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자기 목 칠 수 있을까?

[쟁점] '기득권+지역구도+합의' 복잡한 선거구제 계산법

등록 2005.09.06 17:37수정 2005.09.0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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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정치개혁협의회는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 현행 소선거구제와 의원정수 299명을 유지하되 비례대표 숫자를 99명까지 늘리는 선거법 개혁안을 확정해 지난 4월 국회 기자실에서 발표했다.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정치개혁협의회는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 현행 소선거구제와 의원정수 299명을 유지하되 비례대표 숫자를 99명까지 늘리는 선거법 개혁안을 확정해 지난 4월 국회 기자실에서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열린우리당이 당내 정개특위(위원장 유인태)를 공식 발족하면서 선거구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여당 지도부는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구상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 당내 연정 논란은 주춤해졌다.

문희상 의장은 "권역별 비례대표제이건, 독일식 정당명부제이건, 중대선거구제건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방안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한나라당을 압박했다.

노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공약 사항이었던 중대선거구제를 고집하진 않겠다고 한발짝 뒤로 물러선 바 있다. 유인태 위원장 역시 "나도, 대통령도 중대선거구제가 가장 맞다는 입장이지만 야당과의 협상을 고려해 다양한 조합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내부 합의는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선거구제 개편은 의원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달 초 한 토론회에서 "현재 국회의원들에게 지지를 받는 제도는 현행 소선거구제도 뿐"이라며 "선거구제 개편을 정치권에 맡기는 것은 스스로 목을 치라는 것"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행 제도에서 최대 수혜자는 열린우리당. 여당은 지난 총선에서 38%의 정당지지율로 51%(151석) 의석수를 차지했다. 반면, 가장 큰 손해를 본 정당은 민주노동당. 13.1%의 지지율이라면 39석을 차지해야 맞지만 10석에 그쳤다. 정당지지율과 의석수의 간극은 각각 열린우리당 +37, 한나라당 +14, 민주노동당 -29, 민주당 -12에 달한다.

현행 제도로 가장 이득 본 정당은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이 가장 손해


따라서 선거구제 개편은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어느 정도 보장하면서도, 지역구도 극복이라는 대명제를 훼손하지 않고, 또한 야당과 합의가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 두루 충족되어야 하는 복잡한 산수와 같다. 선거구제 개편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도농복합선거구제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합의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도농복합선거구제는 도시는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대신, 농촌은 소선구제를 유지하는 방안.


도농선거구제에 대해서는 이미 2003년 11월 정치권에서 논의가 진행된 적이 있다.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해 서청원, 김덕룡, 강재섭 의원 등 중진들은 이 개편안에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지만 당내 반발로 무산되었던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같은 선거구제 개편 움직임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전제로 하고 있다.

논의를 주도했던 홍사덕 당시 원내총무는 유인태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분권형 대통령제-도농선거구제 개편에 대해 물밑 협상을 벌였지만 '영남 주류'에 밀려 성사되지 않았다. 도농선거구제는 농촌 출신 의원들의 기득권을 보장하면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지역주의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절충안이라 할 수 있다.

유인태 위원장은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인구 60만 이하는 소선거구제로, 60만 이상은 중대선거구제로 하는 도농선거구제가 가장 합리적인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하며 한나라당과의 협상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가령 대구·경북의 경우 총 15명의 지역구 중 60만명 이하인 포항을 비롯한 3곳은 소선거구제로 치르고, 대구광역시의 12개 선거구는 광역단위로 다시 선거구를 획정해 한 선거구에서 3∼4명의 의원을 뽑게 된다. 농촌에 비해 1위와 2, 3위 격차가 많지 않은 도시에서 사표를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1위-2위를 똑같이 대접하게 되는 표의 등가성 문제가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도시 출신 의원들의 반발이다. 자신의 선거구가 광역단위로 통합되면 후보 경선 과정에서 같은 당 의원들과도 경쟁을 해야 하는 등 기득권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a 열린정책연구원은 지난 7월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고 선거제도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선학태 전남대 교수가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

열린정책연구원은 지난 7월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고 선거제도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선학태 전남대 교수가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2003년 무산된 선거구제 협상, 다시 기지개 켤까?

그래서 나오는 안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다.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전제로 비례대표를 늘리자는 주장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정당명부제)는 지금처럼 전국 지지율로 비례대표를 일괄 배분하는 것이 아닌 각 지역별로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작성해 해당 지역의 지지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경우 호남에서 한 자리수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 지역구도 해소 효과가 낮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점유율의 상한선을 두는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

또한 비례대표 수를 늘려야 하는 부담이 문제다. 노 대통령은 '의원수를 늘려서라도' 구조적인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작업은 매번 여론의 반발에 부딪쳐 무산되었다. 절충안으로 지역구와 권역별 비례대표를 2:1로 배분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지역구가 40석 이상 줄게 돼 여야를 막론하고 반발이 크다.

마지막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안이 독일식 정당명부제. 전체 의석수를 정당 득표율대로 배분하는 제도로 민주노동당이 당론으로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할당된 의석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배정하고 나머지는 비례대표 순번대로 채우는 방식으로 소수정당에게 유리하다.

가령 전체의석이 100석이라고 가정한다면, 한 정당이 10%를 득표하고 5명의 지역구 당선자를 배출했을 경우, 일단 해당 정당은 득표율에 따라 일단 10석의 의석을 가져가게 된다. 그런 다음 5명의 지역구 당선자를 우선 배정하고 나머지 5석을 비례대표 순번대로 채운다.

권오을 한나라당 의원이 17대 총선 득표율로 정당명부제를 적용해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전체 의석은 큰 변화가 없지만 양당 모두 취약지역에서 의석 확보가 가능하다. 열린우리당은 영남에서 19석을,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5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제도가 복잡해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결국은 여론이 '고양의 목의 방울'... 국민투표 제안도

하지만 결국 여론이다. 정치권의 기득권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제도'는 없다. 차라리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제안도 나온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역주의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국민들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고 국민투표 방식을 제안했다. 새정치연대의 장기표 대표 역시 선거구제 개편은 헌법 72조의 국민투표에 회부할 수 있는 '중대사안'에 해당한다며 동조했다.

최근 노 대통령 지지세력들은 여론 홍보전에 적극적으로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노사모 회원은 '돼지저금통 캠페인'과 유사한 방식의 선거구제 개편 캠페인을 준비 중에 있다고 밝혔다. '우리의 표가 왜곡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표가 사표가 안되는 방법은?'이라는 식의 카피로 대국민 홍보를 벌이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참여정치실천연구회의 유시민 의원 등은 이 달부터 전국을 돌며, 특히 대학생을 타깃으로 정치개혁에 대한 여론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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