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여름휴가를, 포항에서 장기곶 그리고 감포로 이어지는 해안가 도로를 따라 울산까지 간 적이 있었다.
이 길을 따라 가면서 새삼 우리 나라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요코하마에서 이소고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보다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으니 말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곳으로 휴가를 정하고 떠난 것은 아니었다. 올해처럼 유난히 더웠던 그 해 여름에는 남해바다를 가기로 했다. 미리 유명한 관광지와 숙박 시설까지 조사하여 결정한 행선지는 부산을 거쳐 통영까지 갔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 오는 것이었다.
휴가 당일 아침 일찍 집을 출발하여 여유있게 휴게소에 쉬어 가면서 부산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데 대구를 지날 즈음, 갑자기 자동차 안이 더워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대구는 더운 곳이라 자동차 에어컨도 힘을 쓰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가는데, 영천을 지날 즈음 에어컨에서 더운 바람이 나와 도저히 갈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영천 시내로 나와 정비공장에 갔더니 에어컨의 콤프레샤의 무리한 부하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칠 수 있느냐고 했더니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분해하여 고치려면 며칠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새 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형편이라 교체하겠다고 했더니, 재고가 없다며 여기 저기 연락한 끝에 수배를 하더니 이제는 웃돈을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고치기는 했으나 예상 못한 콤프레샤 수리에 거의 30만원을 주고 나니 빠듯한 휴가비에 차질이 생겨 버렸다. 그래서 통영이나 포항 같은 바다인데 아무 곳이나 가까운 곳으로 가자는 생각으로 찾아간 곳이 포항 근처의 도구라는 곳이었다.
여름 바다라면 강릉이나 주문진 등 강원도 바다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 그 곳은 너무나 한적한 곳이었다. 조용한 바닷가에 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그 아래 평상을 깔아 놓은 횟집에 갔더니 다른 반찬은 별로 없이 생선회를 조그만 소쿠리에 담아 초장과 함께 내 놓았다.
그렇게 먹는 생선회는 어릴 적 먹었던 기억 밖에 없었지만 맛있게 먹고 낮잠까지 잔 다음 구룡포를 향해 가다 왼쪽으로 보이는 등대를 향해 갔더니 그 곳이 말로만 들었던 장기곶이라고 했다. 요즘은 그 곳에 새천년 광장을 조성해 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때는 정말 그림엽서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동해안이 다 그렇지만 바닷가 도로를 따라가면서 산도 구경하고 바다도 구경했다. 또 백사장에서 놀기도 하면서 간 곳이 문무대왕 수중왕릉이었다. 그 곳에서 바닷가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왕릉을 구경하면서 놀다 아예 민박집을 잡았다. 밤에는 방파제에 나가 자리를 깔고 누워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달을 보고 있노라니 잠시나마 모든 걸 잊을 수가 있었다.
다음 날은 감은사에 들렀다. 감은사로 가게 된 것은 유홍준씨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감은사를 너무나 감동적으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감은사에서 다시 돌아나와 정자까지 내려간 다음 울산 시내로 가다 오봉사라는 작은 절에 들렀더니 절의 뒤쪽에 있는 무룡산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애들 때문에 올라가지는 못했다.
울산에서 하루를 쉬고 경주로 가려고 했으나 방어진의 울기등대가 좋다고 하여 우선 방어진으로 향했다. 울기라는 지명이 울산의 끝을 의미한다는데, 울산시내에서 현대 자동차와 현대 조선소를 지나서 마지막에 도착한 곳이 방어진의 울기등대이다. 울기등대는 아름드리 해송이 장관인데, 그 곳에 있으면 여름의 더위가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시원했다.
울기등대에 반하여 그 곳에서 하루를 쉰 다음 국도를 따라 경주로 올라와서 불국사와 석굴암울 거쳐 불국사 입구에 있는 온천탕에 들러 온천욕을 즐긴 다음 다시 고속도로를 따라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 해는 예상 못한 일로 전혀 모르는 코스를 따라 간 휴가였지만 해수욕도 즐기고 우리 나라 공업단지의 위용을 애들에게도 직접 보여 주고 거기다 대표적인 우리 나라 문화유적까지 직접 감상한 알찬 휴가가 되었다.
나 자신도 서울서 강릉까지 10시간도 더 걸리는 휴가철 정체에 익숙한 나에게 오히려 생소한 휴가였다는 생각까지든 그런 인상적이고 보람찬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이 길을 가 보기로 마음먹고 있었는데 결국 그 다짐을 지금까지 지키지 못하고 있다. 혹시 지금 휴가를 계획하고 계신 분이 계신다면 꼭 한 번 추천하고 싶은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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