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중음악, 총선에 뛰어들다

기민당, 롤링 스톤즈의 '앤지' 사용... 사민당, 반극우파 음반 제작

등록 2005.09.05 20:13수정 2005.09.0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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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화의 총아로 자리 잡은 대중음악이 독일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열흘 남짓 남은 9월 18일 독일 총선에서 음악이 '선전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설문조사에서 집권 사민당을 멀찌감치 따돌려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유력시되는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후보는 전설적인 영국 록그룹 롤링 스톤즈의 오랜 히트곡 앤지(Angie)를 선거 유세장에서 사용해왔다. '앙겔라'라는 이름과 철자가 비슷하고 독일 대중에게 사랑받는 친근한 곡이기 때문이다.

한데, 이 사실을 안 롤링 스톤즈 쪽에서 사전허가를 받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미리 부탁했더라면 거절했을 것이란다. 그럴싸한 일이다. 비틀즈와 쌍벽을 이루면서, 기존 사회의 보수성과 권위에 '반란'을 꾀했던 그룹이니 만큼 자기 노래가 보수적인 기민당의 선거에 이용되는게 영 마땅찮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민당 쪽에서는 음반저작권 협회와 계약을 맺었다며 유세장에서 '앙겔라'의 이미지를 '앤지'에 계속 투영하기로 결정했다. 앙겔라의 추종자들은 유세장에서 아예 '앤지'라고 쓴 피켓을 들고 나섰고 앤지는 이미 그녀의 애칭으로 자리잡은 듯한 분위기다.

현지 언론에 보도된 사진. 앙겔라의 지지자들이 '앤지'라고 쓴 피켓을 들고 있다
현지 언론에 보도된 사진. 앙겔라의 지지자들이 '앤지'라고 쓴 피켓을 들고 있다정대성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은 '앤지'의 다음 노랫말이다. "우리의 모든 꿈은 사라진 듯합니다" 선거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꽤 크거나, 아니면 현 정권과 더불어 꿈이 사라졌으니 다른 꿈을 꾸자는 말인 모양이다.

한편 극우정당인 민족민주당(NPD)은 음악을 아예 전천후 '무기'로 꺼내 들었다. 공략 대상은 이제 막 선거권을 얻은 고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다. 민족민주당은 극우파 선전 음악이 담긴 시디를 20만장이나 찍어 공짜로 구 동독지역 학교에 뿌렸다.

연방의회 입성의 비례대표 하한선인 5% 득표가 힘들어 보이자 지역구 선거에서 몇 석이라도 건지기 위해, 극우파 문화가 특히 강한 영향을 미치는 지역의 '학생 신참 유권자'를 집중공략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 극우정당은 선거 막판에 20만장을 더 배포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자 집권 사민당은 그 극우파 음반의 '해독제' 음반을 만들어냈다. 몇몇 밴드를 앞세워 극우파의 극단주의와 편협성에 맞서는 노래를 음반에 담은 것이다. 이 음반은 민족민주당이 유독 강세인 곳에서 역시 무료로 뿌려질 전망이다.

음반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슈뢰더 총리는 적나라한 극우파 용어로 유권자를 유혹하는 자들의 위험한 행위를 지적하며 극우파와 분명한 선을 긋자고 강조했다. 그 음반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해 신나치 음반의 독성을 잘 해독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하지만 외국인 증오와 '공격적' 민족주의에 목청 높이는 극우파 음악을 무기로 내세워, 선거에 첫발을 디디는 학생 유권자를 노리는 극우정당의 '저속한' 선거 전략이 음반 비용만 날리고 고스란히 수포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사람이 한둘은 아닐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부산일보에 실린 필자의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 부산일보에 실린 필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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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부산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68혁명, 상상력이 빚은 저항의 역사』, 『저항의 축제, 해방의 불꽃, 시위』(공저), 역서로 『68혁명, 세계를 뒤흔든 상상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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