 청소해준다. 아주머니가 그러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미안해서 일을 하고 만다.

아주머니는 너무 더운 날씨니, 집 옆 정자에서 한숨 자고 가라신다. 하지만 오늘은 갈 길이 멀다. 추풍령까지 가야한다. 대간 마루금으로 가지 않고 약간 비켜서 오리골로 들어선다. 오리골까지 가는 길 아스팔트에서 삼십도가 넘는 열기가 올라온다. 숨이 턱턱 막힌다. 오리골 이정표를 찾은 뒤 곧바로 418봉을 향해 오른다. 오르다 할머니 한 분이 물이나 마시고 가라면서 집으로 안내한다.

a 산딸기

산딸기 ⓒ 정성필

이곳은 인심이 좋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냥 가게 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잠시 물도 마시면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다. 시골 노인들. 백두대간 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들은 늘 외롭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면 그냥 보내 주지 않는다. 이야기를 한다. 대화를 원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백두대간 길 혼자 걷고 있지만, 사람이 그리울 때는 미치도록 외롭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사람이므로 함께 살아야 한다. 산에 있을 때는 산이 좋아 마냥 산에서만 살 것 같지만 언젠가는 외로워서, 사람이 그리워서 산에서 내려오고 말 것임을 안다. 사람이 그리우니 나도 사람이다.

할머니가 발도 닦고 가라고 계속 권해서 발도 닦고 등물도 해주셔서 땀으로 절은 몸을 시원하게 씻는다. 집을 나서기 전 할머니의 흙집과 장독대를 사진에 담는다. 정겨운 모습이 곳곳에 남아있다. 할머니의 집을 나서면서 곧바로 418봉을 치고 가는데 가는 길 내내 오디에 산딸기 밭이다. 오늘은 급히 가야하는 걸음인데, 두 집이나 들렀고, 산딸기의 유혹에 발걸음을 잡힌다. 생각을 바꾼다.


“어차피 혼자 가는 길,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산길 여유롭게 가다 서다 하는 것, 그것 때문에 혼자 이 길 가는 것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산을 즐기는 게 아니라 여기서 저기 가는 게 목표가 되었는가? 여유있게 가자. 가다 못가면 쉬어가더라도 천천히 가자.”

a 할머니댁의 장독대

할머니댁의 장독대 ⓒ 정성필

산딸기도 따먹고, 오디도 실컷 따먹는다. 입은 온통 붉은 색에 오디의 검은색물이 들어 난리가 아니다. 행복하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어디 있을까? 오디와 산딸기가 많아 칡 잎을 따 오디와 딸기를 싼다. 가다 수시로 칡이파리를 열어 산딸기와 오디를 먹는다.


418봉으로 접근하는 길은 험했다. 낮은 산이었지만 사람이 다니지 않은 길에다, 온통 가시나무 투성이여서 온팔에 가시가 박힌다. 길을 찾아야 하는데, 가파르기까지 하다. 차라리 마루금을 밟으면서 갈 걸, 조금 돌아가려다 더 고생한다 생각하니, 어리석은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마루금을 벗어나서 만난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람을 만나는 재미, 그것도 백두대간을 하는 재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 시간을 조금 더 가니 가성산이 나온다. 가성산에서 장군봉으로 해서 눌의산을 지나면 추풍령 휴게소다. 가성산에 도착하니 5시가 조금 안됐다.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도착한다. 추풍령까지는 해가 있을 때 갈 듯하다.

낮은 산이 반복된다. 잡목이 배낭과 옷깃을 계속 잡아챈다. 낮은 산은 바람도 덜해 덥고, 습하고, 잡목 때문에 걷는 게 고역이다. 빨리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걷는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앞서 뛸 수만 있으면 뛰어가고 싶은 구간이다.

a 뒤돌아 본 황악산

뒤돌아 본 황악산 ⓒ 정성필

눌의산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세 번째 헬기장에서 길을 찾는다. 조금만 가면 추풍령이다. 우측으로 금릉군 공원묘지가 보인다. 많은 무덤이 보인다. 추풍령을 내려서는데 길을 잘못 든다. 되돌아가기엔 곧 어두어질 듯해 직진으로 무조건 내려가니 길이 나온다. 승합차가 몇 대 서 있는데, 모두 식당차다. 추풍령이 어디냐 하니 태워준단다. 무작정 차를 탄다. 타고 나니 식당차란다. 고속도로 밑에 세워두면 트럭기사들이 차를 고속도로에 세우고 내려오면 태우고 식당까지 에스코트한단다.

결국 나는 그 차를 탄 죄로 식당으로 인도됐다. 오 분도 채 못 가 식당이 나온다. 해는 지고 있고 이미 마을 한복판이고 어디서 밥을 해먹기도 그렇고 결국 삼겹살을 시켜 먹는다. 거창에서 먹는 맛은 아니다. 다만 산에서 뜯은 취나물과 참나물에 삼겹살을 싸먹는데, 나물 향에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다. 어디 잘 데 있냐 물으니 식당 주인은 엉뚱하게 자랑만 늘어놓는다.

몇 년 전 허영호씨인가 허영만씨인가 백두대간팀 몇 십 명이 자신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자고 갔다는 것이다. 그럼 지금 잘 수 있냐 물었더니 식당이 다 끝난 다음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어 나는 근처 여관에 자리를 잡는다.

산에서 자는 잠을 거창에서의 탈출 이후 몇 번 안잤다. 하지만 몸도 가끔은 편한 잠자리에서 쉬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한다. 여관에서 빨래를 한 후 잠에 든다. 내일은 용문산 기도원을 가봐야겠다. 그러면 일찍 출발해야 한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창 밖으로 추풍령의 노을이 붉다.

a 추풍령에서 본 노을

추풍령에서 본 노을 ⓒ 정성필

덧붙이는 글 | 2004년 5월 16일 부터 7월 4일까지 나홀로 걸었던 백두대간 연속종주 이야기

덧붙이는 글 2004년 5월 16일 부터 7월 4일까지 나홀로 걸었던 백두대간 연속종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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