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섬진강물 위에 떠 있었다

전남 곡성군 입면 섬진강가 '함허정'을 찾아

등록 2005.09.07 21:09수정 2005.09.0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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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반달모양으로 흐르는 섬진강가 언덕위에 있는 정자 '함허정'의 모습

반달모양으로 흐르는 섬진강가 언덕위에 있는 정자 '함허정'의 모습 ⓒ 서종규

지난 여름에 두 번이나 찾아갔다. 마루바닥을 손으로 한 번 훔쳐 내고 그냥 누웠다. 매미가 한여름의 무더위를 뿜어내고, 흐르는 강물 소리가 머리맡에 다가왔다. 땅과 강, 하늘에 가득한 시원함이 등을 타고 발끝까지 내려갔다. 내 몸은 섬진강물 위에 떠 있었다.

a 전남 곡성군 입면에 있는 정자 '함허정' 오르는 길

전남 곡성군 입면에 있는 정자 '함허정' 오르는 길 ⓒ 서종규

섬진강을 굽어보는 언덕에 강물과 나무와 어울린 정자는 고고한 백로처럼 앉아 있었다. 사람의 눈은 참 아름다운가 보다. 어떻게 이런 곳에 정자를 지을 수 있을까? 정자가 있는 언덕 아래엔 반달 모양의 섬진강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a 정자 앞에 붙은 '함허정' 현판

정자 앞에 붙은 '함허정' 현판 ⓒ 서종규

더구나 정자의 이름이 '함허정'이라니, 물머금을 '함'자에 빌 '허'자, 섬진강물을 머금고 있어서 비어 있는 정자란 말인가? 비어 있지만 늘 섬진강물을 머금고 있어서 충만한 정자란 말인가? 섬진강물에 띄워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비워지는 곳이란 말인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60호인 '함허정'은 1543년(조선 중종 38년) 광양, 곡성 지역 등에서 훈도를 지냈던 당대의 문사 심광형이 만년에 이 지역 유림들과 풍류를 즐기기 위해서 전남 곡성군 입면 제월리 군촌마을 섬진강가에 지은 정자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 홑처마 팔작지붕 민도리 소루수장의 간결한 구조로 삼면이 트인 마루 한 칸과 방 2칸 반 그리고 바닥을 한 단 높인 쪽마루 반칸의 평면구조라고 소개되어 있었다(함허정 안내판에서).

a 대문에서 바라본 정자 '함허정'의 모습

대문에서 바라본 정자 '함허정'의 모습 ⓒ 서종규

마루에 누워서 눈을 떠보면 책을 펼쳐 놓은 듯 당시의 문사들이 섬진강의 시정을 나누었을 편액들이 눈앞에 가득 다가온다. 편액들의 모양은 대개 검은 판에 흰 글씨로 새겨져 있었는데 정자 처마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 20여 편에 이른다. 모두 그 맑은 섬진강물 위에 새긴 시편들일 것이다.

a '함허정' 천정에 가득 걸린 편액들

'함허정' 천정에 가득 걸린 편액들 ⓒ 서종규

8월 22일(월)과 9월 3일(토)에 방문했는데 공교롭게 두 번의 방문 전날 많은 비가 내렸다. 정자 앞에 흐르는 강물은 정자의 그림자까지 받아내어 한 편의 그림을 그렸던, 바닥의 모래까지 다 헤아릴 수 있는 투명한 강물이 아니었다. 도도히 흐르는 섬진강의 거대한 물줄기였다.

a '함허정'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의 모습

'함허정'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의 모습 ⓒ 서종규

정자 하나면 다른 모든 것이 다 소용없을 것 같은 함허정 입구에 '연자방아'를 민속자료로 전시해 놓았다. 요즘처럼 방앗간이 없던 시절의 음력 8월은 추석이 있는 달로 햅쌀로 송편을 빚고 추수한 곡식을 소나 말 등 가축을 이용하여 이 연자방아를 돌려 곡식을 찧었다는 설명이다.


a '함허정' 오르는 길에 전시된 연자방아

'함허정' 오르는 길에 전시된 연자방아 ⓒ 서종규

'함허정' 입구에 '군지촌정사'라는 중요민속자료 155호가 있었다. 이 건물도 '함허정'을 지은 심광현이 함허정을 짓기 10여년 전에 지은 건물인데, 지금까지 17대의 자손들이 살고 있는 조선 후기의 건물로 사랑채의 이름이란다. 조선시대의 유교관에 따른 남녀의 유별, 상하 귀천의 신분계급이 있어서 주택의 구조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군지촌의 경우에도 여성들은 안채, 남성은 사랑채, 하인은 행랑채에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a ‘함허정’  입구에 있는 ‘군지촌정사’(중요민속자료 155호) 건물

‘함허정’ 입구에 있는 ‘군지촌정사’(중요민속자료 155호) 건물 ⓒ 서종규

'군지촌정사' 앞에는 '하마석'이 놓여 있었다. 이 '하마석'은 흔히 '노둣돌'이라고 하는데, 옛날 양반들이 말을 타고 내릴 때 발돋움으로 쓰려고 대문 앞에 놓아둔 큰 돌이란다. 당대의 문사, 유림, 사대부들이 얼마나 이 곳을 드나들었는지 아직도 '하마석'이 반질반질하였다.


이 '군지촌정사'로 인하여 마을 이름이 군촌마을이 되었다. 청송 심씨들의 집성을 이루는 이 군촌마을도 옛날 80여호가 섬진강을 벗하여 사는 농촌이었으나 지금은 20여호 마을 주민이 살고 있단다.

a ‘군지촌정사’ 대문 앞에 놓여 있는 '하마석(노둣돌)'

‘군지촌정사’ 대문 앞에 놓여 있는 '하마석(노둣돌)' ⓒ 서종규

한 번 찾은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어 버리는 '함허정'은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져 나갔다. 아예 함허정 앞에 있는 '군지촌정사' 사랑채에서 몇 년간을 살다가 떠난 어떤 시인도 있었다. 여름이면 특히 조용히 찾아와 마루에 누워 섬진강 물소리를 듣다가 물처럼 흘러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단다. 우리들이 섬진강을 늘 그리워하듯이 이 정자도 늘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섬진강을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하동에서 화개장터가 있는 쌍계사 입구의 섬진강을 떠올린다. 아니면 구례구역을 지나 압록의 섬진강을 떠올린다. 그것도 아니면 김용택 시인이 늘 노래하는 순창 쪽의 섬진강 상류를 생각한다.

a 함허정’에서 살뿌리를 지나 곡성읍까지 동악산 밑동을 타고 가는 섬진강과 도로

함허정’에서 살뿌리를 지나 곡성읍까지 동악산 밑동을 타고 가는 섬진강과 도로 ⓒ 서종규

하지만 '함허정'이 있는 전남 곡성군 입면 제월리에서 살뿌리를 지나 곡성읍까지 동악산 밑동을 타고 가는 섬진강이 아름답다. 사실 요즈음은 우뚝 솟은 동악산 능선 아래 계곡에 흐르는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지나가는 길에 동악산 아래 사수곡의 계곡에 들려 맑은 물에 발이라도 한 번 씻으면 그 시원함이 오래 남을 것이다. 동악산 청계동 계곡에 앉아 얼굴에 흐르는 땀이라도 한 번 씻고 나면, 그리고 섬진강가의 참게 매운탕집에라도 들려 섬진강 맛에 한 번 취해 보면, 가끔 은어회라도 한 점 먹어 보면, 매년 그 그리움이 섬진강물처럼 흐를것이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 옥과 나들목 - 입면 - 금호타이어공장 앞 - 제월리

덧붙이는 글 찾아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 옥과 나들목 - 입면 - 금호타이어공장 앞 - 제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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