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 깨나도 만화로 장사할 재주 없어"

[토크] 만화가 이현세와 문화산업컨설턴트 윤주의 유쾌한 수다

등록 2005.08.25 11:31수정 2005.08.2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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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포이동 만화가 이현세씨의 작업실에 문화산업컨설턴트 윤주씨가 찾아왔다. 작가와 팬 혹은 창작자와 마케터로서의 두 사람의 만남. '팔릴 것인가, 팔리지 못할 것인가' 결국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화두로 오랫동안 이어진 그 둘 사이의 '가볍고도 무거운' 한낮의 수다를 담았다.... 기자 주

윤주(이하 윤) : 어머, 제가 둘리나라를 떠난 걸 모르셨다고요?
이현세(이하 이) : 네, 까맣게 몰랐어요. 최근에 들었어요. 어디 여행은 좀 다녔어요?


: 네, 그동안 재충전을 조금 했어요. 그런데 그 사이 사람들은 저를 결혼 시키고 영국으로 이민 보냈더군요.(웃음)
: 한순간도 쉬는 적이 없이 일하시는 분이니 그런 얘기가 나돌 만도 하죠. 이제 새로 일 시작할 것 같은데, 생각해 놓은 특별한 일이 있나요?

: 라이선싱비즈니스에 관련한 모든 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선생님도 요즘 영화로, 드라마로 지금 준비 중이신 게 많죠? 진행 상황은 어떠세요?
: 걸려 있는 건 많은데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난, 본래 그런 것에 잘 관계 안하잖아요.

만화가들, '고급장사' 해 줄 사람 필요해

a 만화가 이현세

만화가 이현세 ⓒ 홍지연

: 그러시면 안 되시는데. 만화가들도 적극적으로 계약에 나서셔야죠. 아니면 중간자를 두시든지.

: 만화가와 마케터. 생리적으로 좀 다른 것 같아요. 만화가들은 거의가 그런(장사) 얘길 하는 걸 싫어하는 것 같고…. 그나마 김수정씨 정도면 만화 작가들 중에는 상업적인 감각이나 비즈니스가 특별한 사람 축에 속하죠. 허영만이나 이원복도 그 정도면 계약이나 자기 콘텐츠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고요. 문제는 이두호나 이현세 같은… 전혀 그런 개념이 없죠. 계약서 앞에 두고 이것저것 따지는 걸 미안해 하니(웃음).


: 뭐가 '될'지 작가들은 스스로 알잖아요. 저야 산업화 시키는 쪽이어서 생각이 좀 다르긴 하지만요. 그런데 원작도 원작이지만 어떤 작품이든 제대로 리노베이션을 해줄 사람 만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올드보이>때 박찬욱 감독의 영특함에 놀랐어요. 원작에는 주인공에게 온갖 중국 음식을 다 먹이는 걸로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딱 군만두만 먹이는 거예요. 정말 얼마나 지겹겠어요. 실제로 작품을 현실화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 나는 예전부터도 그런 말을 하곤 했는데, 만화가 아주 개인적인 작업이라서 대부분의 만화가들은 밖에 나가 자기를 알릴 시간이 없고, 장사를 할 시간은 더더욱이나 없어요. 장사 자체에 익숙지가 않은 거죠. '자존심'이란 게 걸리는 거예요. 이 바닥에 제일 필요한 게 '고급장사'를 해 줄 사람인데, 사정은 그렇지 못하죠.

나도 가르치고 있지만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작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 중에서 5%만 작가가 되어도 아주 성적이 좋은 거죠. 가능하면 그 중에서 몇 명은 만화에 대한 전문 프로듀서들이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만화가들도 장사꾼과 얘길 할 수 있네 없네 말은 많지만 속으로야 돈벌었으면 하는 마음을 모두 갖고 있으니까요.

: 그렇게 둘 사이의 간극을 맺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콘텐츠 매니저'죠. 장사꾼과는 조금 달라요. '장사꾼'으로만 불리는 사람은 재미라든지 작가 특성에 대해 설정적 측면에서 접근을 못하니까요. 중간 채널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 작품 안에서 상품화 가치를 찾아내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콘텐츠가 '왕'인 건 맞아요. 그런데 중요한 건 비즈니스가 콘텐츠를 좌우하는 몫이 분명히 있다는 거죠.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재미 그 자체로는 1차원의 소비에서 끝나고 마니까요. 그런데 보다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해 사람들을 설득하고 작품과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주면 콘텐츠가 더 빛날 수 있어요. 더 많은 영역으로 확장해주는 것도 가능하죠.

: 만화가들은 그런 게 죽어도 못 되는 것 같아요.

작가들 최대의 고민 "내 시대가 가는구나"

a 문화산업컨설턴트 윤주

문화산업컨설턴트 윤주 ⓒ 홍지연

: 죽어도 못 되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죠(웃음). 저는 죽어도 창작이 안 돼요. 그렇지만 이게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식의 접근은 가능하죠. 인기와 수익모델 발생을 위한 근거를 세워나갈 수 있어요. 그러면서 창작자들의 고민이 뭘까 하고 도움이 될 만한 요소도 찾고요.

: 창작자들의 고민은 단 하나죠. 잘리는 것. 인기작가로 한 4, 5년 가봤던 작가에게는 공포가 있어요. 어느날 잘려 버릴 것 같은 공포. 만화란 게 다른 매체랑 또 다른 것은 만화의 연출 특성상 한번 연재를 시작하면 계속 연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페이지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니 웬만해선 잘릴 일도 없죠. 또 웬만하면 안 자르니까 어딘가에서 한번 잘리면 다른 데서도 이미 필요 없다는 뜻도 되어 버려요. '자기 시대'가 갔다는 것을 의미하죠.

(잘리고 나면) 오히려 한두 달은 편한데, 두 달 넘고 6개월 되면 당장 먹고살기가 걱정이야. 그리고 고독이 고독이 찾아오는데 그 고독은 차라리 '공포'예요. 나란 존재가 서서히 잊혀져 버리고 만다는 공포.

만화가는 연예인과 다른데

: 그래서 만화가들을 관리해줄 만한 인력들이 필요하죠.

: 만화쪽에도 매니저가 있긴 한데 그 중 몇몇은 연예인들을 '관리'하던 쪽이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연예인과 만화가는 다르다는 겁니다. 정말 달라요. 몸 만들고 노래하는 거랑 무언가 계속해서 쥐어짜내야 하는 것이랑은 다르죠. 또 그들과 달리 만화가는 인기 있다고 작품을 하나 더 받을 수도 없고, 초조하거나 답답하면 작품 성향마저도 바뀌어버리니까.

: 전 요즘 창작과 바로 연계해 기획하는 것도 관심이 있지만 그건 15% 정도이고, 나머지 85%는 발굴을 생각하고 있어요. 기존 선생님 세대 작가들이 만들어 놓은 것과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가져다 리노베이션 하는 작업요.

그런데 정말 오스틴파워의 '모조'처럼 뭔가 '왕성한 시기'라는 게 따로 있다는 걸 느껴요. 요즘 젊은 작가들을 보면 많이 안타깝죠. 만화계에도 튼튼한 허리 세대가 있었으면 하는데, 두터운 선생님 세대 이후 중간 벨트 같은 작가들이 아쉬워요. 김수정, 이현세, 허영만 등 정말 주옥같은 작품들이 얼마나 많았었나요. 요즘도 물론 눈에 띄는 작가들은 몇몇 있지만 예전 만화 전성시대 같지가 않아요.

: 숫자가 적어서 그렇죠. 앞으로 윤주씨 같은 분이 우리 만화가들을 많이 도와주시면 좋죠.

: 그래서 만화가협회 쪽에 있는 만화가들을 발굴하려고 생각중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역시 제일 좋은 장르는 만화인 듯해요. 물론 소설도 많지만 비주얼이 나타나 있지 않는데 만화는 캐릭터도, 아이덴터티도, 내러티브도 살아 있잖아요. 그 양도 충분히 앞으로 계속 기대할 만하죠.

지금은 그렇게 주옥 같은 숨겨진 보석같은 작품들, 그리고 스타작가가 필요한 때예요. '모 콘텐츠의 작가 아무개'가 아니라 '작가 아무개의 모 콘텐츠'가 되어야만 브랜딩이 되죠. 제가 하고 싶은 일도 좋은 작가를 키우고 계속 작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작가 브랜딩' 작업입니다.

: 그런데 요즘 만화가들은 자꾸 밖으로 나와서 걱정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책상에 앉아 있어야 (원고가) 나오는 것인데. 물론 개중 몇 정도는 정말 대형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결국 자기 손으로 그리는 것은 서서히 끝이 나는 것이죠.

: 전 요즘 PD나 감독들한테서 연락을 많이 받아요. 거의가 만화 콘텐츠를 소개해달라는 내용인데, 이미 팔린 것도 많기도 하지만, 그들도 과정에 있어서는 서투른 것 같아요. 직접 적 대화가 안 되니 안타깝죠. 선생님도 그 많은 작가들은 다 모르고 계실 정도로 (작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작가와 콘텐츠의 데이터베이스화도 시간을 내서 꼭 해보고 싶어요.

: 한국만화가협회나 우리만화연대, 젊은만화작가모임 등 각 단체들을 전부 합치면 가능할 겁니다.

만화가들 하나로 모이는 '온라인 만화 포털' 마련된다

a

ⓒ 홍지연

: 얼마 전에 문화콘텐츠리더스클럽 회장이 되셨죠? 축하드릴 만한 일이지만 만화가협회장에 회장까지 책임이 무거우시겠어요.

: 그렇죠. 잘해야 할 텐데. 사실 요즘 이희재 회장(우리만화연대)이랑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도 '온라인 만화웹진'을 하나 만드는 거예요. 거기에서는 작가라면 누구나 연재를 할 수 있죠.

: 정부에서 자금이 나오나요?
: 아마 초기자금만 대는 형태가 될 겁니다.

: 사실 그런 식의 접근들이 예전에도 몇몇 있긴 한데 좀 약하죠?

: 이 웹진은 앞서의 것들과 성격이 좀 달라요. 예를 들어 만화가 그만두고 치킨집을 하는 사람의 얘기를 해봅시다. 그 사람도 밤에는 불현듯 뭔가 그리고 싶은 게 한쪽 두쪽 정도는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걸 어디에 싣자니 미약하고, 다른 데 실으려면 돈을 내야 하잖아요? 또 오프라인은 뚫기 어렵고….

이 웹진은 어느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에요. 보통 다른 글 쓰는 사람과 다른 것이 우리 만화가들은 지속적으로 작품을 토해내지 않으면 작가생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그런 원고들까지도 부담없이 소화해줄 수 있는 창구가 되는 거죠.

: 그럼 일종의 온라인 만화 포털인데, 운영은 어떤 형태로 될까요?

: 일단 지자체나 회사가 위탁 경영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작가들도 협회도 돈벌이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니까. 단지 편집자문단은 작가들로 구성할 생각이에요. 모든 작가들한테 중간 마진없이 고료를 주는 대신, 우만연이든 협회든 각 협회 일정 비율의 수익을 떼서 기금을 만들 예정이에요. 그 내용은 철저하게 프로티지로써 구분할 생각이고요.

가령 서사적 원고를 쓰는 작가 20%, 애니메이션 등에 대한 학술 관련 원고 10%, 신인들의 등단의 원고를 위한 창구 또한 일정 부분, 원소스멀티유스 관련 50%의 식으로 적어도 이 웹진을 통해 기금이 마련되고, 협회장이 사재 안 쓰고 협회 운영비 정도는 마련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 그래야죠. 이제껏 선생님들이 사재 털어 협회를 근근히 이어오셨는데, 그건 정말 아닌 것 같아요. 다음이나 파란 등에서도 만화 포털을 많이 진행하고 있는데 혹시 대형 포털과의 제휴 생각은 없으세요? 좀 더 큰 확장의 기회가 될 텐데요.

: 생각하고 있죠. 하지만 우리가 돈을 갖고 있지 않으면 모든 교섭에 불리하잖아요? 이 웹진이 활성화되면 지자체나 부천만화정보센터 등에서 지원을 받는다든지 해서 좀 더 굳은 입지를 만들어갈 생각이에요.

간혹 말 안 듣고 말 많은 회원들까지도 하나로 품어내려면 역시 힘이 있어야 해요. 그렇게 모으기 위해서는 ‘이익’을 챙겨줘야겠죠. 방법이 없어요. 그저 ‘여기 오니 무진장 이익이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수밖엔.

: 사실 영화계는 엄청나게 잘 뭉치잖아요. 그런데 만화는 그렇지 않죠. 다른 건 시스템이나 공동작업으로 진행되는데 만화는 역시 작가중심적이니까요. 그런데 앞으로는 만화산업쪽도 시스템이나 공동작업이 필연적으로 따라줘야 할 것 같아요.

'재미'야말로 가장 큰 '상품성'

: 지금 그게 안 되어서 만화가 이렇게 되어 버렸지요. 매번 말하는 것이지만 전에는 대단한 한 작가 여력으로 만화계가 유지되고, 그 역량이 떨어지면 또 다른 천재가 나와 유지되는 식으로 진행이 됐는데, 지금은 그런 시스템이 아닙니다. 사실 '천재가 용인되는' 사회도 아니고요. 또, 그 천재라는 사람도 한번 나오면 계속 그려대는 '헝그리 정신'으로 일해야 하는데 요즘은 정말 그렇지 못하죠.

예전엔 취미가 특기고, 특기가 작업이고, 작업이 곧 자기 즐거움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뭔가 하나 유명해지면 그와 관련해 해야만 하는 일이 너무 많은 거예요. 과거 작가들이 전부 한 장소에서 해결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라진 풍조죠. 우린 작업도, 생활도, 술마시기도 모두 한자리에서 해결했는데, 요즘의 만화란 다른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를 빼놓을 수 없으니까요.

: 사실 저도 작가들한테 필요한 적정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 예를 들어, 음악 하는 사람들은 한번 잠수하고 나면 그 작업의 결과물로 1년 정도는 활동을 하죠. 그리곤 또 다시 잠수해서 작품을 생산해낼 수 있고요. 하지만 만화가들은 그게 안 돼요. 사실 난 만화가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잠수 타면서 자료수집하고, 놀고, 작품하면 얼마나 신나겠어요?

: 환경의 변화를 무시 못하죠. 예전엔 만화만 봤는데. 요즘은 다른 놀거리가 너무 많아졌죠. 만화보다 게임이 더 몰입력을 갖는다는 게 슬픈 현실이죠. 그래도 진짜 재밌는 콘텐츠가 나오면 괜찮을 것 같아요.
: 그렇죠. 만화가 게임과, 만화가 영화와 경쟁을 하려면 더 전문적이고, 더 치열해져야 해요.

: 혹시 ‘삼순이’(내 이름은 김삼순) 보셨어요?
: 하도 난리를 치니 안 볼 수가 있나.(웃음)

: 그거랑 같죠. 만화도 게임처럼, ‘삼순이’처럼 정말 재밌는 게 나와줘야 할 것 같아요. 만화도, 애니메이션도 진짜 재밌어서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게 나오면 업계도 함께 살아나게 되는 거겠죠.
: 맞아요. 우리가 늘 하는 질문이 하나 있지. ‘도대체 뭐가 문제냐’. 그런데 답도 하나예요. ‘안 보면 미치는 얘기’를 만들어내는 것. 그냥…재밌으면 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 News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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