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42

가야 하는 길, 와야 하는 곳

등록 2005.09.22 16:57수정 2005.09.2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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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때가 잔뜩 낀 호롱에 매달려 타오르는 불이 이글거리며 두청의 눈을 묘하게 비추었다.

“흔히들 사람들은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어 이괄장군이 난을 일으킨 것이라고 하지. 허나 어찌 그 뜻을 알겠나? 이괄장군은 이 나라가 청국의 더러운 말발굽에 짓밟히는 꼴을 보지 않기 위해 미리 손을 쓰려 했을 뿐이네!”


장판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두청의 말이 묘하게도 앞뒤가 맞지 않는 다는 점을 느끼고선 큰 소리로 반박했다.

“그렇다면 왜 날 방해한 것입네까? 내가 그런 자들과 한 통속으로 보이기라도 한 겁네까?”

“장초관은 아무것도 모르고 행동하니 어쩔 수가 있나! 어차피 성을 나와 항복할 궁리를 하고 있는데 청의 군대와 맞부닥쳐 이겨버리지를 않나, 병사들에게 신망을 얻어 사기를 올리지를 않나...... 이번에는 몽고병들과 맞붙어 싸워 엄청난 사상자를 내었으니 그 일을 빌미로 청의 군대가 다시 조선 땅으로 들어오면 어찌하려고 그러나?”

“허허참!”

장판수의 장탄식과 같은 헛웃음 후 둘 사이에 다시 한 번 침묵이 이어졌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또 다시 두청이었다.


“우리는 장초관이 필요하네.”

장판수는 가타부타 말조차 않고 고개를 비스듬히 하여 호롱불만을 응시했다.


“썩어빠진 조정을 뒤엎을 기회는 지금뿐이네. 장초관! 힘을 빌려주게나!”

장판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눈을 두청에게 맞추었다.

“내래 왜 여기까지 찾아 왔는지 아십네까?”

이번에는 두청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나는 당신들이 대체 뭐하는 인간들일까 호기심이 일어난 것이고...... 또 하나는 예전에 나와 맞붙어 겨룬 놈이 내 친구인 윤계남이 이야기를 하더이다. 그 자가 어찌 윤계남이를 아는 것이오?”

“첫번째 호기심은 풀어주었으니 윤계남이에 대한 얘기를 해줌세. 윤계남이도 실은 여기서 우리와 함께 수련을 한 일이 있네.”

장판수는 고개를 모로 돌리며 얕은 한숨을 쉬었다.

“윤계남이도 우리와 뜻을 같이한 자네.”

장판수는 속으로 윤계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장판수가 기억하기에 윤계남은 한순간이라도 그런 내색을 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전투에서 아낌없이 몸을 던져 결국 목숨을 잃은 이였다.

“......그렇지 않을 겁네다.”

“믿건 말건 사실이 그렇다네. 그가 무엇 때문에 목숨을 버린 것인지 아는가? 장초관이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의 썩어빠진 조정을 위해 목숨을 버린 것은 아니네! 내 비록 방해를 하긴 했지만 장초관도 몽고병의 횡포를 보다 못해 무리한 싸움을 한 것이지 않나? 그와 마찬가질세! 이 조정이야 말로 곁으로는 명을 숭배하는 척 하며 청과 손잡고 백성을 도탄에 빠트린 자들일세!”

마치 납득을 한 듯, 장판수의 고개가 조금씩 수그러지자 두청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네가 여기까지 온 것은 다 생각이 있어서일 것이다. 이미 절반은 마음이 기울었고 더 이상 기댈 곳도 없으니 그만 고집을 꺾어라.’

장판수는 고개를 들지 않고 방구들이 들썩 울리는 그렁그렁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내래 말입네다. 당신들과 함께 할 수 없습네다. 와 기런줄 압네까?”

그 말에 두청의 눈이 커다랗게 떠지며 장판수를 노려보았다. 장판수는 고개를 치켜들어 두청을 마주 노려보았다.

“첫째는 내래 여기 온 목적이 당신들과 함께 일하고자 한 게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간의 일을 따져 묻기 위해 왔습네다! 둘째는 지금까지 들은 얘기들이 모조리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것!”

“그건 그렇지 않네. 우리와 함께 행동하다 보면 천천히 진실을 알 것이야. 모든 것은......”

장판수는 두청의 말을 잘라먹으며 소리쳤다.

“더욱이 세 번째 이유 하나만으로도 당신들과 함께 할 수 없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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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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