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대통령 시절엔 교육부 장관을 지냈고, 조지 부시 밑에선 식품 의약국(FDA) 국장을 지냈으며, 도덕에 관한 책을 쓰고 도덕 재무장론을 펴온 보수주의자인 윌리엄 베넷(William J. Bennett)이 "모든 흑인 아이들을 낙태시킴으로써 범죄율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로 인해서 민주당 정치 지도자들은 물론 흑인 사회단체들로부터 혹독한 공격을 받는 모양이다. 미국과 같이 다인종으로 이루어진 나라에서는 인종 차별적 말에 대해선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어 있다. 그런 예민한 부분을 무심코 찔러댄 베넷도 재미난 친구이다.
늘 '동등한 기회'를 모토로 내세우는 사회를 뒤집어 보면, 그 사회가 피부 색깔과 같은 인종의 다름과 종교의 차이, 세계관의 이질성에 따라 인간을 차별해 왔고, 은연중에 그런 차별을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이런 사실은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흑인 폭동이나 하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뉴올리언즈 사태에서 보듯이 사실로 입증된다고 하겠다. 이 사건을 빌미로 진보적 사상을 가진 미국의 민주당 정치인들은 때가 왔다는 듯이 들고 일어나 공화당의 보수적 시각을 가진 정치적 입장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 모양이다.
부시까지도 이는 명백히 적절하지 않은 발언이라고 이슈화되는 것을 잠재우려 해도 여전히 시끄럽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방면의 정치적 입지에서 곤경에 처한 부시를 더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한다. 엎질러진 우유와 같이 내뱉은 발언을 거둬들이기는 어렵다. 이미 쏜 화살이다.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나가고 말았다.
정치가에게는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정치적 인생은 물론 그 사람의 지난 온 화려한 과거 경력까지도 쓸어가 버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한 라디오 방송 토크쇼에서 베넷은 "범죄를 감소시키고자 한다면, 또 그것이 유일한 목적이라면, 이 나라의 모든 흑인아이들을 낙태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범죄율은 내려갈 것이라는 사실은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은 불가능하고 웃기는 일이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지만, 범죄율은 내려갈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시도는 교묘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고 한다.
이 발언이 문제가 되자, 자신을 향한 비난에 대해서 '어리석은 일이고 전적으로 시비를 가리지 않고' 대화가 오고간 맥락을 보지 않은 채, 자신에게 가해진 비판이라고 응답했다.
자신은 인종차별과 인종주의가 경제적 이유로 지지되거나 반대되어야 하는 그 이상으로 경제적 이유로 반대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의도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비도덕적 정책은 경제적 고려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나쁘다는 이유'에서 잘못되었다는 것이 자신의 논지였다는 것이다.
또 모든 아이들을 낙태시키고 모든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주장'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쉽게 보일 수 있다고 베넷은 말한다. 자신의 그 말은 낙태가 범죄율을 떨어뜨리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논쟁 과정에서 나온 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논쟁>이란 <괴짜 경제학(Freakonomics)>의 저자인 레빗(D. Levitt)이 자신의 책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책엔 인종에 대한 언급은 없다)에게 낙태를 허용한 것이 결국 범죄율의 하락을 가져왔다는 주장을 염두에 두고, ‘단지 범죄율의 감소를 목적으로 한다면, 모든 흑인 아이들의 낙태가 그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고 말했고, ‘그것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폭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모든 흑인 아이들을 낙태시키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일”이라는 말을 빠뜨림으로써 자신의 말을 왜곡해서 자신을 비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인용 속에 그 말이 포함되었을 때, 내 입장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만든다.' '그들은 내가 지지하지 않는 터무니없는 그런 생각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고 주장한다.
맥락을 보니, 베넷도 억울하기도 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은연 중에 백인 보수주의자들이 갖는 흑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 또 가만 읽어보니 베넷도 특정한 생각을 주장할 의도로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말이란 게 그렇다. 거두절미하고, 한 부분만을 떼어내서 이해하게 되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고, 그 오해가 새로운 오해를 낳게 된다. 우리 속담에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옛 어른들이 남자는 세 가지 부리를 조심하라고 충고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입>이다.
취중엔 사람의 속마음이 다 드러나기 마련이다. 취중 실언이 한 사람의 신세를 망치기도 한다. 요즘 주모 국회의원과 검사들이 낀 추태 속에서도 그 교훈을 찾을 수 있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그 말을 주워 담으려다 보면 다시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 낸다.
뭔가 구린데가 있는 자들이 그 짓거리를 잘 한다. 특히 정치적 이해가 걸린 집단들은 그런 것을 두고 모종의 정치적 공작이 개입했다고 억지로 우겨대기까지 한다. 거짓말을 밥먹듯 해대는 정치인의 말로가 그리 가여워 보이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연민 때문이다.
그리스의 한 희곡 작가는 '정치인은 본연적으로 깡패'라는 것을 이미 간파한 바 있지만, 우리 정치인의 언어 수준은 말도 되지 않는 논리에, 부합하지도 않는 말로 웃겨대는 코미디 수준보다도 떨어지는 지능을 가진 자들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제발 추태를 부리는 그런 자들이 판을 치는 정치적 무대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정치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태도라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남아일언 중천금'이라고 했던가, 정치인의 한 마디는 중천금 이상으로 지켜져야만 할 국민과의 약속이다. 이를 아는 정치인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거짓은 언젠가는 밝혀지는 날이 있다’는 것은 한 치도 틀리지 않은 영원한 역사적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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