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최진실이 돌아왔다. 풀린 파마머리에 헐렁한 티셔츠, 고무줄 치마를 입은 가정주부로 다시 브라운관에 나타났다. ‘생활’이라는 괴물에게 덜미를 잡힌 그녀의 모습은 추레했고, 표정에는 피로감이 묻어있다. <장밋빛 인생>에서 '맹순' 역으로 추레한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이전의 화사한 역할에서 반 바퀴 돌아간 모습이다.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 같던 가볍고 귀여운 모습. 어떤 어려움도 물러서게 하는 낙천적 기질. 이런 이미지로 최진실은 10여년을 버텼다. 그리고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도 그 이미지는 계속 되었다. 그러나 전작인 <장미의 전쟁>에서 최진실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기존의 자기 이미지에 대한 한계를 깨닫고 변신의 필요성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런 숙고를 거친 후 최진실은 새로운 모습으로 시청자들 앞에 나왔다. 이 새로운 모습이 시청자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최진실의 변신으로 화재를 모은 드라마 <장밋빛 인생>은 주인공인 최진실의 변신에 운명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BS2 수목극 <장미빛 인생>에서 최진실이 맡은 ‘맹순이’라는 캐릭터에는 짙은 피로감이 느껴진다. 인생의 무게를 홀로 짊어진 사람의 피로감. 10살 때 엄마가 가출하는 바람에 두 동생을 건사하고 아버지 뒷바라지를 하는 등 고단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결혼 후 주부로 자리 잡은 현재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를 책임져야 하고, 시누이와 시어머니가 주는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며, 남편은 한술 더 떠 바람피우고는 이혼을 요구한다. 거기다 자신은 암 선고까지 받는다는 정말 억울한 인물이 최진실이 맡은 캐릭터 '맹순'이다. 한 가지만으로도 버거운데 다중 고를 겪고 있는 정말로 불쌍한 역할이다.
최진실은 이 역할을 자기 본래 이미지에 새로운 이미지를 가미해서 구체화시켰다. 밝은 느낌과 인생의 무게가 진하게 느껴지는 무거움이 공존하는 인물로.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며 밝고 귀여운 웃음을 날리던 앳된 표정 위에 삶의 고달픔을 모질게도 겪으면서 쌓인 경험치가 더해지는 연기였다.
결코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두 이미지가 만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었다. 켜켜이 피로가 쌓인 주부의 이미지와 최진실 특유의 낙천적인 느낌이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보이게 했다. 상황은 최악인데 완전히 절망적이고 칙칙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 것은 최진실이 원래 갖고 있는 밝은 이미지가 언뜻언뜻 보이기 때문일 터.
최진실의 변신은 일단 성공한 듯하다.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와 시청률 18.5%를 기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시청자 게시판에 최진실 연기를 칭찬하는 반응이 많은 것만 봐도 그렇다.
이번 캐릭터를 통해 최진실은 변신했다기 보다 진화했다고 봐야 한다. 인생의 쓴 맛을 맛보지 않았던 최진실은 밝은 이미지에 머물 수 있었다. 허나 시간은 그녀를 비켜가지 않았고, 인생의 무게 또한 누구보다 혹독하게 치렀기에 삶의 그림자가 끼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캐릭터는 현재의 최진실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고, 이전 이미지에 새로운 이미지가 더해진 것이므로 최진실의 진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진실은 어떤 면에서 채시라가 걸어간 길을 걷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채시라가 한때 하이틴 스타였다가 결혼과 더불어 주춤했었는데, 문영남 작가의 <애정의 조건>을 통해 30대 여성의 정체성을 표현해내면서 브라운관에 재진입 했다.
최진실 또한 문영남 작가의 드라마에서 전혀 예쁘지 않은 모습으로 생활의 때가 켜켜이 앉아 피로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한때는 하이틴 스타였다가 20대엔 톱스타였던 이들의 선택은 역시 자신의 나이와 연륜에 걸맞게 ‘아줌마’라는 역할로 돌아왔고 일단 성공했다. 최진실은 앞으로 어떤 모습의 어떤 느낌의 아줌마를 보여줄까? 최진실만의 30대 40대 여성의 모습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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