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매도 사람들의 생활보험 '갱본'

바다도 살고 어민도 사는 지혜, 바다공동체

등록 2005.08.28 19:51수정 2005.08.2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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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가장 많이 들고 나는 '영등사리' 어민들의 잰걸음이 부산하다. 이때를 놓치면 달포를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 미역, 톳이 바위에 붙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더 바쁘다. 양식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해조류는 대부분 바위에서 채취했었다. 오죽하면 마을간 더 많은 미역바위를 차지하기 위해 '미역바위싸움'이 생겼겠는가.


마을간 싸움은 치열하게 하지만 일단 마을 내에서는 미역바위를 나누는 방식이 매우 합리적이다. 완도의 어느 섬에서는 산술적으로 똑같이 나누지 않고 가족 수를 고려해 나누었는가 하면, 장남은 반드시 아버지 몫을 물려받고 차남은 결혼을 해야 몫을 주었다. 어느 지역이나 외지인들에게 조간대나 갯벌, 어장 이용에 냉혹하리만큼 엄격했다.

깊은 바다의 많은 자원들을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던 탓에 갯벌의 백합, 고막, 바지락이나, 바위에 붙은 해조류는 어민들에게 매우 소중한 자원이었다. 지금도 흑산도나 홍도 그리고 양식어업보다 자연산 채취가 더 활발한 연안에는 경계를 표시하는 바위나 표지석들이 세워져 있다. 지선어장이라는 이름으로 마을간 이용 공간을 정하고 관리하고 있다. 관매도의 마을들은 아직도 이러한 방식으로 자연산 미역과 톳을 채취하고 있다.

a 관매도 갱본에서 본 군소(2005.4)

관매도 갱본에서 본 군소(2005.4) ⓒ 김준


a 갱본의 바위에 붙은 해초들

갱본의 바위에 붙은 해초들 ⓒ 김준


바다와 갯벌에서 가장 무서운 '육지 것'

관매도의 바다는 매우 비옥하고 기름지다. 바다는 바다대로, 양식장은 양식장대로, 갱본(해변)은 갱본대로. 다행히 육지것들 손을 덜 타 이 정도라도 남아 있다. 아무리 육지와 멀어도 관광지로 조성되어 배들이 무시로 드나들면 '섬'은 오롯이 남아나질 않는다. 아마도 바다와 갯벌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육지것'들일 것이다. 육지것들이란 육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다를 육지것들처럼 대하는 어민들도 있다.

진도군 조도면에 자리한 관매도는 관매, 장산, 관상 세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관매리만 해도 270여 가구가 넘었지만 지금은 섬 전체를 합해 180여 가구에 불과하다. 그래도 다른 어촌마을에 비해서 감소폭이 적을 뿐만 아니라 최근 청년회도 결성되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관매해수욕장과 관매팔경 등 관광자원과 난대성 식물들이 풍부하여 학술적 가치도 높다. 최근에는 관매리 마을 곰솔숲을 살리고, 관매도 풍란인 '바람난' 서식지를 복원하기 위해 주민, 시민단체, 연구자 등이 함께 나서고 있다.


이에 주목하는 것은 눈앞 이익을 좇지 않고 마을을 가꾸려는 노력 때문이다. 지난 봄에 곰솔숲에 붙인 풍란의 30%가 이번 여름 휴가철에 사라졌다. 소나무 높은 곳에 붙인 시험용 풍란들은 남아 있지만 아이들이 직접 관찰할 수 있도록 사람 키 높이에 붙인 것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지난 8월 22일 필자와 함께 관매도 해수욕장 뒤 곰솔 숲을 방문한 관매도 풍란 복원사업 연구책임자 신현철 교수는 그래도 아이들이 직접 보고 관찰할 수 있는 높이에 풍란을 부착할 것이라고 했다.


a 지난 봄 파도가 높에 일자 마을 앞 모래밭에 양식 톳이 많이 밀려왔다.

지난 봄 파도가 높에 일자 마을 앞 모래밭에 양식 톳이 많이 밀려왔다. ⓒ 김준


a 거친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톳을 건지고 있는 할머니

거친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톳을 건지고 있는 할머니 ⓒ 김준


파도치고 바람이 불면 갯가로 간다

바람이 몹시 볼던 지난 봄날 관매도에서 태풍주의보를 만났다. 다음날 아침부터 술렁거렸다. 배가 뜰지 모르겠다는 민박집 주인의 이야기에 모두 걱정스런 얼굴들이다. 오늘 배를 타고 나가지 않으면 큰일도 아니지만 섬에 있는 것은 갇힌 것으로 생각한 탓일까. 바람이 그치면 배가 뜰 것이고 그럼 나가면 될 일인데. 토요일에 들어와 일요일에 나갈 요량이었으니 배가 들어오지 않으면 하루 더 자고 가야 한다.

주의보에 육지것들이 걱정하고 있던 것과 달리 몇 명의 '섬사람'들은 바구니를 들고 갯가로 나가고 있다. 특별히 도구도 없다. 그저 담을 그릇 하나만 들고 봄이지만 제법 바람이 찬 갯가로.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벌써 그릇 가득 거무스레한 해초를 가득 담아가지고 마을 어귀로 들어오고 있다.

궁금해서 갯가로 나가는 사람의 뒤를 밟았다. 민박집 아주머니에게 봉지 하나 얻어 들고. 관매도 해수욕장에 도착한 그 사람, 해수욕장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돌면서 톳을 줍고 있었다. 파도와 바람에 밀려 마을 앞 톳 양식장에 톳들이 뜯어져 해수욕장 모래밭까지 밀려온 것이다.

살펴보니 해수욕장 모래밭뿐만 아니라 인근의 관호리 마을까지 바람에 밀려 후미진 곳에는 해초들이 쌓여 있었다. 한번 줍고 몇 십분 지나면 다시 또 밀려들고, 또 줍고 나면 다시 밀려들고, 그래서 주민들은 교대로 필요한 만큼 주워가는 것이었다. 양식장에 톳들이야 다 주인이 있지만 떨어져 나온 톳에 이름 써졌을 리 없고 부지런한 사람이 해변에 나와서 주워가는 것이다.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온 해남에 살고 있는 나이가 지긋한 어머님은 아침에 일찍 그릇을 들고 갯가로 나가서 톳은 물론 다양한 해조류를 가득 담아 오셨다. 아마도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이면 해변에 해초를 비롯한 반찬거리들이 밀려들 거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모양이다. 해변이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는 뜰채를 만들어 톳을 건지는 노인도 있었다.

a 각흘도 갱본의 모습

각흘도 갱본의 모습 ⓒ 김준


'갱본'은 섬사람들의 생활보험이다

이즈음 관매리 마을 골목길을 걷다 고개를 빼고 담 너머 집안을 들여다보라. 그렇다고 도둑이라고 오해 받을 리 없다. 마당에 널어놓은 미역가닥을 쉽게 볼 수 있다. '진도곽', '진도미역'은 전국에 알려진 명품이다. 산모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 1순위에 오른 '진도곽'을 담 너머에서 구경할 수 있다.

관매리에서 확인한 미역은 '떡곽'과 '쫄쫄리미역'이었다. 떡곽은 넓적한 미역이며 쫄쫄미역은 좁은 미역가닥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가격 차이도 많이 난다. 떡곽이 20가닥 한 뭇에 10만원 가량 하지만 쫄쫄이는 20가닥에 20~25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양식미역은 20가닥 2~3만원 한다고 하니 가격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다. 옛날에는 미역 한 뭇 매고 나와서 팔면 대학등록금을 줄 수 있었다.

흑산도에서는 이를 떡미역과 가새미역이라고 부른다.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보았다는 해대(海帶, 속명 甘藿)는 떡미역을 말하는데 음력 1-2월에 뿌리가 나서 6-7월에 따서 말리며, 임산부의 여러 가지 병을 고치는데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적고 있다.

정약전이 미역에 붙인 이름은 중국문헌에는 '다시마'를 지칭한다고 약전의 제자 이청은 지적했다. 중국문헌을 쉽게 접할 수 없었고, 흑산도에서 다시마를 볼 수 없었기에 모양새를 보고 붙인 이름일 것이라고 이태원 선생(<현산어보를 찾아서> 저자)은 추측하고 있다.

이렇게 미역과 톳을 채취하는 조간대를 관매도 사람들은 '갱본'이라고 한다. 갱본에서 세모, 가시리, 미역, 톳, 뜸부기, 파래 등 헤아리기가 숨차다. 반찬거리로 채취하는 돌김은 20여 년 전만 해도 뜯어서 팔았던 것들이다. 이런 해초류 외에 소라, 고동, 전복, 배말, 조개류 등 각종 패류가 철철이 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인근 바다에서 잡는 고기로는 봄철에는 도다리가 대표적이며 간재미, 서대, 아구 등이, 여름철에는 농어가 가장 맛이 좋고, 우럭, 광어, 간재미 등이 잡히고 있다. 가을과 겨울에 맛이 좋고 잘 잡히는 고기로는 돔을 덮을 게 없다.

이외에도 숭어, 농어, 붕장어, 문어, 꽃게, 우럭, 놀래미, 학꽁치, 민어, 상어 등이 잡히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고기가 잡힌다는 것은 바다의 건강성을 입증하는 것이리라. 상업적이지 않고, 생업으로 바다와 갱본을 대해왔기 때문에 지금껏 유지되는 것이다.

a 자연산 미역을 뜯어서 가닥을 만들어 건조시키고 있는 이화백님(74, 관매리)

자연산 미역을 뜯어서 가닥을 만들어 건조시키고 있는 이화백님(74, 관매리) ⓒ 김준


a 양식미역을 채취해 모양을 만들고 있는 어민(관매도 관호리, 2005.4)

양식미역을 채취해 모양을 만들고 있는 어민(관매도 관호리, 2005.4)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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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그 대표적인 것이 갱본과 양식장을 운영하는 어민들의 지혜이다. 사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서남해안의 대부분의 양식장은 관매도와 같이 운영되었다. 관매리의 해안은 '샛기너머', '어나기미', '목섬', '각흘도', '계림' 등으로 구분된다. 이를 '짓'이라고도 부른다. 갱본을 이렇게 다양한 짓으로 구분하는 것은 그만큼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다.

관매리 갱본 중 샛기너머와 각흘도 짓은 접근성이 좋아 나이가 있는 노인들이 작업을 하고, 목섬 등 멀리 나가야 하는 짓은 젊은 사람들이 작업을 한다. 갱본 작업이 많은 벌이가 되지는 않지만 노인들의 생활비에 큰 몫을 하고 있다. 가끔씩 해초가 잘 붙도록 바위도 닦아주고, 마르지 않도록 물을 뿌려주는 대가로 바다가 주는 '생활비' 즉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같은 갱본에서 작업을 할 경우에는 가입금이 없지만 갱본을 바꾸고 싶으면 5만원의 가입금을 내야만 다른 갱본으로 옮겨 갈 수 있다. 편하고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마을공동체의 규칙이다. 이렇게 갱본에 가입하는 것을 '짓을 든다'라고 하며, 짓을 옮기는 것을 '건너뛰기'라고 한다. 자연산 미역과 톳은 공동채취 공동분배한다. 채취는 8월 여름에 많이 하는데 파도가 없고, 날이 좋은 날을 정해 작업을 한다.

a 갱본에 아직 뜯지 않는 톳

갱본에 아직 뜯지 않는 톳 ⓒ 김준


a 채취한 톳을 갈무리하고 있는 어민

채취한 톳을 갈무리하고 있는 어민 ⓒ 김준


바다도 살고 어민도 살고 : 바다공동체

목섬 갱본에 짓을 든 관매리 이화백(73)님은 금년에 떡곽과 쫄쫄리미역으로 100여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이씨는 오래 전에 각흘도에서 목섬으로 건너뛰며 3만원의 행사료를 지불했다. 그리고 민박집을 운영하는 조송월(54)님은 어나기미에 짓을 들어 200여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조씨의 경우 작년에 금년보다 두 배의 소득을 올렸지만 금년에 소출이 떨어졌다고 한다.

어나기미에 짓을 든 어민은 젊어 민박집 외에 양식장도 운영하고 있지만 각흘도에 짓을 든 이씨는 건강이 좋지 않고 걷는 것도 좀 불편해 멀리까지 가서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비교적 가까운 목섬에 짓을 든 사람들은 모두 30여 명에 이르며, 어나기미는 20여 명, 샛기너머 열댓 명, 각흘도 10명, 계림 20여 명이 짓에 들어 있다.

관매도의 갱본에서 미역을 채취할 때는 짓에 가입한 호에서 한 명씩 나와야 한다. 길어야 며칠만에 작업이 끝나기 때문에 이 기간에 나오지 못하면 짓을 분배 받을 수 없다. 공동작업을 해서 채취한 미역을 나온 사람 수에다 한 몫을 더해서 나눈다. 한 몫을 더하는 것은 갱본을 관리자인 간수('갯간수')의 몫을 하나 더 고려하기 때문이다.

작업 능력에 차이가 있겠지만 '머리'만 채워지면 몫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 고령인 탓에 좀 더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손해를 보지만 지금껏 그렇게 갱본을 운영해왔다.

한편 관매리 주민들은 양식장의 자리를 결정할 때 '지비'(주비 혹은 제비)라는 추첨을 통해서 결정한다. 수심, 조류, 바람 등 해양생태에 따라 생산량이 다르기 때문에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일정한 시기마다 양식장소를 추첨하여 결정한다. 20~30여 년 전에는 서남해역 어촌마을들은 매년 추첨을 하여 양식장을 결정했다.

관매리의 경우 지금도 양식장을 5년마다 한 번씩 추첨하여 결정한다. 양식장을 옮기는 것은 어민들에게 평등한 기회만을 주는 것만 아니라 바다가 자기 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렇게 바다도 살고 어민도 사는 것이다. 선조들은 그렇게 바다를 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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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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