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스킨십이 부담스러웠어요"

교사로서의 애정 표현, 아이들이 싫어할 줄 몰랐습니다

등록 2005.08.29 01:40수정 2005.08.3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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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던 아이가 어딘지 모르게 어긋난 행동을 한다 싶으면 한 번 다가가서 이렇게 물어볼 일입니다.

“혹시 선생님이 네게 무슨 잘못을 한 거냐?”

이런 경우 십중팔구는 “아니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닙니다. 이렇게 다시 말을 걸어볼 필요가 있지요.

“넌 평소 그런 아이가 아니잖아. 선생님하고 사이도 참 좋았고. 아무래도 선생님이 너에게 무슨 잘못을 한 것 같은데 말해봐.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고칠 테니까. 어서.”

이쯤 되면 아이도 숨을 한 번 크게 들이키고 말을 토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대개는 그 내용이 알밤이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만큼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저로서는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는 것이지요. 종합적인 사고를 하기 어려운 청소년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어서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차분히 설명을 해주면 쉽게 해결이 되곤 합니다.

그날도 저는 그런 방식으로 영지(가명)에게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교사에게 해서는 안 될 버릇없는 행동을 해놓고도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저는 버럭 화를 냈다가, 한 순간 아차 싶었던 것입니다. 필시 무슨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저렇게 막무가내로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저에게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아빠처럼 좋았어요. 선생님이 사랑이 많으신 것도 잘 알아요. 하지만… 선생님의 스킨십이 부담스러웠어요.”


처음에는 제 귀를 의심했고, 다음에는 그 아이의 심리상태를 의심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반 아이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저를 살갑게 대하던 아이였고, 가끔은 그 정도가 심하여 제가 녀석의 담임인지 아빠인지, 혹은 친구인지 모를 정도였으니까요. 숫제 말을 놓아버리는 경우도 있어서 저에게 꾸지람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뭐가 틀어져서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던 것입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저는 이렇게 입을 열었습니다.

“솔직히 좀 황당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그런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런데 혹시 선생님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너에게 그랬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
“…”
“그런가 보구나.”
“그건 아니에요.”


“그럼 됐다. 다른 것은 없니? 금방 말한 그것 말고 선생님이 고쳐야할 것이 있으면 말해봐.”
“없어요.”
“그래. 다행이다.”

그날 그렇게 아이를 보내놓고 저는 오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화가 나기도 하고 뭔가 손해를 본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아이를 그렇게 돌려보낸 것은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아이들과 거리를 좀 두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네 손해지 내 손해냐? 하는 식의 옹졸한 앙갚음의 심정도 조금은 있었습니다. 그 덕에 다음 날 아침 기도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지긴 했지만.

며칠 뒤,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영지를 보고 저는 주춤했습니다. 내심 놀랐던 것은 영지를 보자마자 제 손이 먼저 나가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손으로 아이의 손을 잡았을지, 머리를 쓰다듬었을지, 혹은 가볍게 아이의 어깨를 어루만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을 아이가 싫어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말입니다. 한 순간 제 머리 속으로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아, 내가 아이들에게 스킨십을 많이 하는 편이구나.’

그런 깨달음이 오자 그날 영지에게 사과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교사의 스킨십은 제자에 대한 순수한 애정표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사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이겠고, 그것을 싫어하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괴로운 일일 수도 있기에, 그날 이후 저는 영지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스킨십을 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자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는 동안, 제 마음이 예전처럼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조금은 슬프고 우울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20년 가까이 교직에 있으면서 어느새 몸에 배어버린 애정표현을 자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학생들을 장악하거나 관리할 만한 독특한 비법을 가진 유능한 담임도 아닌 터에 제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뜨겁게(?) 사랑을 표현하는 그것뿐이었으니 그럴 법도 한 일이었습니다.

또 며칠이 흘렀습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지나치게 떠든다 싶어 잠시 책을 덮고 손뼉을 쳐서 조용히 해줄 것을 당부했는데도 여전히 소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몇 번 더 큰 소리로 부탁을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인격적으로 아이들을 대하다보면 이런 수모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다고 비인격적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비인격적인 방법으로 인격적인 아이들을 길러낼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다보니 아무리 더디고 바보스럽게 보여도 교사로서 제가 선택할 길은 하나뿐입니다.

“여러분, 떠드는 것도 좋아요. 하루 종일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듣기만을 강요당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줄 선생님도 알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지금 중요한 것을 말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떠들면 여러분이 그것을 들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 여러분이 오늘 학교에 온 아무런 보람이 없잖아요.”

이 정도로 말해서 떠드는 것을 그만둘 아이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느 때는 울분이 복받친 목소리로 호소를 해도 제 눈치를 살피며 옆 아이와 소곤거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착하고 저와 사이가 좋은 아이들도 그런 것을 보면 여간해서는 매를 들지 않는 교사가 만만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그런 와중이었습니다. 누군가 큰 소리로 이렇게 말을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고 하시잖아. 너희들 선생님 힘드시게 왜 그래?”

영지였습니다. 우리 반에서 영지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축에 끼는 아이는 아닙니다. 그래서 더욱 영지의 말 한 마디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 그 후로도 영지는 가끔씩 저를 감동시키곤 했습니다. 한 번은 산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꼬드기기 위해 그날 점심을 제가 사겠다고 했더니 아이들에겐지 저에겐지 버럭 화를 내면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한 적도 있습니다.

요즘은 영지를 만나도 손이 먼저 나가는 버릇은 없어졌습니다. 영지 덕분에 다른 아이들과도 한 발짝 정도 거리를 두고 대화를 나누는데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친밀한 감정을 감추거나 표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신체적 접촉을 줄이고 눈빛으로 손이 하는 일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그동안 어리고 귀엽게만 여겨지던 아이들이 하나의 어엿한 인격체로 다가오는 것을 실감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보다 진전된 사랑의 방법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영지가 저에게 준 고귀한 선물인 셈입니다.

영지의 생일날, 저는 아이들 앞에서 이런 얘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았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영지의 표정도 아이들의 표정도 모두 밝았습니다. 반 아이들 앞에서 영지의 생일 시를 읽어주는 동안 저는 오랜만에 영지의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사랑

사랑은 무엇일까?
예쁘다고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와락 손을 잡아주는 것이 사랑일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사랑은 뜨겁고 간절할수록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라고
물러서서 지켜보는 것이라고

내 사랑 안에
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너를
주인 되게 하는 것이라고
넌 내게 말해주었지.

내가? 언제?
넌 동그란 눈을 뜨고
내게 물으려하겠지만
넌, 너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스승이 되고 말았단다.

한 때는 미애랑 동천에 나가
땀 흘리며 에어로빅을 하기도 했던
그 강변 둑길에 핀
청순한 코스모스를 닮은 너를
이제는 먼발치에서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지.

꿈이 없다고 했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품어온
간호사의 꿈을 기억해내어
다시금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지?

곁에서 지켜보마.
뜨겁고 간절할수록 한 걸음 물러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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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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