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를 들이닥친 허리케인(영화 속 장면)
그러나 영화 <투모로우>는 재앙의 근원으로 외부의 적이 아닌 바로 인간, 특히 지구온난화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구 자원을 죄다 소비하며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오만한 미국을 찍었다.
이제 영화에서 보여준 '내일'은 바로 오늘이 되었다. 미국은 현재 연이은 허리케인 급습에 떨고 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 시를 쑥대밭으로 만든 지 채 한달도 못되어 두 번째 허리케인 리타가 다가오자 루지애나 주와 텍사스 주 주민 170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꼬리에 꼬리를 문 자동차 행렬은 고통스런 내전을 피해 남부여대(男負女戴) 길 떠나는 아프리카 난민을 연상케 한다.
온실가스 배출 1위 국가인 미국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하여 세계 각국의 비난을 사고 있는 이 때에 참으로 의미심장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부시는 반환경 정책으로 이미 악명 높다. 석유재벌을 강력한 후원자로 두고 있는 그가 석유를 덜 쓰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군산복합체의 경제 체제인 미국이 다른 나라의 크고 작은 분쟁과 전쟁의 종식을 바라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
초대형 허리케인이 텍사스만 주변을 배회하고 있으니 미국 정유산업의 심장부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탄소배출량 감량이 자국의 경제성장에 제한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교토협약을 무시했던 부시 정부는 허리케인 덕에 억지춘향 격으로 정유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다.
미국이 허리케인에 에너지 생산의 발목을 잡힌 것은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일은 뉴올리언즈 사태에서 볼 수 있듯, 가난한 흑인들이 재난의 최대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카트리나가 'KKK단'이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유독 흑인들만 죽음으로 몰아간 재난이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몰아치는 폭풍과 폭설로 북반구 주민 대부분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자 미국인들은 거리에서 비참하게 동사한 시체를 넘어 앞 다투어 멕시코 국경을 넘고자 애쓴다. 멕시코 정부의 아량으로 난민캠프를 차리고 그 속에 겨우 천막 정부를 차린 미 행정부가 한껏 오만했던 고개를 힘없이 떨어뜨리는 모습,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보고 싶던 미국의 표정이 아닐까?
거리낌 없는 발언으로 유명한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전 총리는 부시가 재집권하면 재앙이 올 거라는 예언을 한 적이 있다. 일년이 못되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재앙이 미국 본토로 몰려왔다. 그토록 방어하던 이슬람권의 테러도 아니다.
세계 최고의 자원소비국가 미국. 중동사막에서, 중앙아시아 산악에서, 남아메리카 밀림에서 석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개입하여 분쟁을 배후조종하는 나라. 초절정 자국중심주의, 배타적 기독교의 세계 재패를 꿈꾸는 나라 미국의 힘이 자연재해에 고통스러워하는 자국민들에게는 왜 닿지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