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두꺼비다! 로또를 사? 말아?"

공릉 숲에서 황금두꺼비를 보다

등록 2005.08.29 11:58수정 2005.08.30 09:2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황금두꺼비

황금두꺼비 ⓒ 한성희

공릉에서 그 놈을 처음 만났을 때, 저렇게 큰 두꺼비가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남자어른 주먹보다 더 크고 불룩한 배를 의젓하게 자랑하는 두꺼비. 두꺼비를 처음 본 건 어릴 때 장마철이었다. 집 뜰에 나타난 두꺼비를 보고 아버지는 복두꺼비라고 애지중지했다. 해마다 비가 오는 여름철이면 두꺼비는 화단 포도나무 근처에 어슬렁거리며 나타났었다.


"해마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이다."

a 이 두꺼비는 옆에 있는 솔잎과 상수리 잎을 비교해보면 크기가 짐작 갈 것이다.

이 두꺼비는 옆에 있는 솔잎과 상수리 잎을 비교해보면 크기가 짐작 갈 것이다. ⓒ 한성희

집안에 들어온 작은 청개구리도 "어서 나가라"고 살살 몰아 밖으로 내보내며 살생을 질색하던 아버지는 두꺼비가 방문한 날이면 두꺼비가 그려진 소주 한 병을 사오라고 하셨다. 두꺼비를 바라보며 소주 한 잔 즐기는 것이 아버지의 여름날 즐거움이었다. 흐뭇하게 웃으며 마루에서 두꺼비를 내려다보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아버지 모습에서 국화를 손님 삼아 같이 대작을 즐기던 선비의 낭만을 보는 것 같다는 상상을 했었다.

아버지가 복두꺼비라고 반기던 우리집 단골 두꺼비는 참개구리보다 조금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제(28일) 이 두꺼비를 만난 숲은 낙엽이 깔려 있고 간혹 버섯이 돋아나는 공릉 입구 축축한 숲 속이었다.

a

ⓒ 한성희

세상에 이렇게 큰 두꺼비가 있다니!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얼른 들고 있던 카메라를 열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적갈색 등줄기가 선명하고 볼수록 웃음이 나오는 불룩한 배를 바라보며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황금빛 가슴, 공룡같이 생긴 발가락, 옆으로 우스꽝스럽게 찢어진 입을 꾹 다물고 목을 골골 움직이는 모습에 넋을 잃고 쭈그리고 앉아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어쩌면 이렇게 의젓하고 잘 생겼을까. 저 부리부리한 눈 좀 봐. 그야말로 딱 '떡두꺼비'네, 감탄하면서 들여다보고 있는데 중학교 여학생 둘이 지나가다 가까이 왔다.


"어머! 이게 뭐예요?"
"두꺼비야."

내 것도 아닌데 내 것 마냥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이게 두꺼비예요? 이쁘다! 우리도 사진 찍자!"
"우리 이거 잡자!"

참 엽기스런 여학생들이다. 어떻게 보면 징그러울 텐데 두꺼비를 예쁘다고 감탄하더니 그 큰 두꺼비를 잡겠다고 한다. 나도 만지는 건 엄두가 안 나는데 저걸 만지고 잡겠다고?

"두꺼비는 독이 있어서 만지면 안돼."
"독이 있어요?"
"그래. 두꺼비랑 지네가 싸우면 두꺼비 독에 지네가 져."

a 엉금엉금 기어가는 황금 두꺼비.

엉금엉금 기어가는 황금 두꺼비. ⓒ 한성희

옛날 이야기를 기억하고 얼렁뚱땅 둘러대니까 그런가 하면서 두꺼비 잡기를 포기하고 가버렸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성가셨는지 풀쩍풀쩍 뛰어서 가버리려고 한다. 저 커다란 몸으로 정말 빠르게 잘도 뛴다. 몇 번 뛰더니 엉금엉금 걷기 시작한다. 뒤뚱뒤뚱 커다란 배를 씰룩거리며 기어가는 큰 두꺼비의 걸음은 생각보다 빠르다.

황금두꺼비 봤으면 로또를 사야

아쉬운 마음에 두꺼비랑 작별을 하고 해설사 사무소로 돌아왔다. 오씨 아저씨에게 커다란 두꺼비 봤다고 자랑을 한바탕 했다.

"그거 황금두꺼비라는 건데 요 숲에 몇 마리 살고 있어."
"황금두꺼비요?"
"근데…. 그거 보기 힘든 건데. 아무 앞에나 안 나타나는데 운이 좋구만. 오늘 가서 로또 사라구!"

a 적갈색 등줄기에 황금빛이 선명한 복두꺼비.

적갈색 등줄기에 황금빛이 선명한 복두꺼비. ⓒ 한성희

그게 '황금두꺼비'라구? 두꺼비가 복을 가져다준다고 복두꺼비라고 하는데 황금두꺼비는 더 행운을 상징하는 모양이지? 오늘 당장 로또를 사야겠다! 이왕이면 더 확실하게 행운을 굳히기 위해 능침에 올라가서 왕비님께 절 넙죽하고 빌어봐? 지금까지 능에 올라가서 절을 시킨 사람만도 수백 명인데 내 덕분에 절을 많이 받아 잡수셨으면 절 값 대신 로또 당첨되게 해달라고 떼를 써볼까. 그럼 당첨될 확률 더 높을 것 같은데.

황금두꺼비란 학명이 정작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황금두꺼비라는 소리에 귀가 번쩍해서 로또를 사겠다고 마음먹자 별별 생각이 다 스쳐간다.

지난 2월 <오마이뉴스> 창립 기념일에 갔다가 시민기자들과 만났던 자리에서 조선왕릉 연재를 쓰면서 꿈에 왕비가 나타났다는 기사를 썼던 것이 화제에 올랐었다.

관련
기사
- 공릉 연재에 코를 꿰다

"이왕 왕비가 나타났으면 로또 번호나 찍어 줄 것이지."

생각해 보면 대통령을 꿈에 보고 복권 당첨된 얘기가 심심찮게 들리는데 왕과 왕비가 꿈에 나타나는 것도 흔한 꿈은 아닐 거라는 아쉬움에 그런 말을 했다.

"조금만 더 꾸고 있었으면 아마 그랬을 거예요."

내가 아쉬워하자 옆에 앉았던 임윤수 기자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복장이 터졌다. 왕비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도 놀라지 말고 꾹 참고 꿈을 계속 꿀 걸. 그러나 로또번호 찍어줄 왕비가 이미 탄 기차는 떠나갔다.

a

ⓒ 한성희

그렇지만 이건 꿈도 아니고 현실에서 내가 만난 진짜 '황금두꺼비'가 아닌가. 얼마치 살까? 1만원 어치 살까? 아냐, 아냐, 그걸로는 당첨확률 부족해. 적어도 2만원 어치는 사야겠지. 여태까지 복권도 별로 사본 적도 없지만 1천원 당첨된 게 고작인 주제에 머리는 열심히 굴린다. 하여간 황금두꺼비 덕분에 두어 시간 혼자 황금성을 쌓다 허물다 별별 상상을 다했다.

그런데 정작 오후에 학교 보고서 숙제를 하기 위해 왔다는 중학생들을 데리고 올라간 공릉 능침에서 왕비님께 로또 당첨되게 해달라고 아부한다는 걸 그만 까먹고 말았다. 애들에게 궁중에서 왕과 왕비에게 절하는 방식만 열심히 설명해주고 4배하라고 시키다가 내려와서야 생각이 났다. 에구, 찬물 떠놓고 정성 들여도 될까말까할 텐데 이런 돌머리에 부족한 정성에 뭔 로또 당첨되기를 바라나. 그래도 지금이라도 가서 사볼까? 아직도 난 갈등 중이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2. 2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3. 3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4. 4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5. 5 대법원에서 '라임 술접대 검사 무죄' 뒤집혔다  대법원에서 '라임 술접대 검사 무죄' 뒤집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