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대 정장을 3만3천원에"

기분 좋은 경매로 뜻밖의 횡재를 했습니다

등록 2005.08.30 16:11수정 2005.08.3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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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지인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주말에 예매도 하지 않고 영화관을 간 두 아줌마들의 두둑한 배짱 덕에 두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예상을 하고 간 일이긴 합니다. '못 보면 다음에 보면 되지 뭐'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상영시간까지 상가를 둘러보며 구경이라도 하자는 속내도 있었습니다. 진열되어 있는 가을패션도 구경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쇼핑몰의 안내방송이 들려왔습니다. 6시부터 5층 매장에서 경매를 하니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안내 방송이었습니다. 우리가 있던 곳은 7층이었는데 구경을 하며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는 중이었습니다.

"우리 한번 가 볼까요?"

그 층이 유명 브랜드만을 취급하는 곳임을 알기에 더욱 가고 싶어졌습니다.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지인의 팔을 끌다시피하며 내려갔습니다. 이동식 앰프를 설치하랴 진열해 놓을 옷 살피랴 직원은 경매를 하기 위한 준비로 바빴습니다.

'경매는 어떻게 하는 걸까?' 경매라는 말을 들어보기만 했지 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궁금하기도 했거니와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경매를 위한 옷 네 벌이 마네킹에 입혀져 있었습니다. 진 소재의 투피스. 울 소재의 바지 정장. 검정색 투피스. 젊은 층이 입는 캐주얼 한 벌이 경매 품목이었습니다. 안내 문구를 보니 경매 시작가가 3만원 부터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재미있겠다. 우리 꼭 구경하러 오자구요."


6시가 되려면 아직 십 분 정도 남아 있기에 다른 곳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맞지도 않겠다. 다 작은 사이즈라."


키가 큰 지인은 자신에게 맞지 않아 해당사항이 없다고 했지만 저는 아까 본 경매 붙일 옷 중에서 마음에 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직은 덥지만 곧 가을의 선선한 날씨에 입으면 딱 좋을 바지정장이 제 마음을 끌었습니다.

영화보러 갔다 경매에 뛰어들다

a 뜻밖의 횡재로 경매에서 낙찰받은 정장

뜻밖의 횡재로 경매에서 낙찰받은 정장 ⓒ 허선행

돌아보는 사이 이미 경매가 시작 되었나 봅니다. 금액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빨리 가 보자며 서둘러 갔더니 첫 번째 옷이 이미 낙찰 되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옷이 제가 마음에 두었던 옷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모두들 신기한 듯 저처럼 구경이라도 해보자는 표정이었습니다.

"두 번째 옷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정상가 36만원짜리 정장입니다."

한없이 마음 좋게 생긴 직원의 표정을 보며 브랜드 소개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거예요? 저, 저거 꼭 사고 싶은데."
"삼 만원부터 부르시면 됩니다."

직원의 안내로 제가 먼저 삼 만원을 장난처럼 말했습니다. 저만치서 보고 있던 여자 분 두 분 중에서 한 분이 "삼만 이천 원!"을 크게 외쳤습니다. 저는 속으로 '천 원씩만 올려서 부를 것이지 한꺼번에 이천 원이나 올려서 부른담' 원망의 눈초리로 잠시 그 쪽을 쳐다보았습니다.

"아주머니! 저 옷 꼭 사실 거예요? 천 원씩만 올려서 부르면 좋겠는데…."

끝까지 다 말을 못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서 있는데 그 분들이 계면쩍은 듯 웃으며 가버립니다. 저는 곧바로 3만2500원을 불렀습니다. 경매를 주도하던 분이 천원 단위로 가야 한다며 다른 날은 오천 원 단위로 부르던데 오늘은 이상하게 천원 단위로 부른다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삼만 삼천 원을 불렀습니다.

삼십만원 짜리 정장, 낙찰가 3만3천원

어!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여 있던 사람 중에서 그 다음을 불러야 하는데 아무도 경매가를 부르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불러 보겠습니다. 두 번째 정장 3만3000원. 누가 안 계십니까?"

저는 그렇게 해서 삼만 삼천 원에 정장 한 벌을 사게 되었습니다. 새 옷을 말이지요. 옷 네 벌 경매를 다 마쳐야 그 옷값을 계산하고 가져 갈 수 있다기에 다음 옷 경매 하는 모양을 느긋하게 지켜보았습니다. 검정색 투피스인데 딸을 사 주려고 한다던 아주머니에게 낙찰이 되었습니다.

그 옷은 서로 사려고 자꾸만 값이 올라갔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스릴도 있고 재미가 났습니다. 그런데 네 번째 옷은 젊은 층의 옷이라 그런지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 그대로 두었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젊은 남자 분이 지켜보다가 휴대폰으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빨리 와 봐. 여기 옷 경매 하는데 되게 재미있어."

연락을 받고 온 여자친구로 보이는 여자 분은 경매가 끝난 뒤 와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경매가 모두 끝나 계산대로 가서 돈을 내는데 "축하드립니다"라고 말하는 직원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집니다. 정말 횡재입니다. 운 좋게 옷도 싸게 샀지요, 거기다가 같은 건물에 있는 사우나 이용권을 2매나 덤으로 주지 뭡니까. 지인에게 다음에 사우나를 함께 가자는 약속을 해 두었습니다. 영화는 잠시 까마득히 잊고 그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 소매길이와 바지 길이를 고치려고 아파트 옆 옷 수선하는 곳에 갔더니 질감도 너무 좋고 고급스러운 옷이라며 횡재했다고 축하인사를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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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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