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들머리 언덕 황새바위가 장이 선 것처럼 부산해졌다. 금강변에 연한 바위 위에서 가지를 드리운 소나무가 바람에 살랑거린다. 황새가 서식했다 하여 '황새 바위'라 부르는 이곳을 감영에선 형장으로 썼다. 천주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면서부터 북적댈 정도로 많은 목숨이 끊기게 되자, 이곳 바위가 죄수들의 목에 씌우는 '항쇄'와 모양이 비슷하게 생겼다며 '항쇄바위'로 이름을 바꾸어 불렀다.
황새바위를 둘러싼 군중을 뚫고 감영 사령들이 죄수들을 이끌고 들어섰다. 안여준과 그의 아내, 그리고 노복 둘과 사촌 둘을 포함하여 6명의 죄인이 황새바위 모래사장에 들어섰다. 맞은 편 공산성 언덕이 운집한 구경꾼들로 하얗게 뒤덮였다.
"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망나니들이 작두만한 날을 가진 언월도를 집어 들었다. 소를 몰고 온 사령들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소를 배치하고 고삐를 쥐었다.
"천 서방 미안하네. 자네들만은 지켜야 했을 것을......."
목에 찬 칼을 푸는 사이 안여준이 그의 종 천 서방에게 말을 건냈다.
"아닙니다요. 주인 마님 덕에 천주님을 알게 되고 이제 곧 만나뵈옵게 되었으니 외려 쉰네가 고마울 따름입니다요."
"베드로 형제...... 부디 천국에선 종과 주인이 아닌, 상놈과 양반이 아닌 천주님의 아들로 다시 만나세......"
"예. 마님...... 아니 요한 형제님."
"석고산이도 잘 가거라."
안여준의 아낙이 젊은 노비에게도 인사를 했다.
"예....마님."
천 서방의 아들 석고산이도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받았다.
"천주쟁이들 아니랄까봐 마지막 순간까지 눈물겹구나. 종놈이나 주인놈이나....."
사령이 안여준과 아낙을 떠밀어 땅에 주저앉히고 머리채를 풀어 말뚝에 묶었다. 뒷결박을 진 채 목에 나무받침을 괴고 엎드린 자세가 이제 마지막임을 실감케 했다.
"으웁... 읍....."
두 사람이 고통스런 신음을 내뱉었다. 머리를 고정 시키기 위해 화살로 귀를 뚫어 땅에 박았다.
"마.... 마님....."
석고산이가 울먹였다.
"지금 네 놈이 남 걱정할 때가 아녀!"
울고 있는 석고산이를 사령 둘이 잡아 끌었다.
"이, 이보십시오. 나리님들. 제발 저부터, 저부터 매달아 주시오. 제발."
천 서방이 묶인 몸뚱이로 매달리며 애원했다. 천 서방은 저 네 마리의 소가 누구를 위해 와 있는지를 잘 알았다. 자식 석고산이가 먼저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순 없었다.
"정 먼저 죽고 싶다면 그까짓 소원 하나를 못 들어 줄까?"
사령들은 나이 든 천 서방을 끌어다 소의 멍에에 연결된 줄에 사지를 묶었다. 천 서방은 팔 다리를 묶이면서 석고산이와 안여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안여준은 움직일 수 없는 머리를 땅에 대고 천 서방을 느꼈다. 안여준의 아낙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다가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눈물과 기도소리, 울음소리가 섞인 침통한 분위기 속에 형 집행 준비가 끝났다. 둘레와 맞은편 언덕에 모인 군중들도 침을 삼키며 구경했다.
"아전을 통해 인정을 찔러 넣었습니다요. 편히 보내 줄겝니다."
공산성 언덕에서 내려다보던 덥썩부리 수염 사내가 갓 쓴 다른 사내에게 나직이 말했다.
"요한 형제 미안하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고작 자네의 목이 쉬이 떨어질 수 있도록 청을 넣는 것 뿐이구먼."
먼발치의 안여준을 향해 뇌이는 갓 쓴 사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교구회장 이동규였다.
'이것이 천주님의 뜻인가? 이렇게 주저앉아 무참히 당하기를 천주님께서 바라신단 말인가?'
두어 달 전 한양의 여각에서 권기범이라는 이를 만나고 나서 교우들과 깊은 논의를 거듭했었다. 그러나 권기범 일파를 믿고 힘으로 난국을 헤쳐나가자는 강경파와 섣부른 저항은 오히려 더 큰 박해를 불러올 뿐 아니라 역적으로 몰려 백성들로부터 더욱 유리될 뿐이라는 온건파의 의견만 팽팽할 뿐 쉬이 결론을 내지 못하고 말았다. 더구나 여름 들면서 시들해진 박해의 분위기도 딱히 어느 한 쪽으로 결단을 내지 못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다가 이번 사단이 벌어진 것이었다.
공주를 기점으로 회덕과 보령, 서천, 비인, 예산까지 아우르는 교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오던 안여준 진사가 발고에 의해 추포된 것이었다. 일체의 행동을 자제하고 은둔하던 중에 터진 사건이어서 충격이 컸다.
이동규가 며칠 전 청원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 급히 공주에 도착하였으나 이미 자신이 어찌해볼 단계가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기어이 사형집행의 명이 떨어진 것이었다.
"내부 발고자의 소행인가?"
이동규가 벌겋게 젖은 눈을 한 채 앙다문 이 사이로 물었다.
"그리 밖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습니다요. 요한 형제님께서도 워낙에 활동을 닫은 채 은일하시던 중이었고 종복으로 있던 교우들이나 일가붙이 되시는 분들도 실수로 꼬리를 잡힐 위인은 아니었니까요."
덥썩부리 사내가 대답했다. 망설이다가 덥썩부리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모진 고문에도 끝내 공주 인근의 교우들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으신 듯 합니다."
이동규와 안여준의 관계가 단지 신앙으로 결속된 교우의 관계에 머물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는 터였기에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덥썩부리 사내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이동규의 젖은 시선이 황새바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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