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로 살아가는 것, 행복한 배역은 아니지요

<장밋빛 인생>, 아줌마의 처지를 간접적으로 표현

등록 2005.09.27 17:21수정 2005.09.2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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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장밋빛 인생>에서 아줌마의 현위치를 간접적으로 보여준 맹순.

<장밋빛 인생>에서 아줌마의 현위치를 간접적으로 보여준 맹순. ⓒ KBS

본인이 아줌마여서 그런가, 다른 드라마는 재미있게 보고나도 그 드라마에 대해 특별히 더 할 말이 없는데, <장밋빛 인생>을 보고나면 이상할 정도로 뭔가 꼭 해야 할 것 같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언젠가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에서 어떤 기사를 읽다가 참으로 공감을 느꼈다. 나도 참 이런 순간이 있었지, 나도 이렇게 말한 적 있었는데, 어쩜 나하고 이렇게 똑같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 기사에 몰입이 되고 재미를 느꼈었다.

<장밋빛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줌마 입장에서 봤을 때 내 처지를 보여주는 면이 참으로 많다. 밤에 잘 때 다른 드라마서 보면 린넨 천의 하늘거리는 잠옷을 입고 자는데, 내 경우에는 피곤에 지쳐서 편한 면 티셔츠나 고무줄 반바지를 입고 자는 편이다. 그리고 남편을 대하는 태도 또한 오십보백보 할 정도로 맹순이하고 비슷하다. 이런 유사성 덕분에 쉽게 몰입이 되는 것 같다.

아줌마라면 아마도 맹순에게 공감을 많이 느낄 것이다. 우리시대 아줌마의 모습을 리얼하게 제대로 보여줬다는 생각이 든다.

맹순의 상황을 보면, 남편은 바람피웠으면서 이혼을 요구하고 있는데 엎친데 겹친 격으로 병까지 들었다.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악착같이 산 결과치고는, 정말 하늘도 무심하리만큼 억울한 상황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살았는가 모르겠다. 열심히 산 보람이 이거란 말인가, 하고 한숨이 절로 나올 상황이다.

맹순이는 병원에서 위암말기 판정을 받았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이다. 그리고 결코 동지가 될 수 없는 시어머니는 아들 편을 들며 이혼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사면초가에 빠진 맹순이, 앞을 봐도 벽이고, 뒤를 봐도 양 옆을 봐도 벽만 보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에 갇힌 형국이다. ‘절망’이라는 단어 이외에는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죽는 것은 두렵지가 않다. 정말 두려운 것은 아직 어린 애를 남겨두고 죽는 것이다. 큰 애는 정상도 아닌데 그런 애를 두고 죽을 수밖에 없는 맹순의 심정을 그 누가 알까?

현재 맹순이의 처지는 아줌마로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이런 상황서 과연 어떤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게 정말로 궁금하다. 황무지서 풀 한 포기는 올라오고, 빙하기를 지나면서도 사람은 살아남았는데, 맹순이가 처한 이 절망의 순간에도 과연 희망이 있을까? 작가가 어떤 희망을 찾아낼까, 정말 기대된다.


맹순이를 이런 상황으로 묘사한 것은, 우리나라 아줌마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본다. ‘사씨남정기’에서 보면 사씨는 첩의 계략 때문에 쫓겨난다. 조선시대 모든 여자들이 첩에게 밀려 쫓겨난 건 아니지만 이 소설을 통해 조선 여인들의 사회적 위치를 조금은 가늠해볼 수가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서 맹순의 상황이 극단적인 경우긴 하지만 아줌마들의 상황을 어느 정도는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나라서 아줌마로 살아가면서 ‘행복한 삶’을 가꾸기는 좀 힘들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줌마의 역할은 결코 좋은 배역이 아니다. 10여 년 간 아줌마로서 살아오면서 주변에서 아가씨가 새댁으로 변신했다가 아줌마로 자리 잡아 가는 과정을 지켜볼 기회가 많았다. 그러면서 느낀 결론은 아줌마는 아가씨보다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생기에 넘치고 밝고 가볍던 느낌이 점점 좀 화가 난 것도 같고, 아니면 무표정해지거나 지쳐 보이고, 어떤 경우엔 사람이 좀 비꼬인 것도 같아진다. 단지 결혼을 했을 뿐인데, 2~3년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그게 늘 궁금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여자는 특히 급격한 변화를 경험한다. 유목민에서 정착인이 되는 것이다. 정착하게 돼서 안정감이 생기고, 평화롭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자유가 없고, 살아 있는 느낌이 부족한 삶이 돼버리기 쉽다.

아줌마에게서 부족한 두 가지는 바로 이 자유와 살아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아줌마들은 <섹스 앤 시티>에 나오는 여성들을 부러워한다. 자기 일을 갖고 있으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카페서 분위기를 즐기면서 수다를 떠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일주일 중 하루는 남편이 집에서 애를 보고, 여자들은 무조건 친구들과 어울려 파티를 열고 실컷 놀다가 들어간다고 한다.

우리나라 아줌마들에게는 이런 삶의 여유와 활력소가 없다. 의무만 있다. 엄마의 역할, 아내의 역할 그리고 며느리의 역할, 오직 역할에 따른 의무만 있는 게 아줌마들의 처지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주부의 행복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부나 엄마이기 이전에 행복해야할 권리가 있는 한 인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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