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이다,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불갑산 꽃무릇에 반하다

등록 2005.09.13 19:06수정 2005.09.1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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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 축제가 열린다는 영광 불갑산을 미리 가게 되었다. 아침 일찍 성묘를 마치고 불갑산으로 향했다. 불갑산은 몇 번 가보았지만 조용하고 아담한 불갑사만 한 두 번 들러 본 기억이 전부다.


불갑사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파한 인도승 마라난타가 백제 침류왕 원년에 제일 처음 지은 도량으로 우리나라 불교의 효시가 되는 곳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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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숙

불갑산. 추석 무렵 17일부터 꽃무릇 축제가 열린다고 곳곳에 현수막이 펄럭인다. 영광으로 시집을 간 지 어언 15년 동안 불갑산의 꽃무릇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오래 전 선운사 입구에서 붉은 꽃무릇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꽃무릇을 설명하던 작은 팻말의 글귀만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한 편의 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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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숙

잎은 꽃을 그리워하고
꽃은 잎을 그리워하지만 서로 만날 수 없는 꽃
한 몸이지만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만 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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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숙

꽃무릇을 사람들이 상사화(相思花)라 부르는 애닯은 사연이다. 상사화.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아리는 붉디 붉은꽃! 현수막마다 상사화 축제라고 하며 많은 사람들이 꽃무릇을 상사화라 부르더라.

나도 상사화가 더 멋진 이름같아 상사화라 불렀지. 하지만 상사화와 꽃무릇은 분명 다르다. 꽃과 잎이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은 공통점이지만 상사화는 봄에 잎이 나온 뒤 여름에 꽃이 피고, 꽃무릇은 초가을 꽃이 핀 뒤 잎이 돋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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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숙

불갑사 입구에서부터 꽃무릇의 자태에 넋을 잃고 말았다. 똑같은 꽃무릇이 피었건만 저마다 다른 모습인듯 하여 발길을 옮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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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숙

지금 막 땅을 뚫고 올라오는 연초록 꽃대마저 신비롭기 그지없다. 봄의 새싹이 언 땅을 녹이고 솟아오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저마다 꽃이 지고 열매를 맺어 결실하는 계절이건만 꽃무릇은 무슨 사연으로 이 가을 긴 꽃대를 올려 붉은 꽃들을 이리도 많이 피워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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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숙

바위틈에 뿌리 내려 꽃대를 올린 꽃무릇을 어떠한 지식으로 설명을 해야만 할까. 어떤 언어로 표현을 해주어야 딱 맞는 말이 될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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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숙

지난 여름 비가 내렸을 때 덮고 있던 흙이 쓸려내려간 자리엔 꽃무릇 토실토실한 알뿌리가 꽃대를 올리지 못한 채 알몸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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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숙

불갑산의 꽃무릇은 전국 최대의 자생 군락지라고 한다. 입구에서부터 시작하여 산중턱까지 꽃무릇이 빨간 융단처럼 펼쳐져 있는데 정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지금 30%정도 개화한 것으로 가정할 때 만개시엔 산에 꽃 불이 난듯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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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숙

꽃무릇에 홀려 헨젤과 그레텔처럼 자꾸자꾸 산속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 바위 틈에도, 굵은 나무뿌리 옆에도, 졸졸졸 작은 계곡에도, 길쭉한 대나무 아래도, 사람들 발에 차이는 등산로 옆에도, 말벌들이 집을 지어놓은 벌집 옆에도, 꽃무릇이 꼿꼿한 꽃대를 올리고 서있다.

꽃무릇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르다가 우리는 불갑산 정상인 연실봉까지 오르게 되었다.

장관이다.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덧붙이는 글 | 개인홈피 및 게시판 에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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