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을 막는 자는 누구인가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이다?>를 읽고

등록 2005.09.01 22:22수정 2005.09.0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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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리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이다?>는 부동산을 다룬 책이다. 이 분야의 많은 베스트셀러가 그러하듯 재테크 비법을 보여주리라 짐작해 눈길을 주었다면, 아예 열어보지 않는 편이 낫다.

우리 사회에서 주거비와 교육비 거품만 빼면 그런대로 살만하다고 말하는 지은이는 주택가격을 낮추는데 골몰하고 있다. 집값을 떨어뜨리지 않고 우리 사회에 비전은 없다고 외친다.

그런데 출간시점이 정부가 8·31 부동산 종합대책을 발표하기 직전이다. 지은이가 주장한 내용이 상당부분 정부 시책에 수용되었다면 이 책은 나오자마자 ‘역사’책이 되었을 것이다. 애써 쓴 내용이 세상에 빛을 보자마자 과거 속에 묻혀버린다면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궁극엔 저자가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책을 낸 이들도 흔쾌히 웃음 지었으리라.


그러나 정부 대책 발표 후에도 이 책의 효용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책 속에서 지은이가 제시하는 해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저자가 구체적인 논거를 들어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는 후분양제, 분양 원가 공개는 정부 대책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정부시책 발표 전에 내놓은 내용인데도 정부 부동산 대책에 미흡한 점을 오히려 앞서 꿰뚫고 있다. 어떻게 그런 혜안을 지닐 수 있었을까. 이는 재벌계열 건설회사에 입사해서 약 20년을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지은이가 ‘집값 하락을 원하지 않는 강고한 세력’의 실체를 몸으로 체득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이 시간에도 집값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부동산 관련 기사를 눈여겨 읽는 독자라면 지은이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고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 본부장’이라는 그의 직함은 뇌리에 남았을 것이다.

하버드대 케니디스쿨에서 공공정책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당시 미디어다음 선대인 기자가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장 김헌동을 인터뷰 한 것이 계기였다. 활동가와 기자는 수차례 토론을 했고 결국 의기투합해 부동산 정책 해법을 깔끔한 문체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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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 개발5적의 실체를 밝힌다”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기득권 구조에 의해 저질러지는 무차별적 개발과 건설사업, 이로 인한 땅값, 집값 상승에 편승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학계에서 ‘토건국가’ 현상으로 규정하는 그 문제점의 배후를 고발한다. 부동산 5적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궁금한 독자는 책을 직접 읽어 보길 권한다.


선분양제 도입의 전제가 된 아파트 분양가 규제는 1998년부터 완전히 폐지됐지만 선분양제도는 계속되어서 건설업체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는 비판은 책에 드러나는 핵심적인 주장 중에 하나다.

“자유시장원리를 들먹이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소비자보호를 위한 아무런 제도적 장치도 없는 상태에서 땅밖에 없는 건설업자가 짓지도 않은 아파트라는 건축물까지 팔도록 허용한 것이 시장원리에 합당한가”하고 물으며, 시장원리와 소비자 중심 원리에 맞게 아파트 후분양제도를 도입하라고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촉구한다.


집값의 거품이 빠져도 대다수 시민들에겐 피해가 없다고 구체적 예를 들어 설명하고, “물론 상투를 잡은 일부와 투기거래자의 손실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주식으로 큰돈을 벌려다 실패한 사람의 손실을 국가가 보전하지 않듯이 부동산 투기로 인한 손실 또한 보전하지 않는 것이 경제원리에도 맞다. 오히려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은, 최근 몇 년 동안 집값이 폭등해서 생긴 성실한 근로소득자의 상대적인 소득저하와 박탈감”이라고 일갈한다.

또한 ‘공급확대론’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되물으면서, “무조건적인 공급확대론에 근거한 주택 공급 처방이 나오는 상황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것은 시장의 흐름에 능통한 투기세력뿐이다. 또 택지조성을 통해 ‘땅장사’를 하는 토공, 주공 등 공기업과 부풀려진 건축비로 ‘아파트 장사’를 하는 대형 건설업체들뿐이다. 또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일부 언론과 그 논리를 제공하는 상당수 ‘부동산전문가’들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밝힌다.

저자가 지속적인 공급확대를 반대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선 공급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민간주택공급은 후분양제로 바꿔야 하고, 공공택지와 공공신도시에서는 공영개발을 통해 공공보유 장기임대주택을 대량 확충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이에 앞서 다주택 보유를 최대한 억제해 투기성 매물들이 시장에 쏟아지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급확대론’에 대한 지은이의 지적은 특히 뼈아프다. 송파 신도시 건설 방안을 내놓자마자 곧바로 폭등조짐이 보이는 현 시점에서 정부가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강남 대체 신도시로 추진한 판교 때문에 오히려 강남 집값이 폭등했던 실패 사례를 경험하고서도 실책을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것은 평균적인 노동자가 3~4년을 열심히 일하고 모으면 나름대로 안정된 주거를 마련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어렵사리 고생해서 내 집 마련 평생의 꿈을 이룬,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편지 사연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현실에서 과연 '삶의 질'을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 나라 집값은 일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영국 런던이나 일본 도쿄 수준이라고 한다. 게다가 일이년 사이에 오른 아파트 가격이 평생 번 월급을 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저자는 구체적인 대안을 보여준 후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이런 위기를 기회로 삼지 못하고 또 다시 투기광풍에 휘말린다면 썩어빠진 정치권과 관료를 쓸어내기 위해 국민들이 직접 나설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헌동/선대인 지음
궁리출판 펴냄
값 만오천원

덧붙이는 글 김헌동/선대인 지음
궁리출판 펴냄
값 만오천원

대한민국은 부동산공화국이다?

김헌동 외 지음,
궁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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