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45

가야 하는 길, 와야 하는 곳

등록 2005.09.27 17:01수정 2005.09.2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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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일을 전송한 황일호는 그 길로 차충량, 차예량 형제를 찾아가 뒷일을 의논했다.

“아무래도 청국놈들이 우리가 계속 물건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모르리라 장담은 할 수 없네. 마부대가 이곳 의주에 말을 놓아먹인다는 핑계로 자주 드나들고 정명수 그 놈도 수시로 이곳을 드나들며 임장군을 경계하니 말이네.”


“그렇다면 어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황일호는 눈가에 주름을 잔뜩 지어 보이더니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미 생각해놓은 방도를 얘기했다.

“새벽에 인삼과 은을 전부 배에 싣지 않고 약간 떼어내어 이리로 가져다 두었네.”

차충량과 차예량은 그 의도를 금세 알 수 없어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둘 중 하나가 심양으로 가 이를 팔고 오게나. 저들의 의심을 덜려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네.”


차예량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차충량에게 말했다.

“그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형님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차충량이 선뜻 대답을 못하는 사이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으리! 여기 계십네까!”

황일호가 들어보니 자신의 집에 있는 하인의 목소리라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아이고 나으리! 여기 계셨습네까! 지금 집에 청나라 관리가 찾아와 당장 나으리를 불러내라며 소란을 피우고 있습네다!”

“뭐라?”

황일호는 한순간에 얼굴이 핼쑥해진 채 바삐 밖으로 뛰어 나왔다. 차충량, 예량 형제도 뒤를 따르려 했지만 황일호는 이를 말렸다.

“별 일 아닐 테니 괜히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말게나.”

황일호가 집으로 달려가니 집안은 난리도 아니었다 하인은 물론 황일호의 집안 식구들과 최효일의 일가붙이들은 물론 몇몇 상인들까지 붙들려와 마당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으며 그 앞에 청의 관리가 병사들을 거느리고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이 무슨 일이오?”

황일호는 청의 관리에게 다가가 따지려다가 얼굴을 알아보고서는 순간 움찔거렸다. 입가에 야비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관리는 바로 정명수였다.

“이거 전 의주부윤 나으리께서 새벽이슬을 맞으며 어딜 다녀오신 게요?”

정명수는 결코 만만하게 볼 자가 아니었다. 황일호는 정명수가 어느 정도 사정을 알고 무례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늙은 몸이 새벽에 잠이 안와 이리저리 돌아다닌 것이외다.”

정명수는 웃음을 싹 거두더니 제일 뒤에 서 있는 병사 둘을 불렀다. 이들은 달려오더니 황일호의 발 앞에 무엇인가를 ‘툭’ 내 던졌는데 사람의 목이었다. 황일호는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요새 의주에 낯모르는 이들이 드나든다하여 사람을 붙여 감시를 하고 있었지. 한 놈이 나루터에서 몰래 물건을 싣고 떠나는 최효일이라는 자와 영감을 보고서는 알렸는데 멍청한 군관 놈이 은전 두 닢에 그냥 보내주었다는군. 하여간 되놈들이란 욕심이 많아서 쓸모가 없어! 몰래 이렇게 조선사람 두 명을 포섭해 놓은 게 득이 되었지 뭔가! 그래서 보다시피 군율에 따라 참형에 처한 것이외다.”

황일호는 참담한 심정으로 자신의 발밑에 나도는 군관의 목을 바라보았다.

“최효일이라는 자는 무슨 물건을 싣고 어디로 간 것이오? 분명히 명과 통교하려는 것 아니외까!”

황일호는 정명수를 똑바로 쳐다보며 씹어대듯 말했다.

“난 모르네.”
“여봐라!”

정명수가 카랑카랑한 소리로 외쳤다.

“최효일의 가족들과 상인들을 모조리 죽여 버려라!”

청의 병사들이 최효일의 가족들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마당 한가운데로 끌어왔다. 정명수의 부하인 두 조선 사람이 칼을 들고 와 울부짖는 최효일의 일가붙이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비명소리마저 얼어붙어 흐느낌으로 변했고 삽시간에 10명의 시신이 땅바닥에 붉은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다음은 네 놈의 가족들을 죽일테다! 어서 말하거라!”

황일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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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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