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교얄개> 기억하세요?

[추억 하나 기억 사이 ⑤] 얄개의 전설, 그리고 추억의 잡지 <학원>

등록 2005.09.21 08:50수정 2005.09.2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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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개’라는 말뜻은 ‘야살스러운 짓을 하는 사람’이다. ‘야살스럽다’의 뜻을 보면 ‘얄망궂고 되바라진 데가 있음’이다. ‘얄망궂다’는 ‘성질이나 태도가 괴상하고 까다로워 얄미운 데가 있다’는 뜻이다. 결국 얄개란, 되바라진 데가 있고 행동이 예측불허라 남들로부터 미움을 사는 사람을 일컫는다.


1977년을 후끈 달구었던 영화 <고교얄개>

a 1977년 한 해를 강타했던 영화 고교얄개 포스터. 당시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는 기록인 25만 관객 동원.

1977년 한 해를 강타했던 영화 고교얄개 포스터. 당시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는 기록인 25만 관객 동원. ⓒ (주)연방영화사

석래명 감독의 영화 <고교얄개>가 1977년 1월에 개봉하자, 당시에는 난리도 아니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잉걸아빠는 친구들과 함께 북새통 속에 간신히 표를 구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어찌나 재밌던지. 얼마나 웃었던지. 요즘 학생들이야 볼거리가 넘쳐나다 보니 웬만큼 웃겨서는 잘 안 웃는다. 오죽하면 <개그콘서트>나 <웃찾사> 같은 프로그램이 ‘말 되받아치기’에만 열중하겠는가.

영화 <고교얄개>는 조흔파 선생이 전쟁 직후인 1954년 <학원>이라는 잡지에 연재했던 ‘얄개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1950년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설정이 눈에 거슬렸지만 재미만큼은 확실했다. 잉걸아빠가 서울 전농중학교 1학년이었던 시절(1974년), ‘얄개전’이 실린 1954년도 판 잡지를 구하기 위해 서울 동대문여자중학교 정문 앞 찻길 건너에 있던 헌책방을 술밥 담은 방구리 쥐 드나들 듯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 나이었음에도 나는 옛날 책을 수집하는 게 취미였다. 그 해 초여름 어느 날 점심시간. 친구 녀석이 구하기 힘든 <빨간 머리 앤> 양장본과 함께 그 잡지를 갖고 있는 것을 봤다. ‘지대호’라는 이름을 가진, 경기도 마석에서 기차를 타고 통학하는 친구였다. 시력이 나빠 알이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는 친구였다. 성격이 참 좋아 싫어하는 친구가 없을 정도였다. 문제는, 내가 그 책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학교로 가져와 자랑한 게 화근이었다.

a 영화 속 두 주인공. 왼쪽 얄개 두수(이승현 분), 오른쪽 모범생 호철(김정훈 분)

영화 속 두 주인공. 왼쪽 얄개 두수(이승현 분), 오른쪽 모범생 호철(김정훈 분) ⓒ (주)연방영화사

“그 책, 나한테 팔아.”
“싫어! 얼마나 귀한 책인데.”
“그럼, 하루만 빌려주라.”
“뭐하게? 그냥, 여기서 봐.”
“집에 가져가서 사진 좀 찍어두려고 그런다.”
“안 돼!”



빌려 달라, 못 빌려준다, 실랑이까지는 괜찮았다. 약이 잔뜩 오른 내가 녀석의 등짝을 냅다 후려친 게 잘못이었다. 그렇게 힘없이 넘어질 줄 몰랐다. 뒤바람에 말라비틀어진 볏단도 아니고 녀석이 풀썩, 앞으로 고꾸라지는 게 아닌가. 문제는 안경이었다. 힘없이 쓰러지는 녀석을 받아 안으려다 그만, 떨어진 안경을 밟고 만 것이었다. 자끈 소리와 함께, 부러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으스러져 버렸다.

얄개와 잡지 학원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이유


교무실로 끌려간 나는 무참하게 맞았다. 누구한테 맞았는지는 묻지 마시라. 어쨌거나 엉덩이 살이 문드러질 정도였으니까. 교무실 앞 복도에 무릎 꿇고 손들고, 오후 내내 수업도 못 받았다. 반성문 100장 쓰기까지…. 아,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일반 안경도 아니고 무슨 수제 안경인지 특수 안경인지, 물어줘야 할 값이 상당했던 것 같다. 그날 저녁, 거의 죽을상이 되어 아버지께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껄껄, 웃으셨다.

a 2002년에 재출간 된 '얄개전' 표지

2002년에 재출간 된 '얄개전' 표지 ⓒ 아이필드

“거 암만해도 우리 아들, 싹수가 노랗슴둥. 기왕 저지른 거이 탓하믄 뭐하겠음? 거냥 주지느 못하니끼니 벌어서 날래 갚으라우.”


그 안경 값 갚느라고 일요일마다 아버지 사업장(주택건축현장)에 가서 질통 지느라 어깨 가죽이 다 벗겨졌다. 그런 사연이 있는 잡지 학원이요, 얄개전이요, 영화였으니 추억이 남다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두수(이승현 분)’가 모범생 ‘호철(김정훈 분)’의 안경에 빨간색 칠을 하고 “불이야!”를 외쳐 결국 호철의 안경을 깨먹는 장면에서 친구들이, “야, 동환이 네 얘기 아냐?” 하는 통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월은 참 속절없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친구 지대호는 어디서 잘 살고 있는지. 잉걸아빠처럼 평범한 가장이 되어 있겠지. 아 참! 그러고 보니 내가 동대문여자중학교 앞 헌책방을 뻔질나게 드나들던 그 시절, 잉걸엄마가 그 학교 학생이었단다. 인연도 참 묘하지.

“우리가 그때 지나치다가 봤을 수도 있었겠네.”
“그러게요. 그때 우리가 만났다면 지금 같은 인연일 수 있었을까요?”
“글쎄…, 그때 우리가 만났다면 혹시 사귀지 않았을까? 아마 우리 아들이 지금쯤 장가간다고 할지도 모르겠네.”
“어머, 이이는! 끔찍한 소리를.”



영화, <고교얄개>는?

▶ 제작 : 연방영화주식회사(1977년 1월 29일 개봉)
▷ 원작 : 조흔파 ▷ 감독 : 석래명 ▷ 각본 : 윤삼육 ▷ 촬영 : 정일성 ▷ 음악 : 최창권

♥ 출연 ♥
이승현 : 얄개 정두수 역
김정훈 : 가난한 고학생 호철 역
하명중 : 국어선생 백상도 역
정윤희 : 백상도와 결혼하는 두수 누나 두주 역
강주희 : 두수가 좋아하는 여학생 인숙 역

♥ 줄거리 ♥
고등학교 2학년생 나두수(이승현 분)는 소문난 얄개다. 두수와 친구 용호는 선생에게 자신들을 고자질 한 같은 반 모범생 호철(김정훈 분)에게 복수를 계획한다. 그들은 어느 날 점심시간,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던 호철의 안경에 빨간색 칠을 하고 “불이야!”를 외친다. 한바탕 불소동이 일어나고 안경이 깨진 호철은 두수에게 변상을 요구하지만 거절한다.

그러나 다음날 호철이 결석을 하자 두수는 호철의 집을 찾아간다. 산동네 단칸방에서 공장에 다니는 누나와 단둘이 살며, 매일 아침 우유배달을 하던 호철이 안경 없이 배달하다가 축대에서 굴러 다리가 부러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두수는 눈물을 흘리며 반성한다. 그날부터 호철을 대신해 우유배달을 한다. 호철을 위해 공책필기를 대신하던 두수의 수업태도는 눈에 띄게 좋아진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우유배달을 하던 두수는, 수금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이하 생략.

덧붙이는 글 | DVD로 나와 있는지는 확인 못했습니다. 누가 아시면 일러주세요. ^^

덧붙이는 글 DVD로 나와 있는지는 확인 못했습니다. 누가 아시면 일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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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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