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콱 막힌 도로. 기름값과 상관이 없는 것인가?김규환
작년 설에 대진고속도로 추부터널을 지날 때였다. 고향을 들러 처가를 다녀오는데 명절에도 막히지 않던 서울 방향 도로가 금산을 지나면서 콱 막혀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속으로 ‘어? 웬일이지, 이러다가 서울까지 막히는 건 아냐?’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장수에서 출발하였으니 평소 같으면 아무리 늦어도 서울까지 5시간이면 족한 거리다. 사람들이 새로 뚫린 시원한 고속도로를 많이 알게 되면서 막힐 수도 있는 법, 느릿느릿 차량 뒤를 쫒았다. 오르막길인 점과 귀경 길이라 막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결국 13시간 만에 집에 도착하는 수고 아닌 수고를 해야 했다.
더디게만 오르는데 왕복 4차선 그러니까 편도 2차선 도로에서 다리를 건넜더니 오르막차로가 하나 추가 되었다. 난데없는 오르막차로가 터널 입구까지 이어져 있는 게 아닌가. 터널 바로 앞에서 3차로에 있던 차량이 2차로로 끼어드는 바람에 주변은 북새통이었다.
뭔가? 길을 다녀보면 터널 속을 통과할 때는 최소 10% 내지 20%까지 속도가 줄기 마련이다. 그런데 터널 입구에 버젓이 오르막차로를 준 이유가 뭔가 말이다. 중부고속도로 웬만한 곳은 시속 110km도로이면서 오르막차선을 아예 폐지하여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려는 시도가 눈에 띄던 차였다.
그런데 한참이나 지나 설계한 고속국도 35번이 이 모양이라면 시대에 뒤떨어진 시도 아닌가 말이다. 병목인 터널 입구까지 기다랗게 오르막차로를 준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아무 생각 없이 터널을 지나 나오자 길이 뻥뻥 뚫려 있었다. 10여 km에서 두 시간 이상 허비하다보니 이미 중부고속도로는 여느 때와는 달리 숨통이 콱 막힐 지경이었다. 그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대안>
1. 막힘이 예상되는 시기엔 아예 오르막차선을 폐지하는 게 맞다.
2. 터널 입구엔 오르막차선을 설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병목의 원인이 된다.
3. 설계 단계에서 교통량 예측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상황2-팔당1터널부터 봉안터널까지
일주일에 두세 번은 가평 유명산 밭에 간다. 집에서 78km 정도를 1시간 10분 정도에 주파할 수 있어 오가기가 괜찮은 편이다. 갈 때는 북부간선도로 신내 나들목에서 구리시 경계까지 시간을 잘 선택하면 막히지 않고 뻥 뚫리니 매번 같은 길을 이용한다.
문제는 오는 데 있다. ‘산채원시험포지’ 산나물 밭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각. 낮 2시 이후에 막히지 않는 법이 없었다. 국수역을 지나면서 서서히 속도가 떨어지는 건 신호등 때문이니 참을 만 하다.
용담대교를 지나 우측에 양수리 읍내를 두고 양수대교 위에 오르면 시속 5km 미만으로 뚝 떨어진다. 마의 구간인 셈이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어김없이 봉안터널 근처 고공 다리 위에서부터 다닥다닥 붙은 팔당제 4, 3, 2, 1터널까지 5개 터널을 지날 때까지 굴 안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팔당대교로 진입하려는 차가 편도 두개 차선을 모두 막고 있는 바람에 뒤따르는 차량은 1km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1시간여를 거북이걸음으로 운전하니 졸음까지 몰려온다. 답답한 맘을 삭이기 일쑤다. 더군다나 그 자리만 지나면 뻥뻥 뚫리니 속이 더 탈 수밖에 없다.
기가 찰 노릇이다. “왜 밀렸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밀린 이유가 오로지 그 다리를 건너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차량 때문이었다면 기름값에, 시간까지 낭비한 걸 생각하면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매번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국도관리를 하고 있는 당국에서 오래 전 손을 썼어야 하지 않을까.
<대안>
1. 팔당1터널을 빠져 나오자마자 임시 분리대를 설치하여 양평까지 줄서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1차선 끝까지 밀고 들어와 두 차선을 모두 마비시키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길섶도 없는 상태에서 사고라도 난다면 정말 난감한 일 아닌가.
2. 지금부터라도 교량 길이가 긴 경우엔 최소 일반도로 차선과 같은 차선을 주도록 설계해야 된다. 현재 팔당대교 주변 도로는 왕복 4차선인데 반해 다리는 2차선이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3. 당장 예산이 어떤 줄 모르나 팔당대교를 확장하고 진입로를 한 차선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 미사리조정경기장에서 양평 노선을 타려다 몇 시간을 허비한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