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코드로 읽는 <신의 딸>

다빈치 레거시에 이은 또 하나의 루이스 퍼듀의 역작을 읽다

등록 2005.09.08 11:26수정 2005.09.0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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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딸> 책표지(2005년 8월)
<신의 딸> 책표지(2005년 8월)팬아스
20세기 최대의 비극 중 하나였던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로마교황청의 철저한 침묵 하에 진행되었다. 인류의 평화와 생명의 존중을 최고의 덕목으로 가르치면서 모든 서방 종교의 리더로 자처하던 교황청은 왜 그 잔혹한 역사 앞에 침묵했는가? 유수한 종교역사가들에게마저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는 이 역사적 질문 앞에서 루이스 퍼듀는 스릴러 소설이라는 장르로 과감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총통박물관 건립을 목표로 유럽 각국의 미술품들과 골동품들을 약탈하기 위해 히틀러가 직접 설치했던 린츠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하인리히 하임과의 만남 이후, 작가는 기자 정신을 동원해 저들의 탈취 미술품을 직접 추적하면서 알게 된 역사적 사실들과 작가 특유의 상상력에 기초해 이야기를 끌어간다.


교황청은 왜 나치에 대해 침묵했는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문화재 약탈과정에서 우연히 1700여 년 동안 은폐되었던 기독교의 비밀이 담긴 금궤 하나를 발견한다. 그곳에는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살해되어 영원히 역사 속에 묻힌 여성 메시아 소피아의 형상이 뚜렷이 새겨진 성의와 그녀에 대한 관련 기록물들이 들어 있다.

이 증거물들이 예수만을 유일한 메시아요, 제2의 하나님으로 믿어 왔던 2000년 기독교 역사의 신앙을 허물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음을 간파한 히틀러는 자신들의 역사적 만행을 묵인하도록 로마교황청을 압박하고 결국 침묵에 관한 협약서를 받기에 이른다.

역사와 허구가 조화를 이룬 스릴러

퍼듀의 소설 <신의 딸, 두 번째 그리스도>는 이 모티프와 관련된 역사와 자신의 상상력을 조화시켜 만들어낸 스릴러이다. 위작 미술품을 전문적으로 감별하는 조 리지웨이와 전직 경찰이자 철학 교수인 세스 리지웨이는 우연히 나치 약탈 미술품과 연관되면서 세기의 역사적 비밀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원치 않는 위험에 빠져들게 된다.


소피아에 관한 증거자료들과 교황청과 나치 사이의 계약서가 들어 있는 금궤를 확보해 또 다른 협상 무기로 사용하고자 하는 러시아 마피아들과 교회의 근간을 허물 수 있는 그 유물을 확보해 교황의 지위에 오르려고 한 브라운 추기경의 음모로 인해 리지웨이 부부는 죽음의 위기를 넘나들지만, 결국 여성 메시아의 존재와 관련된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모르겐 신부와 귄터 등의 도움으로 스위스의 암염 광산에서 증거들이 들어 있는 금궤를 찾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브라운의 수하로 그들의 도우미 역할을 했던 스트래턴에 의해 금궤는 음모의 중심에 있던 브라운의 손에 들어가고, 그 막강한 자료를 무기삼아 교황의 지위에 오르려 했던 브라운은 소피아와 관련된 자료들과 더불어 영원한 불의 심판을 받게 된다. 결국 사악한 자들의 음모도, 소피아의 진실도 모두 심판의 불에 의해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신의 딸>을 읽는 세 가지 코드

퍼듀는 이 작품 속에 세 가지 사회적 이슈를 끌어들여 소설의 완성도를 높였다. 첫째는 부계중심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페미니즘이다. 퍼듀가 설정한 여성 메시아는 남성 중심의 신인식으로 체계화된 기독교의 문화인류학적 유산을 지적하기 위한 논리적인 상상이 만들어낸 실체이다.

소설 속에 나타난 그의 문화인류학적인 진술은 프랑스의 학자인 바댕테르가 <남과 여>에서 통찰한 신인식의 변화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은 것처럼 보여진다. 러시아인들에게 체포되어 미술 작품들의 처분을 담당하게 된 조 리지웨이의 파트너인 탈리아로부터 설명되어지는 원시 모계사회와 여신 창조주에 대한 설명과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재림한 여성 메시아의 컨셉트는 페미니스트들의 사고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두 이론적 축이다. 퍼듀는 그것을 적절하게 소설의 플롯에 첨가함으로써 역사적 추리를 전개한다.

두 번째 코드는 종교다원주의이다. 절대성과 객관성을 부인하고 상대성과 다원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은 더 이상 하나의 종교를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종교다원주의 시대를 열었다.

이 소설에서 퍼듀는 조와 세스의 종교적 대화를 통해 기독교의 맹목성을 비판하면서 다원주의적 종교의식의 가치를 강조한다. 특별히 소피아의 진실을 1700여 년 동안이나 은폐한 로마가톨릭의 비도덕성을 지적하면서 역사에 대한 교회의 반성을 각성시키고, 나아가 진실은 교회나 교리적 체계가 아닌 인간의 진정한 믿음에 있음을 역설한다.

이는 철저한 신앙인이었던 세스의 종교적 회의와 신앙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부터 서서히 절대자에 대한 신뢰의 가능성을 경험한 조의 변화를 통해서 미묘하게 투영된다. 이들의 종교적 논의를 통해서 퍼듀는 다원주의적 가치를 제공한다.

퍼듀가 활용한 세 번째 코드는 보들리야르가 현대 문화 코드로서 강조한 '시뮬라시옹'이다. 원본과 복제의 차이가 사라져 혼합된 사회 문화현상을 지칭하는 시뮬라시옹의 개념은 역사와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그의 소설쓰기에서 매우 정교하게 이루어진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만큼 많은 자료들이 역사적 사실들에 입각해 있고, 그 플롯 역시 치밀한 역사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분명 소설이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이 가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와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의 소설은 결국 시뮬라시옹의 한 현상인 것이다.

소설을 굳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 읽은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신의 딸>은 소설 그 자체로 매우 박진감 넘치는 작품이다. 마치 법궤를 찾아 이집트를 모험하는 인디아나 존스를 읽은 것과 같다. 거기에 상당 부분 역사적 진실을 가미했기 때문에 더욱 더 흥미로운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이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된다면 그건 작가의 상상력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탐구력과 기자 정신이 가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의 딸 1 - 두 번째 그리스도

루이스 퍼듀 지음, 이섬민 옮김,
팬아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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