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에는 말들이 초원을 달려가는 장면이 많는데, 거기서 자유와 해방감을 얻는다kbs
<칭기즈칸>에는 두 가지 재미가 있다. 하나는 좁은 공간에서 넓은 대평원으로 나가 마음껏 뛰어다니며 제대로 숨을 내쉬면서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는 재미가 그 하나고, 칭기즈칸이라는 영웅의 삶을 지켜 보면서 그 초원만큼이나 대담하고 거칠 것 없는 사나이다운 사나이를 감상하는 재미가 또 다른 하나다.
우리 나라 드라마들이 주로 촬영의 제약상 실내를 다루거나 대체로 좁은 공간 안에서 인간들의 갈등 양상을 보여 줬다. 하나 <칭기즈칸>을 보면 끝없이 펼쳐진 대초원이 보이고 수많은 말발굽소리를 듣게 된다. 말들이 거칠 것 없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후련해져 온다.
분명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프리카 대초원을 마음껏 달려가고 있는 누 떼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얻었다. 원초적인 느낌이 있다. 말들이 줄을 맞춰 어디론가 힘껏 달리고 있는 모습에 완전히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수백 마리의 말들이 달리는 모습과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면 현실을 떠나 나도 그 무리 중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현실을 떠났다 돌아오는 것만한 카타르시스가 어디 있을까?
서부영화가 스크린을 평정한 적이 있었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얻는 재미는 끝없이 펼쳐진 평야와 어디론가 달려가는 말발굽 소리를 들으면서 얻는 자유 때문이다. 그리고 무법지대라는 공간이 안겨주는 해방감.
<칭기즈칸>이 보여주는 재미 또한 이와 다르지가 않다. 한없이 넓은 대초원을 뛰어가는 말들을 보면서 자유를 만끽하지만 언제 기습할지 모르는 칼이 숨어 있고,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화살의 위협이 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살벌함 긴장감이 있다.
테무진의 아버지는 어느 날 독주를 마시고 죽고, 테무진의 이복동생은 테무진이 쏜 화살에 맞아 죽는다. 누구든 갑자기 죽을 수가 있다. 물론 문명국에 살더라도 교통 사고가 일어나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 병에 들어 죽을 수도 있지만, 초원이 안고 있는 위협은 보다 원시적 공포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하고, 적과 동지를 잘 구별해야 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웃긴다 할 정도로 의형제를 맺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열 살짜리 꼬마들이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의형제를 맺는 모습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하찮은 일로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인 것이다.
나중에 테무진이 의형제의 도움을 받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대초원의 칸이 되는 초석을 다지는 걸 보더라도 동지를 알아보는 일이야말로 정말로 중요한 일인 것이고, 적이 될 소지가 있는 사람의 싹수를 일찍 잘라 버리는 것 또한 생명을 연장 시키는 시급한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