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의 숨결이 살아 있는 화석정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1호 화석정

등록 2005.09.13 16:30수정 2005.09.1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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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 자리잡고 있는 화석정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 자리잡고 있는 화석정 ⓒ cpn

a 화석정에서 내려다본 임진강의 시원스러운 풍경

화석정에서 내려다본 임진강의 시원스러운 풍경 ⓒ cpn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 자리잡고 있는 화석정은 자유로를 타고 가다 문산으로 들어가게 되면 나온다. 임진강의 아름다운 물줄기와 함께 임진강변 절벽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정자다. 화석정을 찾아가는 길은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외진 길이다. 그래서인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화석정에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활처럼 휘어진 임진강의 시원스러운 모습이다. 그리고 정자 양쪽으로 서 있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 수령이 무려 5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풍당당함은 율곡 선생의 곧은 성품을 닮은 듯하다.


화석정은 1974년 9월 26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겹처마의 초익공(初翼工) 형태로 조선 시대 양식을 따른 건물이다. 이 정자는 율곡(栗谷) 선생이 국사의 여가와 퇴관(退官) 후에 매양 들러 작시, 연구와 묵상을 하던 곳이다.

율곡 선생의 5대 조부 이명신(李明晨)에 의하여 1443년에 창건된 것을 이숙함(李叔喊)이 이 정자를 화석정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그 후 율곡 선생이 다시 중수하여 사용하던 이 정자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80년간 터만 남아 있다가 현종 때에 선생의 종증손들이 복원(復元)하였으나 6·25동란 때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66년 파주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하고 1973년 정부가 실시한 율곡 선생 및 신사임당 유적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화석정이 단청되고 주위도 정화되었다.

조선의 대표적인 학자 율곡 이이는 덕수 이씨(德水 李氏)이며, 아버지 이원수와 어머니 신사임당의 일곱 남매 중 셋째 아들로, 중종 31년(1536년) 외가인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다. 신사임당은 율곡 선생을 가졌을 때 태몽으로 용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렸을 적 이름을 현룡(見龍)이라 하였고 선생이 태어난 방을 몽룡실(夢龍室)이라 불렀다 한다.

선생은 어릴 적부터 대단히 총명하여 3세에 글을 읽기 시작하고 8세 때 화석정시(花石亭詩), 10세 때 경포대부(鏡浦臺賦)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으며 13세 때 진사초시에 합격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아홉 번이나 과거에 장원급제를 했는가 하면 참으로 많은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 임금이 평양으로 피난을 가게 되어 화석정 부근의 임진나루에 도착하게 되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임진강을 건널 방법을 찾고 있는데 순간 화석정에 불이 붙어 그 불빛을 따라 임진강을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불은 율곡 선생의 다음과 같은 유언에 따른 것이라 한다. 선생이 생전에 화석정을 기름 걸레로 닦게 하고 모년 모월 모시에 화석정에 불을 붙이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바로 그날이 선조 임금이 임진강을 건넌 그 시각이라고 한다.


a 화석정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관광객과 청소가 되어있지 않아 나뭇잎과 쓰레기가 뒹굴고 있다.

화석정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관광객과 청소가 되어있지 않아 나뭇잎과 쓰레기가 뒹굴고 있다. ⓒ cpn

화석정 아래 매점에는 동네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음료수를 마시면서 가을의 정취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화석정을 올라간 순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율곡 선생의 자취가 서려 있는 화석정 위에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시고 있는 일행들 때문이었다. 카메라가 보이자 술병을 치우려는 모습에서 문화재를 대하는 국민 의식이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문화재는 문화재 그 자체로 감상하고 즐겨야 되는데 그 곳에서 술을 마시며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은 문화시민으로 가는 걸림돌이다.

화석정은 파주시뿐만 아니라 유림들의 관심으로 비교적 보수 정비가 잘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세세한 곳까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인지 정자 안에는 나뭇잎들과 쓰레기가 같이 뒹굴고 있었다.


화석정의 관리는 정자 앞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이 아침, 저녁 청소를 하는 정도이다. 파주시청의 관심이 조금 아쉬울 따름이다. 우리 나라 정치의 거목이 사색과 사유를 즐기던 화석정, 이는 곧 우리가 지켜내야 할 자산이다.

a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 ⓒ cpn

덧붙이는 글 | 이수앙 기자는 cpn문화재방송국 소속이며, 이 기사는 IMBC에 동시게재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수앙 기자는 cpn문화재방송국 소속이며, 이 기사는 IMBC에 동시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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