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너머 그 곳도 내 손 안에 있소이다

첨단 과학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등록 2005.10.05 10:09수정 2005.10.0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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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한나영
참 좋은 세상이다. 그 먼 나라를 안방에서 한 눈에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직장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이른바 '자유부인(?)'이 되었다. 그런데 우스갯소리지만 나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내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눈들이 오프라인에서 뿐 아니라 온라인에도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은 24시간 동안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컴퓨터를 켜기만 하면 그들은 불나방처럼 곧장 내게 달려들고, 온라인상에서 발견하지 못하면 서치라이트를 밝히는 게슈타포처럼 언제 어디서나 예고없이 터지는 강력 휴대폰으로 금세 나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사는 한국과 가족들이 있는 해리슨버그는 13시간의 시차가 있다. 그 곳에 가려면 워싱턴까지 14시간을 논스톱 비행하고 다시 2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다. 하지만 그 먼 곳도 이제는 마우스 한 번만 누르면 상봉이 가능한 '옆집'이 되고 말았다. 첨단 과학의 개가라고나 할까.

화상으로 본 생일 축하 파티
화상으로 본 생일 축하 파티한나영
그 덕에 나는 매일 온라인에서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이메일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소식을 전하기도 하지만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 채팅을 하거나 화상 대화도 나눈다. 그러다 보니 거리상으로는 먼 곳이지만 내가 체감하는 거리는 굉장히 가깝다. 물론 바로 곁에 있는 건 아니어서 정서적인 거리까지 가깝다고 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두 딸의 머리가 대학생처럼 긴 것도 직접 볼 수 있고, 작은 딸이 쓴 영문일기도 눈으로 확인하며 고쳐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로 산 청자켓을 입고 방에서 패션쇼(?)를 하는 딸아이를 흐뭇하게 지켜보기도 하고, 남편이 만든 불고기를 입맛을 다셔가며 눈으로 맛보기도 한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옛날 같았으면 거리를 핑계 삼아 '안 보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속담을 들먹일 수도 있을 테지만 이제는 세계 어느 나라, 어느 곳도 가까운 '이웃'이기에 주방의 수저 갯수까지 다 알 수 있게 되었다.


하긴 내가 가르치고 있는 중국 학생들도 대부분 컴퓨터를 가지고 있어 본국에 있는 부모들과 온라인상으로 자주 만난다. 그러니 비행기 타고 어디 멀리 떠난다고 하면 김포공항이 눈물바다였다는 옛날 이야기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의 까마득한 이야기일 뿐이다.

'미스 독일'
'미스 독일'한나영
'바람의 딸' 한비야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이제 지구촌이 아닌 '지구방'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실제로 내가 경험한 큰 딸의 생일축하 파티도 바로 그런 지구방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였으니까.


지난 주에 생일을 맞은 큰딸이 주말에 친구들을 초대한다고 했다.

"엄마, 우리 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어. 11시에서 2시까지. 아마 세 명이 올 것 같애. 각자 아빠들이 우리 집까지 태워준다고 했대. 약도를 그려줬으니 잘 찾아 올 거야. 그런데 엄마, 그 날 내 친구들을 만나려면 자지 말고 기다려."

생일 카드를 미리 항공우편으로 보내고 미니홈피에도 축하글을 남긴 나였지만 미국에서 첫 학기를 보내고 있는 딸의 친구들이 사실은 나도 궁금했다. 그래서 졸린 눈을 비비며 기다리기로 했다. 자정이 되기 전부터 컴퓨터를 켜두고 딸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메신저의 화면이 켜지면서 딸의 얼굴이 보였다. 여기 저기 풍선을 달고 'Happy Birthday'라고 쓴 종이가 붙은 화려한 벽이 보인다. 제법 생일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윽고 컴퓨터 앞에 앉은 딸이 독일 친구 캐트리나를 내게 소개한다.

다운받은 캐트리나의 남자친구
다운받은 캐트리나의 남자친구한나영
"하이, 캐트리나."

생일을 축하하러 온 캐트리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태평양 너머에 있는 딸 친구와 화상대화를 시작했다. 축하객에 대한 답례로 나는 캐트리나에게 예쁜 미소와 자그마한 얼굴이 영락없는 'Miss Germany'라고 해주었다. 그랬더니 캐트리나가 활짝 웃으며 "땡큐"를 연발한다. 지난 6월에 미국에 왔다는 캐트리나에게 남자친구는 없느냐고 물었다.

"지금 독일에 있는데 남자친구를 만나러 독일에 가고 싶어요."

어설픈 독일어로 "Ich liebe dich (사랑해)"라고 남자친구에게 고백했느냐고 물으니 "Sure!" 수줍게 대답한다. 좋을 때다.

'미스 르완다'
'미스 르완다'한나영
호기심이 많은 내가 캐트리나에게 "남자 친구 얼굴이 궁금하다"고 다시 관심을 표했다. 그랬더니 금세 인터넷을 뒤져 사진을 보내기 시작한다. 남자친구의 얼굴을 클릭해서 본 뒤 "잘 생겼다"고 덕담(?)을 하니 캐트리나의 입이 귀까지 걸린다.

이번에는 르완다에서 온 마리라는 친구를 만났다. 집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는 마리에게 와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환하게 웃으며 '천만에요'라고 한다. 미국에 온 지 4년 됐다는 마리는 깊게 파진 옷을 섹시하게(?) 입었다.

마지막으로 딸 친구들에게 또 놀러오라며 작별 인사를 했는데 틴에이저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깔깔거리기 시작한다. 상큼한 웃음소리가 이곳 방안까지 가득하다.

세상 정말 좋아졌다. 비록 몸은 멀리 있어도 이렇게 '실시간'으로 생일 파티에 동참해 딸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식탁에는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가 보냈다는 꽃바구니까지 있어서 공간을 초월한 놀라운 디지털 시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우리의 첨단 과학, 과연 그 끝은 어디일까. 진정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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