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만든 '신드롬'... 과학논쟁이 실종됐다

[기고] 전방욱 강릉대 교수

등록 2005.09.14 10:21수정 2005.09.1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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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대통령을 비롯 정부, 언론에 이어 국민들까지도 한 목소리로 '생명공학 킹' 황우석을 칭송한다. 그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가운데 <오마이뉴스>는 '황우석 신드롬'의 실체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 두 번째로 황 교수 연구와 관련한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짚은 전방욱(생물학) 강릉대 교수의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주>
a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지난 8월 3일 오전 서울대 수의과대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 최초로 개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황 교수의 회견에는 수십명의 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였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지난 8월 3일 오전 서울대 수의과대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 최초로 개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황 교수의 회견에는 수십명의 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가 과학기사를 작성하는 종래의 방식은 과학학술지나 학회 발표논문을 1차적인 취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과학자의 논문발표와 동시에 기자회견을 통해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획기적인 연구 성과의 발표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것은 대중적인 지지와 공적인 정책 지원을 바라는 과학자와 풍부한 자료와 독자들의 과학 외적인 관심사를 충족시켜주기 원하는 언론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을 상품으로 파는 과학자와 과학기사를 상품으로 파는 과학기자의 이해는 엇갈릴 경우가 많다. 이런 과정에서 과장(hype)이 등장할 가능성이 많다.

"무대 위의 과학"부터 "황우석 쓰나미"까지... 과장에 대한 우려들

예를 들어 유전자 조작, 게놈 해독, 유전자 치료의 경우에 이런 과장 사례는 많이 보고 되고 있고 유전학 과장(genohype)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배아복제의 경우나 줄기세포의 경우에도 복제 과장(cloning hype), 줄기세포 과장(stem cell hype) 등이 등장하여 마치 과도한 의료적 잠재성이 있는 것처럼 강조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최근의 인간배아복제 보도를 두고 여러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동광 박사(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는 "애국적 과학" "무대 위의 과학", 김명진 선생(성공회대 강사, 과학기술사)은 "황우석 쓰나미", 황상익 교수(서울의대 교수)는 "황우석 신드롬"을, 서이종 교수(서울대 사회학과)는 "과학논쟁의 실종"을 지적했다.

이 모두가 과학자들이 실험의 배경, 연구진행 상황, 일화 등을 직접 설명하는 경우에 언론이 여과기능을 갖기 못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유전학 과장을 연구한 맥길대학의 커필드(Timothy Caufield) 교수는 언론이 과학논문을 바탕으로 하여 주도적으로 과장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적다고 지적했고 과학자의 과장을 걸러내지 못할 경우에 이런 과장이 등장한다고 주장했다.

생명과학계에 끼칠 부정적 영향, 연구비 배분, 자격문제 등 의견이 사라졌다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과학적 사실의 중요성과 의의 등의 검토를 위해서는 동료 과학자들의 평가가 필요하다.

과학적 사실의 중요성은 국제저명학술지 게재로 인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과학 관련 웹사이트에 나타난 다른 동료 과학자들의 평가를 보면 '배아복제 연구의 성과는 인정하면서도 임상적용에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섣부른 과장이 생명과학계 전반에 끼칠 부정적인 영향, 연구비 배분, 저자 자격문제, 대학원생의 대우 등 상당히 다양한 의견들을 개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들은 이처럼 숨어있는 다양한 동료과학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담아내지 못했다.

과학적 사실 이외에 실제로 과학자들이 설명하는 실험 배경, 연구진행 상황, 일화 등의 이야기를 통해 언론은 윤리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는가, 문제점은 없는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등을 검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는 언론의 책무라고 할 것이다.

이런 사회적 맥락의 검토를 위해서는 인문사회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합리적인 논의의 장을 만들고 다양한 담론을 이끌어내기 보다는 '생명공학이냐 생명윤리냐'와 같은 대립적인 구도로 다루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보수적 언론일수록 과학자와 연구진에 의존적

일선기자들은 과학기사의 불균형 보도에는 구조적 관행도 있다고 지적한다.

편집국 내에는 보통 과학기자가 있는데 평상시의 사소한 과학적 문제는 다른 영역과 분리된 채 과학전담기자만의 관심에 따라 작성되다가 배아복제처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과학적 문제에는 과학전담기자의 의사가 무시된 채 여론의 흐름을 중시하는 편집국 내의 의사결정 구조에 따라 보도 의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결국 일선기자의 보도 태도에 대한 비판보다는 보도국과 편집국 밖에서 해당 담론을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언론의 보도 패턴도 문제인데, 보도시 인용 취재원의 수가 적으며, 기자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때 또한 전문기자와 복수의 기자가 기사를 작성할 경우보다 일반기자 혼자 기사를 작성할 때 이런 경향은 특히 심하게 나타난다.

또한 취재원을 인용할 경우에도 과학자와 연구진에 보다 의존적이고 다른 의견은 거의 무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보수적인 언론의 경우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 심했다. 이것은 언론의 논조가 배아복제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려준다.

한국 언론, 균형있는 배아복제 보도 못했다

a 전방욱 강릉대 교수

전방욱 강릉대 교수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언론은 배아복제 연구의 성과와 사회적 영향을 평가하는데 있어 균형적인 시각을 대중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언론학자의 기존 연구 결과들을 보면 독자들은 균형적인 기사를 보도한 언론을 편향적인 기사를 보도한 언론보다 더 믿을 만하다고 평가하며 기사구조가 편향될수록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중적인 인기에 영합하는 배아복제를 두둔하는 식의 편향적 기사는 결국 독자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점을 언론들은 명심하고 이후 이러한 점을 보도의 지침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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