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고행'은 없다

화가 남궁문이 쓴 <아름다운 고행 산티아고 가는 길>

등록 2005.08.30 01:08수정 2005.08.3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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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을 걷는다면, 당신의 인생은 바뀔 수도 있답니다

<아름다운 고행 산티아고 가는 길> 책 표지
<아름다운 고행 산티아고 가는 길> 책 표지예담출판사
화가 남궁문이 쓴 <아름다운 고행 산티아고 가는 길>은 저자가 스페인과 프랑스 접경지역에서 출발하여 스페인 북부를 관통하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면서 삶과 자연, 자신에 대해 성찰한 것을 기록한 여행기입니다.


그럼 산티아고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요? 산티아고는 예수의 제자 중 하나인 야곱이 묻힌 곳이랍니다. 야곱의 스페인식 이름이 '산티아고'지요. 예수의 다른 제자들은 예루살렘이나 로마 등지에 묻혀 있지만 야곱만은 산티아고에 묻혀 있어 그를 찾는 사람들은 이 길을 따라 산티아고까지 순례하는 것이랍니다.

남궁문이 맨 처음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어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스페인에서 가족처럼 지내던 호아킨에게 들었던 "그 길을 걷는다면, 당신의 인생은 바뀔 수도 있답니다"라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바뀔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이끌려 이 길을 걷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솜프르트에서 산티아고까지

그는 여행의 출발을 스페인과 프랑스 접경지역에 있는 솜프르트에서 시작합니다. 그의 여정을 한 번 간략하게 요약해 보겠습니다.

①솜프르트 →②아라곤 지방의 하카 시 →③아레스 →④'프랑스 코스'라 부르는 론세발예스→⑤팜플로나→⑥이라체→⑦라 리오하의 주도(州都)인 로그로뇨→⑧산토도밍고 델라 칼 사다→⑨수도 마드리드를 에워싼 듯한 지방인 카스틸야→⑩팔렌시아→⑪카스틸야 이 레온→⑫아스트로가→⑬라바날 델 카미노→⑭만하린→⑮산티아고 근처의 오 세브레이로 마을, 산티아고


그는 이렇게 산티아고까지 두 달 동안 1000km를 걷습니다.

<길> - 아라곤 지방
<길> - 아라곤 지방남궁문
②아라곤 지방을 걸어가면서 그는 산티아고가 어떤 곳인지 설명합니다. 그리고 스페인에도 '땅끝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스페인에도 땅끝 마을이 있습니다. 산티아고보다 더 서쪽이면서 대서양에 인접한 '땅끝(피니스테레라는 지명도 라틴어로 '이 세상의 끝')입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훨씬 전인 옛날부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서쪽 끝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붙인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어느 나라에나 '땅끝'이라는 지명이 있다는 사실이 참 재미있습니다."


<바람의 통로> - 아레스 마을
<바람의 통로> - 아레스 마을남궁문
이 책에서 맨 처음 만나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③아레스'에서 있었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알베르게라는 숙소에서 일하는 자원 봉사자가 여정에 축복을 드리기 위한 종교의식이라면서 순례자의 발을 씻겨주는 대목이었지요. 어떻게 생전 처음 본 남의 발을 그렇게 거리낌 없이 씻을 수 있는 건지, 신앙이 가진 힘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⑤팜플로나'에서는 산 페르민 축제를 만납니다. 헤밍웨의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나오는 소몰이 축제가 바로 그 축제입니다. 몇 년 전부터 한 번 볼 수 있기를 기대했던 축제였지만 그는 축제에는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합니다. 술에 취하고 크게 노래하는 자유보다 산과 들을 여유있게 걸어보는 아름다운 자유가 그에겐 더 소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⑥이라체'는 와인 공장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와인 공장의 길가 건물 쪽 벽에 마실 물과 포도주인 비노가 나오는 2개의 수도꼭지가 있어 비노를 마시고 싶은 사람은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습니다. 문 앞에는 이런 문구도 쓰여 있다고 합니다.

"만약 당신이 산티아고까지 힘차고 활기있게 걸어가려거든, 이 한 잔의 비노를 마시며 행복을 위해 건배하십시오."

'⑦라 리오하의 주도(州都)인 로그로뇨'를 지나갈 때, 순례자들에게 지나갔다는 직인을 찍어주며 헌금을 받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는 순례자 아닌 카미난테일 뿐

그는 자신을 순례자를 부르는 말인 '페레그리노'라고 칭하는 것을 민망해 합니다. 그는 자신을 그저 카미난테(길을 걷는 사람)로 불러 주기를 원합니다. 그는 자유롭게 걷고 싶어서 이곳에 온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세상의 한 가운데>
<세상의 한 가운데>남궁문
'⑨수도 마드리드를 에워싼 듯한 지방인 카스틸야 지방'을 걸으며 그는 마치 혼잣말처럼 이렇게 자기 고백을 늘어놓습니다.

"나는 혼자 삽니다. 그래서 혼자 떠나왔고, 그대로 혼자인 채로 혼자서 걷고 있습니다. 혼자도 행복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둘이라고 항상 행복한 게 아닌 것처럼, 혼자라고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면서 느낄 충만함은 없겠지만, 약간은 허전한 듯한 행로도 싫지만은 않습니다. 둘이 걸으면서는 못 느낄 홀가분함을 만끽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가니까요."

산토도밍고에서 비노를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몸이 허약해진 그는 '⑩팔렌시아'에서 급기야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그리고 꿈이런 듯 의식을 잃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후 생생하고 슬프게 울고 나서야 그는 깨어납니다. 그는 이것을 어머니가 자신을 지켜준 거라고 믿습니다.

여행을 후회하게 만든 철십자가

'⑬라바날 델 카미노'에서 그는 매우 크게 실망을 합니다. 그가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겠다 마음먹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곳에 있는 철십자가 때문이었습니다. 먼 하늘을 배경으로 울퉁불퉁 하고 색이 바랜 기둥에 아스라이 매달려 있던 십자가 사진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바라본 십자가는 금속 띠가 중간에 둘러진 말끔히 다듬은 굵고 튼튼한 기둥. 그리고 그 위의 십자가. 전체적인 비례나 조화가 전혀 맞지않는 철십자가였던 것입니다. 그는 "내가 저런 모습을 보려고 그 멀리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하고 한탄합니다. 사실 그 십자가는 일 년 전에 교체한 것이었고 그래서 그는 다시 한 번 일 년 전에 오지 못한 자신을 자책합니다.

<산> - 갈라시아 지방
<산> - 갈라시아 지방남궁문
그는 마침내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그 길을 걸었다는 인증서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길을 걸어온 감회를 이렇게 털어 놓습니다.

"내가 걸었던 길은, 끝내고 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지는 대신 더 큰 그리움으로 남는 수수께끼 같은 길이기도 합니다. 길을 걷는 자유에 중독된 사람처럼 지금도 나는 그 길을 그리워합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걷습니다. 언제라도 또다시 그곳으로 달려갈 거라고 다짐하면서 걷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그리움으로 남는 산티아고 길

화가 남궁문은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즐거움보다 큰 것은 없다고 믿는 사람인 듯합니다.

그가 때로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건조한 길을 걷고, 때로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터덕터덕 걷기도 하고 오래도록 잔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산맥을 넘기도 하고 끝없는 지평선밖에 보이지 않는 들판을 터덕터덕 걷기도 하고, 해바라기가 끝없이 핀 구릉을 지나가기도 하면서 1000km가 넘는 길을 걸었던 것은 아마도 그 자유를 맛보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책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끝도 없을 것같은 널따란 벌판이 다시 펼쳐집니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선, 지평선이 나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하늘과 땅, 그 사이를 걸어갑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길인지는 모르지만,
그저 하늘과 땅 사이를 걸어갑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오직 하늘, 땅, 그리고 나입니다.
'이 세상'입니다."


화가 남궁문은 예술가 특유의 감성과 예리한 시선으로 산티아고 가는 길 곳곳의 풍경과 인생의 의미를 포착해 내고 있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결코 화려하지 않은 간결한 수채화와 연필 데생이 책을 읽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도 이 책의 저자처럼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관련
기사
- [김남희의 산티아고 일기] 나는 걷는다... 다시 850km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 고행 산티아고 가는 길>

지은이: 남궁문
출판사: 예담
책값: 1만2000원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 고행 산티아고 가는 길>

지은이: 남궁문
출판사: 예담
책값: 1만2000원

아름다운 고행 산티아고 가는 길

남궁문 지음,
예담,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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