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의 눈이 흔들렸다. 검은 그림자가 자반 뒤집기를 하는 듯 하더니 담벼락에 화살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던 까닭이었다.
‘비… 빗나간 게야? 피한 게야?’
궁금함은 있었으나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 어둠 속에서 저 자는 화살의 느낌을 받고 몸을 뒤집었다. 검은 그림자는 이쪽을 아랑곳하지 않고 뛰던 방향으로 내처 달렸다. 그 때 김기가 뛰쳐나갔다.
“처어-!”
담을 향해 뛰어 오르는 검은 그림자를 향해 김기의 칼날이 큰 반원을 그렸다. 허리가 걸린다 싶은 순간 검은 그림자는 담벽을 차고 올라 뒤로 재주를 넘었다. 그러나 틈을 남기지 않은 김기의 칼이 방향을 튼 것이 더 빨랐다.
[서걱]
검은 그림자가 공중에서 몸을 뒤틀어 칼날을 피했으나 허리춤 옷깃이 잘렸다. 종이처럼 하늘거리는 옷깃이 땅에 닿기도 전에 검은 그림자가 다시 한 번 땅을 차고 튀어올랐다. 손을 뿌린다 싶더니 무언가 반짝했다. 바람 가르는 소리를 느낀 김기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땅을 굴렀다.
[쿵]
날아간 비수가 사랑채 기둥에 박혀 파르르 꼬리를 떨었다. 다시 화살을 메고도 뒤엉킨 김기 때문에 엉거추춤하고 있던 김병기가 그 소리에 놀라 바닥에 엎드렸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검은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김기가 칼을 문 채 담을 타넘는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죄송하옵니다. 놈의 족적을 놓쳤습니다.”
한참만에 돌아온 김기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무… 무에야?”
그제야 사랑에서 얼굴을 내 놓은 김병학의 안색이 허옇게 변했다.
“어떤 놈일까? 누가 보낸 게야? 우리 말을 듣기는 하였을까?”
김병기도 좌불안석으로 두서 없는 말을 내 뱉었다.
“이것을 보옵소서.”
김기가 잘려진 옷자락 한 낱을 꺼내 보였다. 아까 베어낸 검은 그림자의 옷깃이었다.
“흰천과 검은천이 양면으로 덧대어져 있습니다. 밖에선 평복 차림이었다가 검은 안감의 옷을 뒤집어 입고 이곳에 스며든 듯 합니다.”
“허면? 우연히 엿들은 건 아니고, 의도를 가지고 스며든 간자(間者)가 적실하다는 말이냐?”
김기의 설명에 김병학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러더니 다시 한 번 일갈이 터져 나왔다.
“검귀 네 놈은 뭐하고 있었던 게야! 대체 어찌 번을 어찌 세웠길래 내 집에 간자가 들었는데도 모르고 있었단 말이냐! 안 집사 네 놈도 마찬가지야! 두 분 벌건히 뜨고 눈앞의 간자를 못 가려내?”
“면목이 없습니다. 나리 마님.”
김기와 안기주가 머리를 조아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형님. 고정하십시오. 역정만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옵니다. 일단 그자를 잡아내야 합니다. 만약 대원군이 보낸 자라면, 그리고 우리말을 엿들은 바가 있다면 서둘러 계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 이대로 끝날 순 없지. 안 집 사는 당장 우포장에게 달려가 내가 보잔다고 일러라. 그리고 검귀는 속히 수하들을 이끌고 놈의 족적을 조금이라도 되짚어봐. 그리고 아우는 조 대감 댁에 알리고 대책을 숙론토록 하게. 나는 대원위의 측근들을 살펴 이상한 낌새가 없는지 알아볼 것인즉.”
“예 알겠사옵니다.”
일동이 일사분란하게 물러났다.
“아우!”
뒤돌아서는 김병기를 김병학이 불렀다.
“…….”
돌아선 김병기를 보며 말이 없다가 김병학이 입을 열었다.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진 것이라면… 이대로 밀고 나간다. 대원군보다 한 발 더 빨리 움직이면 돼.”
“예. 그러믄입죠.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입니다.”
김병기가 입술을 자근 깨물어 보이고는 총총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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