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에 나타난 중국 연인은 강하다

용맹한 아들과 지혜로운 조언자인 어머니는 완벽한 커플

등록 2005.09.28 16:29수정 2005.09.2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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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불멸의 이순신> 후속으로 내놓은 <칭키즈칸>은 다소 의무적인 느낌을 갖고 보게 된 프로였다. 지금까지 역사극은 어떤 극이던 다 봐왔다. <여인천하>를 보면서 아이들이 "네 이년"이라는 욕을 배워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해서 민망해진 경우도 있었지만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기 위한 동기 유발 차원에서 역사극이란 역사극은 모조리 아이들과 함께 봤다.

<칭키즈칸>을 보면서 역사적 인물인 칭키즈칸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 칭기즈칸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찾아보고, 그러면서 당시의 세계사를 배우고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나름의 욕심을 갖고 의무감으로 본 드라마였다. 사뭇 의도적이었지 솔직히 별로 보고 싶지는 않았었다.

중국이 만든 드라마 수준이 그렇고 그렇지 않을까, 이런 다소 거만한 생각이 있었다. 가끔 채널을 돌리다 중국 드라마를 잠깐씩 보게 되는데, 내 코드와는 전혀 맞지가 않았다. 단순하고, 거기다 욕망을 원색적으로 나타낸다든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 중국인 특유의 과장성, 이런 느낌을 별로 좋아하지를 않기에 중국 거라니까 왠지 구미에 당기지가 않았었다.

요즘 편견이 얼마나 많은 것을 잃게 만들었는가를 느끼고 있다. 현재 이 드라마는 우리 집 집계 시청률 1위다. 지금까지 6회를 방송했는데, 단 4회 만에 <서동요>도 앞질렀고, <프란체스카>도 앞질러 버렸다. 대단한 흡입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의무감에서 이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재미로 보고 있으며 밖에 나갔다가도 <징키스칸> 할 시간이 되면 부랴부랴 돌아온다. 애들이 먼저 "칭키즈칸 할 시간 다 돼 가요, 빨리 가요?"하면 "그래, 빨리 가자"하면서 마음이 급해지고, 또 즐거운 걸 볼 기대에 차올라서 돌아오게 된다.

<칭기즈칸>에는 말들이 초원을 달려가는 장면이 많는데, 거기서 자유와 해방감을 얻는다
<칭기즈칸>에는 말들이 초원을 달려가는 장면이 많는데, 거기서 자유와 해방감을 얻는다kbs
<칭기즈칸>에는 두 가지 재미가 있다. 하나는 좁은 공간에서 넓은 대평원으로 나가 마음껏 뛰어다니며 제대로 숨을 내쉬면서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는 재미가 그 하나고, 칭기즈칸이라는 영웅의 삶을 지켜 보면서 그 초원만큼이나 대담하고 거칠 것 없는 사나이다운 사나이를 감상하는 재미가 또 다른 하나다.

우리 나라 드라마들이 주로 촬영의 제약상 실내를 다루거나 대체로 좁은 공간 안에서 인간들의 갈등 양상을 보여 줬다. 하나 <칭기즈칸>을 보면 끝없이 펼쳐진 대초원이 보이고 수많은 말발굽소리를 듣게 된다. 말들이 거칠 것 없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후련해져 온다.


분명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프리카 대초원을 마음껏 달려가고 있는 누 떼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얻었다. 원초적인 느낌이 있다. 말들이 줄을 맞춰 어디론가 힘껏 달리고 있는 모습에 완전히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수백 마리의 말들이 달리는 모습과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면 현실을 떠나 나도 그 무리 중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현실을 떠났다 돌아오는 것만한 카타르시스가 어디 있을까?

서부영화가 스크린을 평정한 적이 있었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얻는 재미는 끝없이 펼쳐진 평야와 어디론가 달려가는 말발굽 소리를 들으면서 얻는 자유 때문이다. 그리고 무법지대라는 공간이 안겨주는 해방감.


<칭기즈칸>이 보여주는 재미 또한 이와 다르지가 않다. 한없이 넓은 대초원을 뛰어가는 말들을 보면서 자유를 만끽하지만 언제 기습할지 모르는 칼이 숨어 있고,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화살의 위협이 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살벌함 긴장감이 있다.

테무진의 아버지는 어느 날 독주를 마시고 죽고, 테무진의 이복동생은 테무진이 쏜 화살에 맞아 죽는다. 누구든 갑자기 죽을 수가 있다. 물론 문명국에 살더라도 교통 사고가 일어나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 병에 들어 죽을 수도 있지만, 초원이 안고 있는 위협은 보다 원시적 공포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하고, 적과 동지를 잘 구별해야 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웃긴다 할 정도로 의형제를 맺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열 살짜리 꼬마들이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의형제를 맺는 모습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하찮은 일로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인 것이다.

나중에 테무진이 의형제의 도움을 받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대초원의 칸이 되는 초석을 다지는 걸 보더라도 동지를 알아보는 일이야말로 정말로 중요한 일인 것이고, 적이 될 소지가 있는 사람의 싹수를 일찍 잘라 버리는 것 또한 생명을 연장 시키는 시급한 일인 것이다.

칭기즈칸의 어머니. 매우 의지적이면서 현명하다. 강한 중국여인을 느끼게 한다
칭기즈칸의 어머니. 매우 의지적이면서 현명하다. 강한 중국여인을 느끼게 한다연합뉴스
테무진은 살벌한 긴장감과 위협 속에서 살아남는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재미는 어린 테무진이 권력을 차지해가는 모습을 합리적으로 그려 보이고 있다. 우선 그는 대담하다. 보통 사람보다 몇 배는 담력이 있다.

최초의 성과인 말을 빼앗아 오는 장면에서도 칼을 찬 어른이 여섯이나 있는 가운데서 어린애가 몰래 잠입해 말을 갖고 도망간다. 그리고 가족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수백 명의 군사들의 사냥감을 자처한다. 테무진은 이처럼 대단한 담력과 날아가는 새도 잡는 활쏘기 실력, 이런 걸로 초원의 지배자가 되었다.

대부분의 영웅이 그렇지만 테무진은 운이 좋은 편이다. 우선 훌륭한 어머니가 언제나 뒤에서 적절한 조언을 해준다. 중국 여인들이 거세고 강하다고 하는데, 이 드라마를 봐도 알 수 있겠다. 테무진 모자뿐만 아니라 다른 칸의 경우를 봐도 대부분 용맹한 칸 아들 뒤에는 지혜로운 어머니가 있다. 아들은 용맹하고 어머니는 신중함과 지혜를 제공하니까 완벽한 한 쌍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테무진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어머니의 조언을 언제나 잘 따랐다.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영향력이 우리 나라보다 훨씬 큰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머니들은 모두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고, 카리스마가 넘쳐났다. <칭기즈칸>이 남성적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힘을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강하게 보여줬다. 드라마가 그 나라의 문화적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봤을 때 중국여인들의 성향과 사회적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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