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순씨! '아저씨'가 뭐냐고요

등록 2005.09.22 14:28수정 2005.09.2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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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KBS 저녁 일일드라마 '어여쁜 당신'을 자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주인공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 때문이었다.


'기준아!'
'인영아!'

부부끼리 서로를 그렇게 부르는 드라마를 꼭 보고 싶었음에도 막상 인영이 '기준아'라고 스스럼없이 부르니 '뜨끔'하다 못해 내심 불안했다. 이 프로는 어른들이 많이 보는 프로인데 과연 용납해 주실까나. 그도 그럴 것이 현실은 아직 거기 못 미치기 때문이었다.

동갑내기로 결혼한 내 한 친구는 결혼과 동시에 종전에 '아무개야'라고 부르던 것을 '아무개씨'로 바꾸었다. 물론 친구의 남편은 변함없이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또 한 친구는 한 살 적은 사람과 결혼했는데도 결혼하고 나서는 앞의 친구처럼 '씨'자를 붙였고 그 남편은 예전보다 더 느긋하게 '아무개야'라고 불렀다.

한 살 적은 이와 결혼한 친구는 '씨'라고 부르게 된 것에 대해 나에게 보충설명을 해 주었다.

"사실 결혼 전 내내 '야, 자' 하다가 결혼하고 나서 저는 '야' 하는데 나는 '씨'하려니 억울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시어른들 눈치도 있고 해서 그냥 내가 한수 접기로 했다. 본인 또한 그래주길 원해서 어려운 일도 아니고 해서 그냥 그러마 했다."


그러면서 '너도 나중에 결혼하면 호칭 조심하라'고 하였다. 물론 친구의 충고를 들은 나는 뭔가 억울하지만 참고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일로 시끄러운 것보다 조용한 것이 서로 편하다는 생각에.

그러나 결혼을 하고 보니 양보 못할 것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의 평등함이었다. 이 호칭만 동등해도 여남 평등의 절반은 확보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MBC 일일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
MBC 일일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MBC
아무튼, 호칭에 예민한 나. '인영아' '기준아' 부르는 그 소리가 너무도 정겨워서 '어여쁜 당신'을 쭈욱 편애하다가 옆의 채널 '금순이'가 애 데리고 시집을 가네 마네가 세간에 화제이기에 한번 봤다.

시부모님은 손자를 줄 수 없다, 금순이는 애는 엄마가 키워야 된다. 두 쪽 다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전개되는 가운데 실의와 낙담에 빠진 금순에게 신랑 될 '재희'가 전화를 하자 금순이 울먹이면서 말하기를.

"아저씨…."

못 들어주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흔한 '오빠'도 아니고 '아저씨'가 뭐냐고요? 잘은 몰라도 극중 '재희'는 삼십대 초반인 걸로 안다. 그리고 금순과의 나이 차이도 젊은이들이 오빠라고 부르는 그 수준밖에 차이 안 나는 걸로 아는데….

나는 극중의 재희 엄마도 아니고 뭐도 아니지만 금순이 '아저씨, 아저씨' 할 때마다 뭔가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들은 것처럼 가슴이 갑갑하였다.

한편, 지난 추석날 '웨딩'이라는 미니시리즈의 재방송을 보다가 또 한번 호칭 때문에 놀랐다.

극중 세나(장나라 분)는 승우(류시원 분)에게 '세나씨'라고 부르지 말고 '세나야'라고 불러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닌가. '세나야'라고 부르면 그들 사이에 있는 거리감이 좁혀지고 더 가까워질 것 같다면서. 만약 승우가 '세나야'라고 한다면 금세라도 '오빠'라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다행이' 승우는 나중에, 나중에 그렇게 하겠다며 미루었는데 앞으로 '세나야'라고 할까봐 걱정(?)이다. 왜냐하면 '어여쁜 당신'에서 부부(지금은 극 중에서 헤어졌지만)가 서로를 호칭함에 있어 '기준아, 인영아'하는 것이 듣기 좋았듯이 '웨딩'에서 '세나씨, 승우씨' 하는 것 또한 서로에 대한 배려가 느껴져 좋았다.

연인 사이의 호칭이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자연스레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아저씨'는 너무했다. 그리고 내내 평등한 호칭으로 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우리 사귀자, 혹은 결혼 등) 남성이 상대 여성에게 말을 놓음과 동시에 오빠로 둔갑하고 마는 것은 암만해도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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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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