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일간 휴회에 들어갔던 4차 6자회담이 오늘(13일) 오후 5시부터 재개된다. 이미 1단계 4차 회담에서 서로의 우려와 요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심도 깊은 토론을 거친 바 있어, 이번 2단계 회담에서는 문제 해결의 원칙과 목표를 담은 공동성명 채택에 주력할 예정이다.
그러나 회담 결과를 낙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1단계 회담에서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평화적 핵이용, 특히 경수로 문제에 대한 남-북-미 3자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우라늄 농축 문제 등 핵 폐기의 범위와 대상, 그리고 북한의 핵포기와 이에 대한 상응조치를 연계시키는 문제도 있어 합의 도출에 난항이 예상된다.
경수로 사업- 미국은 논의도 반대, 북한은 "포기 못해"
특히 경수로 문제는 이번 회담에서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중대제안을 통해 200만kw의 전력 제공을 제시한 바 있기 때문에 신포 경수로는 종료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북한이 숨을 쉴 권리는 있지만 다른 나라가 산소까지 공급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자체적으로나 다른 나라의 지원을 받아서나 경수로를 건설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경수로 사업은 6자회담의 의제가 아니라며 이 문제가 회담에서 논의되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신포 경수로의 종료는 한국도 동의했고, 북한이 발전용 원자로를 갖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이 지원해 줘야 하는데,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신포 경수로에 대해 한미 사이에 미묘한 입장 차이도 발견되고 있다. 미국은 신포 경수로 사업이 영구 종료되어야 한다는 반면에, 한국은 먼 미래의 가능성을 남겨둘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경수로 사업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12일 중국의 신화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방침을 거듭 밝히면서, "조선은 응당 경수로를 갖고 이것은 핵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말하는 경수로가 신포에 건설하다가 중단된 경수로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와 관련해 북한의 김계관 부상은 8월 14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경수로가 핵무기 제조용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의 직접 참여 등 "엄격한 감시 하에 운영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제네바 합의에 따라 "미국의 주선 하에" 지어주기로 한 신포 경수로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흑연감속로 카드 꺼내 반격 나설 수도
이처럼, 경수로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완전 폐기'를, 북한은 '공사 재개'를, 남한은 먼 미래에 가능성을 열어둔 '종료'를 선호하고 있다.
경수로 문제를 논의하면 할수록 서로의 차이만 부각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만약 이 문제가 2단계 회담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다면, 공동성명 채택 자체에 실패할 수도 있다.
특히 미국이 경수로 사업의 완전 폐기를 관철시키려고 할 경우, 북한은 이에 맞서 흑연감속로를 폐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들고나올 가능성도 있다.
흑연감속로는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한반도 비핵화선언에서는 금지 대상이 아니고, 제네바 합의에서는 동결 및 폐기 대상이었다. 흑연감속로는 경수로에 비해 발전 효율은 떨어지는 반면에,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기가 훨씬 용이한 원자로이다.
북한은 5MWe 1980년대 후반 흑연감속로를 완공해 가동하다가 제네바 합의이후 동결에 들어갔다. 그리고 2차 핵문제가 발생한 직후 재가동에 들어간 상황이다. 또한 영변과 태천에 건설하다가 중단한 50MWe 및 200MWe 원자로도 공사 재개에 들어갔거나, 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경수로 폐기 압박을 받는 북한이 흑연감속로 카드를 꺼내든다면, 북핵 협상은 총체적인 난관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경수로도 인정할 수 없다는 미국이 핵무기 제조가 훨씬 용이한 흑연감속로를 용인할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는 남한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경수로를 보장해줄 수 없다면 흑연감속로라도 갖겠다는 입장을 내세울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경수로 사업은 제네바 합의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미국이 제네바 합의 파기를 근거로 경수로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북한은 경수로를 제공받기로 하고 동결·폐기하기로 한 흑연감속로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이 제안한 200만kw의 전력 제공 역시 북한의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 기술적·정치적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북한은 남한의 중대제안을 경수로 사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김대중 정부 때 약속한 전력 지원 및 경수로 사업 지연에 따른 보상으로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와 같은 북한의 입장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네바 합의 폐기의 책임으로부터 미국도 자유로울 수 없고, 경수로 사업 지연에 따라 전력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결국 협상을 통해 조정되어야 한다.
타협의 접점: 군사적 전용 원천 봉쇄와 공사 중단 '유예'
따라서 경수로 문제로 협상이 총체적인 난관에 직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북미 양측의 '잠정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경수로의 운명을 현 시점에서 매듭지으려고 하기보다는 미래의 의제로 남겨두고, 대신 경수로가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소지를 원천봉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란과 유럽연합(EU) 사이의 핵 협상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U는 이란의 평화적 핵이용은 인정하되, 핵무기 제조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및 플루토늄 재처리는 불허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이란과 협상 중이다. EU가 주선해 핵연료를 제공할테니 우라늄 농축 활동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미국도 이러한 방식의 문제 해결을 지지하고 있다.
4차 6자회담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경수로 문제 역시 이와 흡사하게 접근할 수 있다. 즉, 경수로가 핵무기 제조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소지를 원천봉쇄한다는 차원에서 북한에게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들을 제시하고 북한이 이를 수용할 의사가 있다면, 경수로 사업의 재개를 고려할 수 있다는 타협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까다로운 조건'에는 핵무기 제조용으로 이용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을 완전히 포기하고, NPT에 가입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상시적인 감시 및 사찰을 받아들이는 것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못 믿겠다면 경수로 운영권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등 국제기구가 갖고 북한은 전력 사용권만 갖는 방안도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경수로 문제에 대한 '잠정 타협'은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소지를 제거하는 데 북한이 동의하고,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면 미국은 경수로 사업 재개에 동의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6자회담에서는 '경수로 공사의 중단 상태를 유지하고, 공사 재개 여부는 추후에 다시 논의한다'는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경수로 문제 때문에 6자회담 프로세스가 총체적인 위기에 봉착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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