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을 안 해서 더 예뻐요

등록 2005.09.13 17:44수정 2005.09.1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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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YWCA에 요리를 배우러 드나들면서 눈에 띄게 피부가 고아 보이는 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살결이 희고 고와 보여 무척 부러웠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화장기라고는 전혀 없는 얼굴인데도 그렇게 피부가 고울 수가 없습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입니다. '대체 비결이 뭘까?' 그렇다고 다짜고짜 비결을 물어 볼 수도 없는 일이라 참고 있었는데 다른 분들도 궁금해서 물어 보았나 봅니다. 그 분에게서 비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직까지 화장이라곤 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 분의 여고생 딸이 '엄마도 다른 엄마들처럼 예쁘게 화장하고 다니라'는 주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a '화장을 안해서 더 예쁜' 청주YWCA 김은식 부장

'화장을 안해서 더 예쁜' 청주YWCA 김은식 부장 ⓒ 허선행

제가 들은 비결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세안 후 사과식초로 한 번 더 헹구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네요. 20년이 넘게 써 온 비법이라고 하니 검증된 셈이지요. 그런데 그 분이 더 예뻐 보이고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환경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게을러서라거나 화장을 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가꾸는 데 앞장서기 위해 내 몸과 내 가정부터 실천하는 모범가정주부로 보입니다. 주방에서 흔히 쓰는 세제도 사용 안하고 효소액을 사용하여 설거지도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샴푸나 린스ㆍ비누ㆍ화장품의 사용이 물을 오염시킨다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쓰게 됩니다. 더군다나 이제는 화장을 안하면 다른 사람 앞에 서기조차 꺼려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너무도 당당하고 예뻐서 화장한 우리가 주눅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고 보니 친정어머니도 화장을 안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 중에 어머니 이야기를 해서 제가 아는 분의 따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까지 예쁜 그 분의 모습이 영락없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더니 조용히 환경지킴이 역할을 하고 계시는 훌륭한 분입니다.


"화장 안한 사람은 싫다고 그러더라"

여기서 그 분의 닮은꼴인 제 후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저와 함께 근무하던 후배가 얼마나 고운 마음씨와 고운 얼굴을 가졌는지 시시때때로 자랑을 하고 다닐 때였습니다.

마침 인근의 총각과 자리를 마련해서 만나게 해주자는 지인의 남편 제의를 받고 자신만만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훌륭한 규수감은 없을 거야'라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그 후배는 제가 주선한 맞선자리에 다녀왔다며 "선배! 아무래도 그 쪽에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에요"라는 언질을 주었습니다. "그럴 리가. 눈이 잘못 되지 않았다면…." 지인의 남편으로부터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전화가 왔습니다. 선보는 자리에 화장도 안하고 나왔다며 예의가 없다고 전합니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후배에게 장난조로 말했습니다.

"야! 이 예의 없는 선생님아! 화장도 안하고 나갔냐?"
"왜요? 뭐가 잘못됐나요?"
"그래, 화장 안한 사람은 싫다고 그러더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람 보는 안목이 다른 맞선남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맞선을 보지 않겠다는 후배를 등 떠밀어 내보냈기 때문입니다.

내 남동생만 있었다면 우리 올케로 점찍었을 거라며 아끼던 후배가 화장을 안했다는 이유로 딱지를 맞았으니 분하기까지 했습니다. '참 사람 볼 줄 모르누만. 사람 좋지, 부지런하지, 피부 좋지, 이목구비 뚜렷하지, 안타깝게도 다른 점은 눈 여겨 볼 생각도 안하다니….'

흥분한 저를 오히려 위로하던 후배는 그 후 다른 분과 결혼하여, 한 집안의 어진 며느리로서 지어미로서 선생님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결혼식 때도 화장을 한 듯 안한 듯 살짝 했는데도 화사한 신부의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지금도 그 후배는 평소에는 화장을 안합니다. 귀찮아서 화장을 안한다고 하지만 건강한 맨 얼굴에 자신이 있기도 해서일 겁니다. 요즈음 우스개 소리로 '살펴보자 화장발'이라고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런 여자 분이라면 화장발은 염려 안해도 되겠지요.

제 아침시간은 꽤나 분주합니다. 새벽운동이 끝난 후 땀에 젖은 옷 세탁하랴 씻으랴 출근준비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게다가 화장까지 하려니 마음은 더욱 급하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꼬박 빠트리지 않고 화장을 합니다.

'이참에 화장을 줄여볼까?' '아예 안해 본다면?' 진즉부터 피부를 가꿨다면 여러 사람 앞에 당당하게 맨얼굴로 나설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오늘도 갈등 속에 화장을 하고 있는 거울 속의 제 모습을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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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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