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주민 죄다 모였네"

어느 시골 작은 초등학교 운동회 이야기

등록 2005.09.20 16:46수정 2005.09.2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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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가을하늘 아래 만국기가 펄럭인다. 운동장에는 흰색 달리기 라인이 선명하다. 교정에는 국민체조 구령이 울려퍼진다.


어떤 광경일까. 이것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이 있을까. 그렇다. 초등학교 운동회다.

a 학부모 경기 시작. 아이들의 응원열기가 뜨겁다.

학부모 경기 시작. 아이들의 응원열기가 뜨겁다. ⓒ 장선애

a 작은 학교 교사들은 아이들과 친숙해질 수밖에 없는 여건때문에 여느학교보다 훨씬 다정다감하다. 박종괄 교사가 달리기 출발선에서 아이들과 같은 자세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작은 학교 교사들은 아이들과 친숙해질 수밖에 없는 여건때문에 여느학교보다 훨씬 다정다감하다. 박종괄 교사가 달리기 출발선에서 아이들과 같은 자세로 신호를 보내고 있다. ⓒ 장선애

면 단위 작은 학교의 경우, 운동회는 여전히 마을잔치다. 예산군 끄트머리에 자리한 수덕초등학교(교장 이형세) 운동회가 지난 15일 열렸다. 학생수 64명뿐인 작은 학교에 가족은 물론 동네 주민들이 죄다 모여 운동장이 오랜만에 북적인다.

천막 아래 모여 앉은 노인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누구네 애가 뜀박질에서 꼴등을 했다느니, 아빠는 잘 달리는데 아들은 영 딴판이라느니 이야기가 끝이 없다.

이 학교 운동회의 특징은 호루라기나 고함소리를 듣기 힘들다는 것. 마이크에서는 연신 아이들의 이름이 불리워진다. 아무개야 어서 나와야지, 친구들 기다린다. 아무개가 달리기에서 1등을 했다. 아무개가 넘어졌다. 박수 좀 보내달라 등등.

a 작은 학교의 줄다리기 경기는 학생만으로 어렵다. 모든 학부모와 학생이 참여해야 경기가 가능하다.

작은 학교의 줄다리기 경기는 학생만으로 어렵다. 모든 학부모와 학생이 참여해야 경기가 가능하다. ⓒ 장선애

a 올 해가 마지막 운동회가 되는 6학년 어린이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이 가을 하늘을 닮았다.

올 해가 마지막 운동회가 되는 6학년 어린이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이 가을 하늘을 닮았다. ⓒ 장선애

a 아이들은 한 경기 마칠 때마다 나무그늘 아래 마련해 놓은 '가든파티장'으로 모인다. 자모회가 공동으로 준비한 음식들이 푸짐하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한 경기 마칠 때마다 나무그늘 아래 마련해 놓은 '가든파티장'으로 모인다. 자모회가 공동으로 준비한 음식들이 푸짐하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 장선애

학년별 경기를 할 때도 잘 모이지 않는다고 방송을 하거나 소리지를 필요가 없다. 단체 움직임에 둔한 저학년의 경우 고학년 선배들이 일일이 손을 잡아 데리고 나온다. 누가 특별히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뤄지는 질서 속에서 평소 생활이 읽혀진다. 예전 마을의 질서가 그랬듯.


스물아홉 가지 게임이 하루종일 이어지는 동안 학생 한 사람이 평균 8~9개 경기에 참여해야 한다. 학교의 대표적인 날쌘돌이들만 뛰는 계주도 이 학교는 전교생이 모두 한다. 1년치 운동을 하루에 다 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힘들기는 커녕 마냥 재미있어 한다.

학생 수가 적다보니 달리기도 세 명이 한 조다. 그러니까 꼴찌를 해도 3등이라는 얘기다. 모든 아이들의 팔뚝에는 운동회의 자랑인 등수 도장이 선명하다. 경기마다 받은 학용품들은 1년 내내 써도 남을 정도로 많다.


a 한 학부모가 집에서 키우던 돼지 한마리를 내놓아 즉석 바베큐 파티가 열렸다.

한 학부모가 집에서 키우던 돼지 한마리를 내놓아 즉석 바베큐 파티가 열렸다. ⓒ 장선애

a 본부석 앞에 놓인 푸짐한 상품들. 이 학교에서는 꼴찌도 상품을 받을 수 있다.

본부석 앞에 놓인 푸짐한 상품들. 이 학교에서는 꼴찌도 상품을 받을 수 있다. ⓒ 장선애

잔치 분위기를 돋우는데 음식만한 게 또 있을까. 학부모 전정만씨가 키우던 돼지 한마리를 내놓았다. 운동장 한 켠에서 즉석 숯불고기 파티가 열리고, 자모회가 먹을거리를 푸짐하게 풀어 놓으니 마음도 몸도 더없이 넉넉한 가을 한낮이 여문다.

작고 낡은 학교 건물에 쓰여있는 '즐겁게 배우고, 신나게 가르치는, 행복한 배움터'라는 문구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a "형 나도 끼워줘." 고학년들이 무용을 연습하는 곳에 나와 따라하는 저학년 어린이.

"형 나도 끼워줘." 고학년들이 무용을 연습하는 곳에 나와 따라하는 저학년 어린이. ⓒ 장선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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