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심
짜밤은 통깨를 볶는 낡은 냄비에 넣고 기름 한 방울 두르지 않은 채 깨처럼 볶아야 했다. 타지않게 살살 저어주면 어느 순간 이게 팝콘인가? 아니면 제비나라 임금님이 선물로 주신 박속의 선물인가 싶을 정도로 새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짜밤이 제 속살을 드러내준다.
그러면 손톱을 이용해서 반쯤 열린 껍질을 벗겨내고 하얀 속알맹이만을 꺼내서 입안에 털어넣으면 된다. 물론, 가장 맛나게 먹는 방법은 한 개씩이 아닌 볼이 미어터지게 밀어 넣고 먹는 것이다. 짜밤을 줍다보면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자연의 신비 하나도 배울 수 있다. 짜밤은 해걸이를 하며 열매를 맺는데, 먹을 게 귀하던 시절이나 보릿고개 시절에는 해걸이를 잊은 채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그런데 보릿고개가 없어져서일까? 요즘엔 짜밤을 줍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마을을 휘돌아 짜밤산까지 가는 길이 무성한 잡초로 뒤덮여 버렸다고 했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나이 지긋한 노인들뿐이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마을 전체를 뒤흔들며 들려오던 깜부기 악동들의 염소치는 소리도, 누렁이가 들려주던 잔잔한 방울소리도 없어져버렸다고 했다.
100여년 전통을 간직한 초등학교는 이제는 학생이 없어 폐교 위기에 놓였다고 했다. 저출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아닌 섬마을의 학교와 섬마을에서만 건져올릴 수 있는 추억의 요소들이 아닐까 한다. 지금은 논두렁 밭두렁에서 허연 궁둥이를 내놓고 볼일을 보는 아이는커녕, 마을에 아이울음소리가 끊어진 지 몇 해인지 셈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그러니 우리의 추억 일번지였던 짜밤산도 이제는 시간이 멈춰버린 늪처럼 바짝 엎드린 채 고향 마을을 내려보며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추억을 주워갈 깜부기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고향에 들렀을 때 먼발치에 바라다 뵈는 짜밤산을 사진 속에 담으면서 그런 아쉬움과 안타까움 때문에 가슴 한 쪽이 '쏴아' 쓰라려 왔다. 하지만 이곳에 글을 올리면서 추억 속에만 자리하고 있는 그 짜밤산을 소개할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내 고향 그곳에는 짜밤산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여기가 바로 "내고향 명소"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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