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하나에 부처님 27분 모셨네

경주 남산 탑곡 부처바위① 자연과 인공이 함께 숨 쉬는 곳

등록 2005.09.08 01:54수정 2005.09.1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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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불교 공인 이전부터 자연을 신앙해 왔다. 그 때문에 우리 종교예술은 자연과의 조화에 그 생명을 두고 있다. 자연을 섬기는 우리의 토속신앙과 불교가 하나로 어우러져 나라를 지키려는 정열과 꿈으로 가득 차서 신비로운 유적으로 남아난 것이 남산 탑골 부처바위인 것이다."

경주 남산을 오르내리며 평생 신라 문화를 연구한 '향토사학자' 윤경렬 선생(작고)이 쓴 <경주 남산의 탑골>의 일부 내용이다. 경주 남산의 동남쪽 탑곡에는 큰 자연암석에 불상 27개와 9층탑, 7층탑 등이 새겨진 탑곡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 일명 '부처바위'가 있다.


a 부처바위 오르는 길엔 멋스런 소나무가 여럿 자라고 있어 운치가 더 난다.

부처바위 오르는 길엔 멋스런 소나무가 여럿 자라고 있어 운치가 더 난다. ⓒ 최찬문

"부처바위에 황룡사 탑이 있다"는 포항 사진가 안성룡씨 말에 솔깃해 부처바위를 찾아갔다. 중학 시절 수학여행 코스로 들른 화랑교육원을 지나 '옥룡암'이란 절 안내판을 본 후 곧바로 계곡을 따라 400m 남짓 거리를 올랐다.

차창 너머의 비포장 길에는 운치가 흘렀고 오른쪽에 펼쳐진 솔숲에 왠지 정감이 갔다. 깔끔하게 포장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있어 이 길이 더욱 운치 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소나무가 빽빽이 둘러싸 있는 주차장을 뒤로 한 채, 한적한 산기슭으로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계곡물은 작은 폭포가 되어 흘러내리고 야트막한 산은 가히 절경이라 부를 정도로 빼어났다.

계곡을 따라 난 산길은 이내 옥룡암 들어가는 다리로 이어진다. 계곡물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를 건너는 순간에도 '부처바위는 어떤 모양일까?' '황룡사 탑은 어떻게 생겼을까?'하는 호기심이 여전히 꿈틀댔다.

옥룡암 입구 오른편에는 서로 다른 기단과 탑신으로 맞춘 1기 탑이 서 있다. 암자는 어느 곳 못지 않은 명당 자리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암자를 둘러보고 부처바위 길로 한걸음씩 오른다. 어느 순간, 돌발 상황(?)에 발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아니, 이럴 수가! 부처바위가 보수 중이네. 맘먹고 왔는데 헛걸음인가?"


높이 10m, 둘레 30m 가량의 부처바위는 건축물 수리 현장처럼 보호대와 그물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바위 이곳저곳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무언가 작업을 하는 듯했다. 혹시나 싶어, 안성룡 사진가가 얘기한 '황룡사탑 모양'을 보려고 바위 북면을 이리저리 살폈으나 작업용 포장에 가려 헛수고다.

a 언덕 위 우뚝 솟은 3층 석탑으로 인해 이 골짜기는 '탑골'이라 부른다. 언덕 전체를 1층 기단 삼은 신라인들의 자연과 함께하는 인공미를 짐작할 수 있다.

언덕 위 우뚝 솟은 3층 석탑으로 인해 이 골짜기는 '탑골'이라 부른다. 언덕 전체를 1층 기단 삼은 신라인들의 자연과 함께하는 인공미를 짐작할 수 있다. ⓒ 최찬문

산비탈을 더 올라 언덕 위 부처바위 남면에 서니, 펼쳐진 풍경에 입이 딱 벌어진다. '부처바위 진면목이 여기에 있구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뚝 솟은 3층 석탑은 이 골짜기가 '탑골'로 불리는 이유를 알게끔 한다.

큰 바위덩이와 이어진 언덕 위 석탑은 '항구를 알리는 등대' 역할을 한다고 윤경렬 선생은 표현했다. 이 골짜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이곳이 '불국정토'임을 일러주고 있다는 것.


신라 탑은 오늘날 우리에겐 뭘 일러줄까? 경주 남산의 탑은 거의 1층 기단이 없는 것처럼 이 탑도 탑골 언덕 전체를 1층 기단 삼아 만들었다. 화려한 모양은 아니지만 언덕에 자리한 탑은 기품이 있어 보인다. 자연 환경을 그대로 살려가며 탑을 만든 신라인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 같다.

부처바위 남면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3층 석탑을 비롯해 오른쪽 바위의 삼존불과 왼쪽 바위 승려상이 있고 그 앞에 입체여래상이 서 있으며 삼존불 앞 큰 바위 모서리에도 승려상이 새겨져 있다. 삼존불 앞 바위에는 비바람을 막을 보호각을 세운 흔적인 여러 개 홈도 보인다.

a 부처바위 남쪽 전경. 유물 보호를 위해 '청소' 중.

부처바위 남쪽 전경. 유물 보호를 위해 '청소' 중. ⓒ 최찬문

a 삼존불은 붉은 색을  입혔으며 좌우 보살상 자세가 특이하다. 사진 오른쪽엔 나무(보리수로 추정)가 돋을새김. 본존불 맨 아래는 연꽃이 있으며 그 위 구름 같은 옷자락이 보인다.

삼존불은 붉은 색을 입혔으며 좌우 보살상 자세가 특이하다. 사진 오른쪽엔 나무(보리수로 추정)가 돋을새김. 본존불 맨 아래는 연꽃이 있으며 그 위 구름 같은 옷자락이 보인다. ⓒ 최찬문

일행은 불상을 이리저리 살펴본 후 작업을 하시는 분(문화재 관리사)과 인사를 나눴다. 문화재 관리사는 "부처바위 보호를 위해 청소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광객이 버린 오물은 물론 솔잎이나 나뭇가지 등이 바위틈에 끼면 장기적으로 부처바위가 손상을 입기 때문에 이들을 제거한다고 설명했다.

조심스레 작업을 해야 하기에 시간도 꽤 걸리며 대략 10월까지는 마무리가 될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내친 김에 그 분께 부처바위 설명을 부탁했다. 그는 "문화 해설가에게 들은 내용을 전한다"며 성의껏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삼존불은 우선 불그레한 바위 색이 눈에 띤다. 표정도 무척 밝다. 그리고 고개를 본존불 쪽으로 살짝 돌린 좌우 보살 모습도 무척 인상적이다. 엄마에게 응석부리는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이를 두고 윤경렬 선생은 "이런 자세는 부처라기보다 화목한 가정을 연상케 한다"며 "부모 모시듯 부처를 섬기던 우리 계레의 신앙 모습"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붉은 색은 인공적으로 입힌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경주 남산에 있는 감실여래좌상 등에도 채색 흔적이 남아 있다. 신라인들은 왜 불상에 색칠을 했을까? 살아 숨쉬는 생생한 부처 모습을 만나려는 의욕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천 년이 넘는 비바람에 마모가 심하지만 본존불을 눈여겨 보면, 정교한 조각 솜씨가 여러 군데 나타난다.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이파리가 넓은 나무(보리수나무로 추정)가 있으며 아래엔 연꽃 문양이 새긴 것도 볼 수 있다. 다른 바위 불상에는 이런 조각을 쉽게 찾을 수 없다고 한다.

a 능수버들가지(보리수로 추정) 아래서 두 손 모은 채 석탑 방향을 보는 승상.

능수버들가지(보리수로 추정) 아래서 두 손 모은 채 석탑 방향을 보는 승상. ⓒ 최찬문

a 여래상은 전체적으로 볼륨감이 있어 생기가 돈다.

여래상은 전체적으로 볼륨감이 있어 생기가 돈다. ⓒ 최찬문

삼존불 앞과 옆 바위에는 승려상이 새겨져 있다. 앞 바위 승상은 나무 아래 가부좌를 틀고 두 손을 모은 채 석탑 쪽을 바라고 있다. 왼쪽 바위 승상은 정면을 보며 앉아 있다. 각각 신과 인간 세계를 나타낸다고 한다. 어쨌든 바위 속 모습이 신비롭다.

앞머리 부분이 파손된 여래입상도 있다.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수많은 불상이 수난을 당한 흔적이 보인다. 당시 불상 파손 방식은 주로 목을 가격했지만 이 불상은 광배가 두꺼워 뒤에서 넘어뜨렸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앞머리 부분만 손상됐다는 것.

풍만한 볼륨의 여래상은 보름 달덩이 같은 복스런 얼굴을 가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둥근 얼굴과 풍만한 가슴 그리고 잘록한 허리선이 살아 있어 정감이 더 간다. 차가운 돌덩이에 생기가 도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부처바위 불상은 모두 돋을새김으로 조각돼, 밋밋한 분위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여래상 서 있어 다른 불상도 당달아 더 생기가 돋아지는 것은 아닐까? 부처바위는 자연과 인공미가 더불어 숨쉬는 신비함이 있어 이래저래 상상의 나래도 즐겁게 펴게 한다.

덧붙이는 글 | 조만간 부처바위를 한두 번 더 찾아 후속기사를 쓸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조만간 부처바위를 한두 번 더 찾아 후속기사를 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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