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체중이 글쓰는 일의 훈장되길

등록 2005.08.31 09:21수정 2005.08.3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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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여 사이에 무려 15kg 정도 체중이 증가했다.


사실 단 시일 내의 몸무게 불림은 의도한 결과였다. 일종의 노림수랄까. 아침저녁의 폭식을 통해 안쓰러움이 묻어나는 깡마른 체구를 적당히 살집 붙은, 윤기 나는 풍채로 변신을 꾀했었다.

살이 찐 것은 또 다른 한편으로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두서없이 써내려간 일도 한 몫 했다. 글쓰기를 통해 보이지 않는 내일에 대한 환상을 품고서 말이다.

두 달여만의 성과(?)는 놀랍기만 하다. 살찌움의 특효약인 탄수화물을 위가 팽창할 정도로 먹은 결과, 정상체중에 약간 못 미치던 몸무게가 어느새 과체중으로 변모한 것이다.

거울을 통해서 나의 복스러운 볼 살과 이중턱이 된 턱선을 볼 때면 절로 웃음마저 나온다. 동화 속에 나오는 고약한 욕심쟁이 스크루지를 보는 듯하다.

살을 급격히 찌움으로 인해서일까. 몸이 무거워져서 적당한 운동을 병행해야 했다. 운동 종목은 철봉이었다. 틈틈이 턱걸이를 시도했기 때문인지 알이 단단히 찬 고구마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한 이두박근이 생겼다.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이 모두 절반의 성공이랄까.

신체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후유증이 나를 서서히 괴롭히기 시작한다. 성인 남성의 취약점이기도 한 똥배가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는 공기 가득한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터질 정도다. 살찌우기 전 허리 둘레는 불과 27인치이었지만 지금은 34인치를 초과한다.


상체운동을 해도 배 나오는 건 막을 수 없었나 보다. 사실 턱걸이는 재미있지만 윗몸 일으키기는 지루하기만 하다. 지루하기에 뱃살빼기 운동은 소홀해졌던 것 같다.

똥배 등 탓인지 근래 설사마저 잦다. 하루에 화장실을 5번 이상 찾는다. 참을 만큼 참다가 어제는 무식하게 병을 키우는 꼴 같아서 내과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은 나에게 말한다. 과민성대장증후군.

"근래 어디 다녀오셨나요?"

아니요.

"그러면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나요?"

전혀요. 백수라서 집에만 있는 걸요. 누구에게 스트레스 받을 일도, 줄 일도 없어요.

"음… 과민성대장증후군인데요."

나의 급격한 체중증가로 인한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질 않는다. 허벅지 안쪽 살과 엉덩이 살들이 튀기 시작한 것이다. 선명한 붉은 선들이 통통한 살집 곳곳을 칼로 그어 놓은 것처럼 흉한 자국을 남겼다.

피부과 병원 의사가 말하길, '이미 튼 살은 되돌리기 어렵다'고 말한다.

"살이 트는 현상은 급격한 체중변화로 인한 부신피질호르몬의 증가 때문입니다. 튼 살의 흉터를 효과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레이저 수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레이저 시술은 미용 분야이기 때문에 보험이 안 되죠. 따라서 부르는 게 값입니다. 최하 100만원 이상을 예상해야 될 거예요. 부위별로 크기 여부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

난 의사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에이 남자가 무슨~ 이 정도로 레이저 수술을 해요?" 하고 피부과 병원 문을 나섰으나 내심 애가 탈 노릇이었다. 신체의 자연치유 능력을 믿었지만 의사의 말대로 튼 살은 예외가 분명해 보였다. '심하게 흉이 지거나 번지면 어쩌나' 하는 등의 고민 아닌 고민으로 머리 속은 잠시 복잡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래 스트레스야 스트레스. 스트레스가 주범 같아. 물론 이 모두 폭식이 병을 키운 직접적인 원인이겠지. 하지만 현재 무직상태. 즉 어느 사회에도 소속되어 있지 못함에 따른 초라한 자화상에 따른 스트레스가 더 큰 문제다. 의사의 말대로 부신피질호르몬의 증가도 스트레스가 주범이라잖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심신의 불편함. 정작 마음의 살을 찌우지 못함으로 인한 과민성'심신'스트레스증후군이 이 같은 병 아닌 병을 키운 걸까. 사실 자취 생활 9년째에 다다른 지금, 불규칙한 생활습관으로 몸은 곳곳에서 이상신호를 보내고 있다. 난 내 몸의 이상신호를 대부분 무시하고 있지만 말이다.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이나 할 수 있다면 규칙적인 생활, 영양가 가득한 식단 등으로 몸과 마음 모두를 제대로 살찌울 수 있을 텐데….'

내가 나의 몸뚱이 하나 돌볼 수 없음에 대하여 연민과 함께 무능한 내 자신에 대하여서도 화가 치민다.

사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중소기업의 생산직일 뿐이다. 이력서가 초라한 까닭이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며 학력이 빵빵하지도 않다. 때문에 늘 구인란에 허덕이고 있는 제조업 계통 회사들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생산직 공장에서 일을 수차례 경험해왔기에 다시 제조업에 발을 담그기가 싫다. 일 자체의 위험성은 둘째치고 기계의 부속품처럼, 톱니바퀴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이 적성에 맞을 리 없다. 난 로봇이 아니다.

노동의 열매는 달콤할지 몰라도 근무시간 내내 지루함의 연속은 미쳐 버리게 만들지도 모른다.

난 사실 글을 쓰고 싶다. 생산직 공장 취직은 내 인생 최후의 보루쯤으로 해두고 계속 글만을 쓰고 싶은 것이다. 글 자체를 잘 다루고 못 다루고를 떠나서 내가 지금 오직 하고 싶으며 사랑하는 일이 '글쓰기'다.

모르겠다. 도무지 모르겠음에 답이 나오지 않는다. 때로는 뜬구름만 잡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까지 하다. 맞아. 한심하다. 나 같은 녀석은 한심하다고.

요즘은 물질의 궁핍함으로 인해서 일까. 늘 배가 고프다. 값싼 탄수화물만 가득 섭취했기에 별다른 영양가 없이 뱃살만 늘어날 뿐이다. 과연 글을 통해서 내 자신의 마음과 육체를 동시에 찌울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부와 명예를 함께 껴안는 일 말이다.

서른을 앞둔 지금. 인생의 갈림처가 분명하다. 인생의 고비길이 분명해 보인다. 한 가지. 신께 바람이 있다면 10년 후. 20년 후, 나의 튼 살이 어머니들의 튼 뱃살과 같은 의미를 지녔으면 좋겠다.

무슨 말인고 하니, 생명을 잉태함에 따른 훈장과 같은 의미일 수도 있는 어머니의 임신 전 후 튼 뱃살과 인생의 재도약 발판이 되어 줄 나의 허벅지살. 즉 책상 앞에 앉아서 글과 싸우면서 생긴 허벅지살.

이 살이 늘어남에 따른 튼 자국이 훗날 훈장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내가 하고 있는 지금의 무모한 글쓰기가 훗날, 가치가 있는 일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살찌우는 날을 꿈꾸어 본다.

나의 허벅지 안쪽 튼살
나의 허벅지 안쪽 튼살이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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