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형광등 따로 모으니 너무 좋아

등록 2005.09.21 11:14수정 2005.09.2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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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나 또한 폐형광등을 버릴 때면 몹시 찜찜했다. 잘못 건드리면 금세라도 폭삭 깨질 것 같은데 저것을 어떻게 안 깨진 채로 제 갈 곳에 보낼 수 없을까. 때문에 폐형광등을 버릴 때면 반드시 형광등 집에다 넣어서 재활용함 옆에다 얌전히 버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경비아저씨들을 한층 더 수고스럽게 하는 일이었다. 내가 그렇게 해 놓으면 경비아저씨들은 형광등 곽은 곽대로 폐지 모으는 곳에다 갔다 버려야 되고, 형광등은 '빈병류'에다가 부숴 넣어야 했다.

'형광등이 깨어지면 수은가루가 나온다던데….'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들어 알고 있는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폐형광등을 따로 모으는 함이 없으므로 모두들 그나마 가장 근접한 '빈병류'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형광등을 버릴 때 깨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형광등이 부피가 있으므로 그대로 넣으면 공간을 너무 차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대로 넣어두면 경비아저씨들이 2차로 깨트린다.

가끔씩 매스컴에서 폐형광등을 따로 모아야 한다는 환경단체의 호소를 접하긴 했지만 그런 날이 언제 올지 그저 까마득하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이 음식쓰레기를 버리듯이 매일매일 버려야 하는 것이라면 자꾸 신경이 쓰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집의 경우 넉넉잡아 1년에 2개 정도 갈면 되었다.

때문에 두 번만 찜찜하고 나면 그 나머지 날들은 폐형광등의 존재를 잊고 살 수 있었기에 그런 간절한 호소에 귀를 닫았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긴 막대형광등이 수십 개씩 다량으로 버려져 있는, 광고용 간판을 만드는 집 옆을 지날 때면 '아이구, 저것들을 다 어찌 하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튼 폐형광등만 따로 모으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하면서도 그런 날이 와줄까 의심했었는데 두어 달 전인가부터 우리 아파트마당에 폐형광등 수거함이 터억! 놓인 게 아닌가. 얼마나 반갑던지.

폐형광등 수거함
폐형광등 수거함정명희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형광등만 따로 모으게 되면 아이들이 장난치다 쉽게 깨어버리지 않을까, 또는 실속 있게 한 통 꽉 채우려고 경비아저씨들이 잘게 부수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걱정은 나의 기우였다. 사람들은 다들 형광등을 살포시 갖다 놓았다. 나만이 아니라 모두들 폐형광등을 버릴 때 가슴 한켠이 찜찜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폐형광등 통은 어찌나 빨리 차버리는지. 이렇게 쉽게 다량으로 버려지는 것을 따로 모으지 않고 그동안 유리나 병과 한꺼번에 취급했다니 아찔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고 시작을 했으니 다행스럽다. 아울러 형광등은 플라스틱처럼 안 깨지는 걸로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열에 아주 강한 신종 플라스틱은 발명해낼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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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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