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혜
오늘 오후. 남편은 추석선물이 담긴 박스를 무슨 귀중한 보물이라도 되는양 가슴으로 야무지게 보듬어 안고 집을 나섰습니다. 남편은 내심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얼굴엔 환한 웃음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남편이 막 차를 출발시키려 할 때 남편에게 기분좋게 한마디 했습니다.
“복희아빠! 그건 뇌물이 아니라 선물이야! 알지?”
“그럼. 알고 말고. 하여간 복희엄마, 올해도 수고했어. 그리고 고마워.”
남편의 수고했다는 한 마디가 또 고맙다는 한 마디가 제 가슴에 따스하게 젖어 들었습니다. 남편의 차는 부서지는 햇살 속으로 내달렸고 어느 순간 점점 작아지더니 마침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짐작컨대 남편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코스모스 가득한 가을 길을 즐겁고 신나게 달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편과 저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듬뿍 실은 작은 선물들을 함께 싣고 달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남편과 추석선물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복희아빠! 명절인데 거래처에 선물 준비해야지?”
“선물? 글쎄. 올해는 뭐가 좋을까?”
“뭐가 됐든 뇌물이 아니고 선물이 되면 좋은 거지. 안 그래?”
“당연하지. 올해도 뇌물 말고 선물로 복희엄마가 알아서 준비해줘.”
남편과 결혼을 하고 나서 처음 추석을 맞았을 때였습니다. 저는 추석 전에 미리 남편의 거래처 사무실 사람들에게 추석선물을 준비하였습니다. 선물은 바로 양말이었는데 사장님이나 말단직원이나 똑같이 두 켤레씩이었습니다. 미리 그것들을 사다가 일일이 포장을 하여 추석 며칠 전에 남편 앞에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선물들을 거래처 사무실에 가져가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가져가지 않겠다는 건데?”
“괜히 속보이잖아. 내가 꼭 뭘 바라고 선물하는 것처럼.”
“그럼 자기는 이 선물 주면서 그 사람들이 자기한테 뭘 해주기를 바랄 거야?”
“아니. 나야 자기 마음처럼 그저 한 해 동안 일거리 줘서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주고 싶지.”
“그럼 됐네. 자기 말대로 속 보이는 게 오히려 고마운 일이네 뭐. 그리고 뭘 바라는 사람들은 양말 같은 거 선물하지 않아. 자기도 생각해봐. 뭔가를 바라고 선물을 한다면 받는 사람이 도저히 그냥은 받을 수 없게끔, 뭔가로 보답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될 아주 큰 그런 것들을 선물하지 않겠어?”
“그렇긴 한데….”
“걱정 하지마. 자기는 선물을 주는 거지 뇌물을 주는 게 아니야. 선물과 뇌물의 차이가 뭔데. 선물은 바라는 거 없이 그저 선선한 마음으로 주는 거고. 뇌물은 뭔가를 바라고 아주 복잡한 계산을 하면서 머리가 아프도록 뇌를 쓰면서 주는 게 뇌물이야. 두고 봐. 거래처 사람들도 이 양말을 자기 마음의 선물로 받아들일 거니까.”
그 후. 해마다 추석이 다가오면 저는 남편의 거래처 사람들에게 빠지지 않고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비누세트, 식용유 세트, 커피세트, 참기름 세트 등등. 저는 그것들을 일일이 제 손으로 포장을 하였습니다.
그건 제 마음의 정성을 보태기 위함이었습니다. 요즘처럼 기술자들이 넘쳐 나는 세상에 그래도 잊지 않고 꼭 남편에게 일거리를 주는 남편의 거래처. 그 고마움이란…. 저는 선물 하나하나를 정성껏 포장하면서 마음속으로 되뇌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