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롱의 결정판, 초절정 오버 걸'

치매 엄마 앞에서 재롱 떠는 마흔 넘긴 딸

등록 2005.11.23 20:38수정 2005.11.24 09:2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약 먹어야지."
"아~ 해 봐, 엄마, 꿀떡해. 꿀떡."


엄마에게 꿀떡하라는 말과 함께 내 목을 힘껏 재껴가며 물을 넘기는 시늉을 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평소에 약을 잘 삼키지 않아 애를 태우는 엄마가 단번에 약을 삼켰다.

"아니, 벌써 꿀떡했네."
"어이쿠, 엄마, 최고다. 최고야."

난 박수를 치고 엄지손가락까지 치켜 올리며 호들갑스럽게 엄마를 칭찬하기에 바쁘다. 영낙 없는 '오버 액션'이다. 내 처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나의 모습에 아마 박장대소할지도 모르겠다.

식사할 때마다 난 엄마에게 반찬을 집어드리기도 하고 엄마의 기분 상태가 좋지 않은 날엔 아예 먹여 드리고는 한다. 이럴 땐 엄마의 가라앉은 기분을 '살리기' 위해 나의 오버는 한 단계 높아진다.

"엄마, 맛있지?"
"우리 엄마는 밥도 맛있게 잡숫네. 엄마가 밥 드시는 걸 보면 사람들이 전부 밥 먹고 싶어진대. 교회 권사님도 그러셨어."


처진 기분을 살려줄 요량으로 잘 듣지 못하는 엄마의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요란스레 말을 하고 있는 내게 엄마의 한 마디가 나를 머쓱하게 만든다.

"아휴~ 시끄러 죽겠네. 잠자코 밥이나 먹어."


하품을 하는 엄마의 입에 손을 집어 넣었다 빼며 장난을 치기도 하는데 이때 엄마가 내 손가락을 깨물기라도 하면(물론 힘없이 살짝 무는 시늉만 한다) 난 깨물린 손가락을 흔들며 아프다고 엄마에게 엄살을 떤다.

"아야야야~ 엄마, 아파. 아파. 아프다구. 딸을 그렇게 아프게 무는 사람이 어딨어? 엄마 울 엄마 맞아?"

나의 애교 섞인 엄살에 유쾌해져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은 엄마가 한 말씀하신다.

"그러게. 누가 엄마한테 덤비라 그랬어?"

막내 동생이 함께 살던 지난해, 침울해 있는 엄마를 즐겁게 하기 위해 동생은 엄마에게 짓궂은 장난을 자주 쳤다. 엄마 쭈쭈를 만지려고도 하고 화를 내며 말하는 엄마에게 '심술꾸러기 엄마'라며 시비를 걸고는 했다.

처음에 화를 내던 엄마도 동생의 집요한 장난에는 결국 웃음보를 터트리는데 화를 내다 웃어 버려 쑥쓰러워진 엄마가 내게 응원을 요청한다.

"쟤가 나한테 막 뭐라고 해. 쟤 좀 때려줘."

난 이때 엄마의 응석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누가 울 엄마를 귀찮게 해. 내가 때려 줄게."

"에잇 퍽"하고 입으로 소리까지 내 가며 주먹 쥔 손으로 동생을 때리는 시늉을 하면, 동생은 큰 소리로 "으윽"하고 바닥에 쓰러지는데 이 정도면 오버 액션의 절정이지 않을까 싶다.

엄마가 날 쥐어 박는 척하면 저만큼 나동그라지는 묘기 아닌 묘기도 보인다. 엄마와 팔씨름을 하며 "아니, 무슨 엄마가 이렇게 힘이 센 거야?"라는 너스레와 함께 정말 힘겨운 듯 얼굴까지 일그리며 져 주기도 한다.

또, 배고프다고 엉엉 우는 시늉까지 내며 엄마한테 밥 달라고 응석을 부리기도 하고, 전화를 해서는 엄마가 보고 싶어 울었다며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엄마가 좋아하는 현철의 노래에 춤까지 추는 모습은 영낙없는 꼬맹이들의 '재롱잔치'다. 아이쿠, 마흔을 훌쩍 넘긴 처자의 재롱잔치라니...

치매에 걸린 후 아이가 되어 버린 엄마와의 대화는 늘 과장된 행동과 말이 필요해 발병 후 6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나의 '오버'는 일상이 되다시피했다.

치매 환자는 감정의 기폭이 커 자칫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데 엄마 역시 자신과 아무도 놀아 주지 않을 때면 우울해 하거나 화를 낸다. 또 환영이나 환청, 환각 등으로 말을 하지 않기도 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을 때가 많다.

이때 나의 '오버'가 빛을 발한다. 늙은 딸의 애교와 재롱이 뒤섞인 과장된 행동에 결국 엄마의 얼굴에 웃음을 짓거나 닫아 놓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오게 된다. 이렇게 나의 '오버'는 엄마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사랑의 주사약'이었던 것이다.

오랜 직장 생활로 조금은 경직된 행동과 말이 몸에 밴 난 '무게'를 좀 잡는 사람 축에 속한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넉살 좋게 얘기할 줄도 모르고, 사람들 앞에서 우스운 얘기 한자락하는 주변머리도 없는 성격이다. 무게를 잡고 싶어서가 아니라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는 익숙하지 않아서, 자주 만나던 사람들과는 갑자기 안하던 행동을 하는 것이 쑥스러워서였다.

엄마가 치매에 걸리기 전 회사에 다니던 시절, 일에 매달려 살았던 나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야근과 강도 높은 업무로 몸은 몸대로 지쳐 갔다. 더욱이 회사일 때문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접대, 상담 등의 일로 사람들과 의도적으로 격의 없는 만남을 가져야 했기에 집에 돌아오면 아예 벙어리 수준이 되어 있을 정도로 말수가 적어졌다. 거기에 더해 집안의 생활을 책임지며 살았던 나는 엄마와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집안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기까지 했다.

엄마와의 대화란 "밥 먹었냐"는 질문에 "네" "아니오"로 대답하는 정도였고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엄마에게 "피곤하다"는 한마디로 말을 자르고는 했다.

엄마는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밖에 나가서 전화 한 번 하는 법 없는 딸, 집에 들어와서도 말 한 마디 없이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 무심한 딸에게 한없이 서운했을 것이다. 어쩌다 내뱉는 싸늘한 말에 수없이 상처도 받았을 것이다. 딸에게 생활을 의지할 수밖에 없던 엄마의 상황에 자존심마저 상했을지 모른다.

그러던 내가 엄마가 치매에 걸린 후 재롱을 넘어 푼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나의 변화에 스스로도 놀라고는 한다. 혹시 '원래 내가 좀 푼수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신기하게 엄마에게 과장된 행동과 과장된 말을 하면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을 뿐 아니라 지금은 성격마저 밝아져 있다. 엄마를 위해 시작한 '오버'가 경직된 나의 성격과 행동까지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어떠한 형식이나 체면 없이 엄마의 딸로 다가갔기에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선물이었다.

치매에 걸리시기 전 엄마를 위해 진즉에 '오버'를 했다면 엄마와 내가 좀 더 빨리, 많이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금이라도 어떻게 사는 게 진정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 깨달게 되었음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아무 할 일 없는 병든 노인이 되어 버린 엄마를 위해 나는 기꺼이 '오버 걸'이 되어 매일 매일 사랑의 주사약을 놓을 것이다.

엄마를 위해 '오버 걸'로 살아온 지난 몇 년은 너무나 못되게 굴었던 딸이 엄마에게 용서를 비는 시간이기도 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민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오마이뉴스의 정신에 공감하여 시민 기자로 가입하였으며 이 사회에서 약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글로 고발함으로써 이 사회가 평등한 사회가 되는 날을 앞당기는 역할을 작게나마 하고 싶었습니다. 여성문제, 노인문제등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3. 3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4. 4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5. 5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