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에 일어나 불 켜고 집안을 밝히고 나면 꼭 한두 마리씩 내 눈과 마주치는 것들이 있다. 처음엔 나를 기절할 만큼 놀라게 했던 그것들, 바로 바퀴벌레다. 내가 한국에서 보았던 바퀴벌레는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 습한 기운에 살이 찐 건지 아니면 광동 바퀴벌레 체질인지 이놈들 덩치 한번 끝내준다. 어떤 때는 뒤집어져서 둔한 발버둥을 치는 것들도 종종 본다.
내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인 그것들. 그래서인지 도망치는 속도 또한 둔하기 그지없다. 징그럽기는 하지만 이제는 면역이 되어버린 건지 나는 이제 재빠르게 도망치는 그것들을 끝까지 쫓아가서 소탕해버리는 무서운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우리 집은 늘 깨끗하게 청소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아파트 주변이 그리 깨끗하지 못한 것이 원인인 것 같다.
더운 날씨에 가뜩이나 땀이 많은 남편이 하루에 벗어내는 옷이 몇 벌인지 모르겠다. 거기다가 아이들 옷에 내 옷까지 더하면 겨우 4kg 용량인 우리 집 세탁기로는 두번 세번 세탁을 해야한다. 아이들 없을 때 장만한 세탁기라서 식구가 늘어버린 지금은 영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도 빨래는 그런대로 잘 빨아주니 쓰는 데까지는 쓰려고 마음먹었건만 요즘 내 마음이 세탁기 바꾸고 싶은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런데 이 마음을 더욱 재촉한 것이 바로 바퀴벌레였다.
얼마 전 빨래를 빨고 말리기 위해 세탁물을 꺼내려다 옷에 묻어있는 까만 점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하며 나는 열심히 털어내기 바빴다. 그냥 남편 옷 주머니 속에 뭐 까만 종이가 있겠거니 생각하고 다 털어낸 후 건조대에 말렸다.
그런데 그 날 뿐만 아니라 이건 빨래를 빨 때마다 계속 묻어나오는 것이다. 나는 세탁기 구석구석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그래 봤자 눈에 보이는 곳만 보는 거지만 말이다. 유심히 살피다가 내 시선이 고정된 곳은 섬유유연제 넣는 옆쪽이었다. 긴 실같은 것이 빼꼼이 나와 있는데 그게 뭔가 유심히 쳐다보니 곤충 더듬이 같은 것이었다. 에구머니! 알고보니 바퀴벌레 더듬이었던 것이다. 그걸 알게 된 순간 한숨이 나오면서 세탁기에 빨래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저녁 시간에 퇴근한 남편에게 그 얘기를 했다. 그런데 남편은 "빨래 하고 세탁기 옆쪽에 바퀴벌레 약 뿌려놓으면 괜찮아" 하며 대수롭지 않은 듯한 반응을 보였다. 알고 보니 남편 혼자 살 때도 계속 그랬다는 것이다. 아마도 바퀴벌레가 세탁기 물 빠지는 호수를 타고 들어가는 것 같다는 것이다. 전에 다른 집에 살 때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아무튼 애 둘 키우며 손빨래를 하기란 쉽지 않기에 남편 시키는 대로 빨래 빤 후 세탁물 다 꺼내고 세탁기 속에 약을 뿌렸다. 그리고 다음날 세탁기를 돌려보니 그 전보다 새까만 그것이 덜 묻어 나왔다. 그래도 아주 깨끗한 건 아니어서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꾸만 세탁기를 바꾸고 싶은 마음만 생기더니 아예 집을 바꾸고 싶은 생각까지 이르렀다. 안 그래도 이사 가고 싶었는데 잘 됐다 싶었다.
급기야 난 남편에게 이사 이야기를 꺼냈다. 세탁기 사건부터 시작해서 집에 햇볕이 잘 안 들어와 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거 하며,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묵묵부답이던 남편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드디어 공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바퀴벌레 이야기 하다가 이사 이야기로 분주해졌다. 우리 집 길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는 정원도 잘 꾸며져 있고 보안시설도 매우 잘되어 있다. 전에 거기 살다가 임대기간이 끝나서 지금 살고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다시 그 아파트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래서 남편은 그 쪽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도 난 바퀴벌레와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바퀴벌레가 원인이 되어 이사를 가게 되었으니 그것들이 그다지 밉지만은 않다. 내가 가고 싶은 아파트에 나온 집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내친 김에 세탁기도 바꿔볼까나?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