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뇌물 대신 '선물'로 마음을 전하세요

대가를 바라지 않는 기쁜 마음, 그게 바로 좋은 선물입니다

등록 2005.09.12 00:54수정 2005.09.13 08:5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가을이라는 계절을 실감하지만, 한낮의 태양은 아직도 뜨겁습니다. ‘가을볕은 보약’이라는 말도 있고 ‘봄볕엔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엔 딸 내보낸다’는 말도 있지만, 가을볕이 제 아무리 따가워도 요즘 볕은 그저 푸근하기만 합니다.


가을볕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 탓이기도 하거니와 뭐니 뭐니 해도 요즘의 햇살은 들판의 곡식들을 토실토실 살찌워 주는데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조를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푸근한 가을볕, 선선한 가을바람, 드높은 가을하늘, 가을은 좋은 거 천지입니다. 가을이란 말 한 마디만으로도 무작정 넉넉해지는 계절 가을은 이렇듯 이유 없이 좋습니다. 또 추석이란 명절이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고 넉넉함을 나누는 추석. 해서 가을이란 계절은 분명 축복받은 계절임에 틀림없습니다.

김정혜
오늘 오후. 남편은 추석선물이 담긴 박스를 무슨 귀중한 보물이라도 되는양 가슴으로 야무지게 보듬어 안고 집을 나섰습니다. 남편은 내심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얼굴엔 환한 웃음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남편이 막 차를 출발시키려 할 때 남편에게 기분좋게 한마디 했습니다.

“복희아빠! 그건 뇌물이 아니라 선물이야! 알지?”
“그럼. 알고 말고. 하여간 복희엄마, 올해도 수고했어. 그리고 고마워.”

남편의 수고했다는 한 마디가 또 고맙다는 한 마디가 제 가슴에 따스하게 젖어 들었습니다. 남편의 차는 부서지는 햇살 속으로 내달렸고 어느 순간 점점 작아지더니 마침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짐작컨대 남편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코스모스 가득한 가을 길을 즐겁고 신나게 달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편과 저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듬뿍 실은 작은 선물들을 함께 싣고 달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남편과 추석선물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복희아빠! 명절인데 거래처에 선물 준비해야지?”
“선물? 글쎄. 올해는 뭐가 좋을까?”

“뭐가 됐든 뇌물이 아니고 선물이 되면 좋은 거지. 안 그래?”
“당연하지. 올해도 뇌물 말고 선물로 복희엄마가 알아서 준비해줘.”

남편과 결혼을 하고 나서 처음 추석을 맞았을 때였습니다. 저는 추석 전에 미리 남편의 거래처 사무실 사람들에게 추석선물을 준비하였습니다. 선물은 바로 양말이었는데 사장님이나 말단직원이나 똑같이 두 켤레씩이었습니다. 미리 그것들을 사다가 일일이 포장을 하여 추석 며칠 전에 남편 앞에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선물들을 거래처 사무실에 가져가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가져가지 않겠다는 건데?”
“괜히 속보이잖아. 내가 꼭 뭘 바라고 선물하는 것처럼.”

“그럼 자기는 이 선물 주면서 그 사람들이 자기한테 뭘 해주기를 바랄 거야?”
“아니. 나야 자기 마음처럼 그저 한 해 동안 일거리 줘서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주고 싶지.”

“그럼 됐네. 자기 말대로 속 보이는 게 오히려 고마운 일이네 뭐. 그리고 뭘 바라는 사람들은 양말 같은 거 선물하지 않아. 자기도 생각해봐. 뭔가를 바라고 선물을 한다면 받는 사람이 도저히 그냥은 받을 수 없게끔, 뭔가로 보답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될 아주 큰 그런 것들을 선물하지 않겠어?”

“그렇긴 한데….”
“걱정 하지마. 자기는 선물을 주는 거지 뇌물을 주는 게 아니야. 선물과 뇌물의 차이가 뭔데. 선물은 바라는 거 없이 그저 선선한 마음으로 주는 거고. 뇌물은 뭔가를 바라고 아주 복잡한 계산을 하면서 머리가 아프도록 뇌를 쓰면서 주는 게 뇌물이야. 두고 봐. 거래처 사람들도 이 양말을 자기 마음의 선물로 받아들일 거니까.”

그 후. 해마다 추석이 다가오면 저는 남편의 거래처 사람들에게 빠지지 않고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비누세트, 식용유 세트, 커피세트, 참기름 세트 등등. 저는 그것들을 일일이 제 손으로 포장을 하였습니다.

그건 제 마음의 정성을 보태기 위함이었습니다. 요즘처럼 기술자들이 넘쳐 나는 세상에 그래도 잊지 않고 꼭 남편에게 일거리를 주는 남편의 거래처. 그 고마움이란…. 저는 선물 하나하나를 정성껏 포장하면서 마음속으로 되뇌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김정혜
올해도 무엇이 좋을까를 고민하던 저는 치약을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마침 제가 다니고 있는 공장에서 치약을 아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4개가 들어있는 치약선물세트를 올해도 고마움을 듬뿍 담아서 정성껏 포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남편 앞에 그것들을 내놓았습니다.

값으로 따진다면 부끄럽기 그지없는 선물이지만 마음으로 따진다면 그 어떤 값비싼 선물보다 못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저만의 만족감으로 뿌듯했습니다. 더불어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정성으로 포장했던 제 마음과 또 그것들을 들고 나가는 남편의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 선물은 이미 선물이라는 제 구실을 아주 충실히 이행한 것이었습니다.

김정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추석선물로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좋은 선물이란, 우선 주는 마음이 기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그저 주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그 마음이 먼저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이 절실하다면 분명 받는 사람도 그 마음을 느낄 것입니다. 더불어 받는 사람도 분명 기쁠 것입니다. 올 추석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뇌물이 아닌 정말 감사의 선물을 건네는,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우리 모두 넉넉하고 풍성한 추석을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4. 4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5.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