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이 어디 시골에만 있나요?

삭막한 도심에서 익어가는 가을 열매들

등록 2005.09.03 19:56수정 2005.09.04 12:5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도시 하면 숨이 콱콱 막히고 어디를 둘러보나 보이는 것은 빌딩 숲뿐인 삭막한 풍경을 연상합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 삭막함을 메우려고 단 한 평만, 아니 바늘 한 자루 꽂을 땅만 있어도 무언가를 심고 가꾸려 애씁니다.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그 눈물겨운(?) 도시의 농심도 서서히 결실을 맺어가는 듯합니다.

모과
모과김유자
모과. 사투리로 모개라고도 부르는 이 열매는 울퉁불퉁 못생겼습니다. 그러나 향기만은 어느 과일 못지않게 좋아 승용차 뒤쪽이나 앞에 몇 개씩 놓아두고 향을 음미하기도 하고 차를 담그기도 합니다.

작년 가을이었습니다. 백화점 식품부를 기웃거리는데 노랗게 익은 모과가 참 보기 좋았습니다. 마침 그 앞을 마흔 가량된 아저씨와 초등학교 3, 4학년 쯤 된 아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빠, 이 과일 이름이 뭐야?"
"응, 레몬."

마침 모과 옆에는 레몬이 진열돼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레몬에 붙였어야 할 스티커가 백화점 직원의 부주의로 모과에 붙게 된 것이지요.


저 아이는 언제쯤이나 그게 레몬이 아니라 모과라는 걸 알게 될까요? 혹시 모과를 두고 친구들과 레몬이라고 끝까지 우기다 싸우지나 않을까요? 처음부터 잘못 알게 되면 고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다시 생각해보는 날이었습니다.

부들
부들김유자
애기부들입니다. 이름을 모르는 아이들은 '소세지 나무'라고도 한다지요?


연못 가장자리와 습지에서 자랍니다. 높이 1∼1.5m로 자라며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으면서 퍼지고 원주형이며 털이 없고 밋밋합니다. 물에서 살지만 뿌리만 진흙에 박고 있을 뿐 잎과 꽃줄기는 물 밖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소세지 모양으로 생긴 게 부들의 꽃이지요.

가을에 명감나무 가지랑 함께 묶어 꽃꽂이를 해놓으면 멋있습니다.

무화과
무화과김유자
무화과나뭅니다. 서양에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전설이 많지요. 금단의 열매를 먹은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의 잎으로 허리를 감쌌다고 합니다.

저주받은 나무의 열매라 그럴까요? 잘 익은 무화과는 참 달콤하고 맛있습니다.

배
김유자
배나뭅니다. 배가 몇 개 달리지 않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옛날부터 영목리·황실리·청실리 같은 토종배가 잇었다고 합니다. 지방에 따라 강릉의 천사리, 정선의 금색리, 안변의 홍리 등이 유명했다고 합니다.

사과
사과김유자
사과의 원래 이름은 능금이랍니다. 능금이라 불리기 전에는 임금이라 불렸고요.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는 너무 고와서 먹기가 아깝습니다. 아마 저 집도 사과를 따먹으려고 심지는 않았을 겁니다.

감
김유자
감은 우리나라 토종 과일 중에 가장 우리와 친근한 과일이지요. 어릴 적 초가집 옆에 키가 큰 토종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익어갈 때 참 보기 좋았습니다.

다 익은 감을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가 한겨울에 꺼내 먹으면 얼마나 맛있었는지요. 요즘 어기로 얼린 아이스 홍시가 거기에 대기나 하겠는지요?

석류
석류김유자
석류나뭅니다. 열매 안에 알알이 박힌 석류알은 생각만 해도 입안이 새콤합니다. 옛날 혼례복인 활옷이나 원삼에는 석류 문양이 많이 쓰였지요. 열매를 많이 맺는 석류처럼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답니다.

수세미
수세미김유자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식물인 수세미입니다. 과육의 내부에는 그물 모양으로 된 섬유가 발달되어 있고 그 내부에는 검게 익은 종자가 들어 있습니다.

엣날에는 이걸로 그릇을 닦았지요. 그러다 보니 시방은 공업제품까지 깡그리 수세미라 부르더군요.

호두나무
호두나무김유자
호두나무입니다. 호두열매는 고소하지요. 어릴 적 호두나무 열매를 벗기다가 옻오른 친구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호두알 두 개를 손아귀에 넣고 다니며 버릇처럼 박박 문질러 소리를 내며 고샅을 돌아다니던 동네 아저씨들이 생각납니다.

호박
호박김유자
못 생긴 꽃의 상징인 호박의 열매입니다. 석수장이가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는 말도 있지만 이 호박이야말로 쓰임새가 많은 채소지요.

꽃이 예쁜 것들은 열매를 다 익기도 전에 꺾여져 버리고 말지만 호박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래 오래 남아서 크고 둥근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이렇게 삭막한 도회의 한 구석에서도 조용히 열매들이 익어가고 있더군요. 제 삶도 저 열매들처럼 조용히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모든 것이 익어가는 이 가을에 말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행담도휴게소 입구,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역사 행담도휴게소 입구,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역사
  2. 2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3. 3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4. 4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5. 5 윤 대통령 조롱 문구 유행... 그 와중에 아첨하는 장관 윤 대통령 조롱 문구 유행... 그 와중에 아첨하는 장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